서울 구로구 금천수요양병원에서 일하는 15년 차 작업치료사 임미선 씨의 지난해 월 급여는월 급여는 230만원(세후, 주 40시간 기준)이 채 되지 않는다. 6년 전인 2017년 받은 월 급여보다 고작 1만 8,910원 오른 수준이다. 해마다 낮은 비율로 올랐던 급여는 지난 4년간 동결됐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불합리한 임금 차별을 받고 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경력과 근속연수가 높은 치료사가 그렇지 않은 치료사보다 낮은 급여를 받거나 노조 소속에 따라 급여 인상률 차이가 큰 사례 등은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됐다. 한 치료사의 경우, 지난 7년 동안 오른 임금은 고작 월 8천원 수준이었다.
‘임금 정상화’를 요구하며 다음 달 출산을 앞둔 만삭의 조합원이 삭발을 하고 지부장은 단식 투쟁까지 나섰지만, 병원은 꿈쩍도 않고 있다. 보름간의 단식 투쟁을 마무리한 20일, 병원 앞 농성장에서 만난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금천수요양지부 임미선 지부장은 “우리가 바라는 건 정말 큰 게 아니”라며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인데, 변화의 기미마저 없다”고 분노했다.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된 임금 교섭 노조가 17개 요구 중 14개 포기했지만, 사측은 ‘임금동결’ 고수
지난해 5월에 시작한 병원과의 임금 교섭은 해를 넘겨 이달 초까지 20차례 진행됐다. 그사이 노조는 당초 요구한 17가지 사항 중 ▲근속수당 도입 ▲모든 직종에 차별 없이 식대 지급 ▲명절 수당 지급을 제외한 모든 요구안을 철회했다. 근속수당과 명절수당의 구체적인 액수에 대해서는 협의 여지까지 남겨둔 상태다. 반면, 병원 측은 ‘임금 동결’ 입장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임 지부장의 말대로, 노조의 요구는 큰 게 아니었다. 직원들을 ‘쥐어짜는’ 비정상적인 병원 운영을 중단해달라는 최소한의 요구였다.
그간 고강도·저임금 노동이 이어지자, 직원들은 하나둘 병원을 떠나갔다. 자연스레 남은 직원들의 노동강도는 더 높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간호사의 경우 인력 부족으로 하루 16시간 가까운 과로에 시달리고, 영양부 소속 직원들 역시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임 지부장은 “간호부의 경우 정원이 50명인데, 작년 한 해 68명이 퇴사하는 현상이 벌어질 정도로 퇴사율이 높다. 2년 동안 퇴사율은 100%에 달했다”며 “(작업치료사와 물리치료사가 속한) 치료부도 계속 인력이 떠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병원은 부족한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기존 직원보다 더 높은 임금을 주고 신규 인력을 데려오거나, 고비용을 주고 아르바이트를 채용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임 지부장은 “신규 직원이 재직 직원보다 더 임금이 높은 비정상적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데, 병원은 우리를 갈아치워도 된다는 식으로 이렇게 무책임하게 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며 “이런 격차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임금을 정상화하기 위해선 근속수당을 도입해야 한다. 인상액이나 인상 연수는 얼마든지 조정 가능하니, 회사도 안을 가지고 와달라고 요청해도 이마저도 거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월 10만원의 식대와 관련해서도 “조무사 등 병원 내 몇몇 직군에는 적용이 안 되고 있는데 누구는 밥을 안 먹고, 누구는 먹는 게 아니지 않나. 모두에게 식대를 지급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직원들 임금 15% 오를 동안, 민주노총 조합원 인상률은 1% 미만 다른 병원도 이 정도로 차등 두진 않아, 병원장 입맛대로 하려는 것” 지노위도 ‘합리적인 임금체계 마련하라’ 조정안 제시했지만 병원은 거부
노조는 지난달 19일 임금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했다. 지노위는 ‘기존 연봉제와 근속년수, 경력, 생산성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 동종 또는 유사 업무에 종사하는 직원 간 합리적인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임금체계를 마련하라’는 내용의 조정안을 제시했다. 사실상 지노위도 현재 병원의 임금체계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노조는 임금 협상 과정에서 제시한 요구안을 대부분 포기하며 지노위 조정안을 수락하기로 했지만, 병원은 이 조정안마저 거부했다.
임 지부장은 “2017년도부터 2020년까지 치료부 임금 자료를 볼 때 같은 일을 함에도 한국노총 조합원 또는 관리자 라인에 있는 일부 직원들의 임금은 4년 동안 15%가량 오른 반면,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4년간 0.2%, 0.3%밖에 오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 노조가 정리한 임금 자료를 보면,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임금 내역들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일례로, 2017년 한국노총 소속 3년 차 물리치료사 A씨의 월 급여액은 242만원이지만, 2018년 민주노총 소속 3년 차 물리치료사 B씨의 월 급여액은 220만원에 그쳤다. 치료부 내에서 6년 차 치료사들의 월 급여액을 비교해 보더라도, 한국노총 조합원들이 260여만원 수준인 데 비해, 비조합원 치료사는 240만원, 민주노총 조합원이 220만원가량을 받았다.
치료부 소속 직원들의 2017년 대비 2020년 임금인상률을 보면 한국노총 소속 직원들은 주로 10% 이상의 인상률을 기록한 반면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최저임금 인상자를 제외하고 대개 1% 미만의 인상률을 보이고 있다. 이에 더해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비급여 치료 역시 관리자들이 일부 직원에게 몰아주면서 임금 격차가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임 지부장은 “다른 병원의 경우 이 정도로 차등을 두진 않는다. (임금 인상에 대한) 기준 없이 병원장 입맛대로 하려는 것”이라며 “기준을 물어봐도 답변을 해주지 않는다. 결국 병원의 말을 잘 들으면 임금을 더 주고, 그렇지 않으면 덜 주는 상황 아닌가”라고 의구심을 표했다.
임 지부장은 “병원은 계속 경영이 어렵다며 임금 동결을 주장하고, 간호부의 경우 인력 이탈을 막기 위해 근속수당 성격으로 도입했던 기타수당 3만원 지급도 중단한 상태다. 기타수당을 지급해도 인력이 이탈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며 “이 수당도 주지 않으면서, 기존 인력보다 고비용으로 치료부에 고용된 아르바이트생들은 지난해 말에 일당 1만원을 추가로 인상했다. 재정난이 아니라 병원이 비상식적으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노조는 병원의 재무제표를 확인한 결과, 지난 5년간 매출총이익이 4억 7천여만원 증가할 동안 직원들의 급여 등은 2억 4천만원이 감소했다고 분석하며, 더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와 장시간 노동은 환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임 지부장은 “안정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직원들이 계속 교체가 되는 상황”이라며 “하루에 16시간 일을 하면 피로도가 증가하게 되고 열심히 환자들을 케어하고 싶어도 그렇게 될 수 없는 구조가 되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노조의 투쟁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환자들도 많다고 임 지부장은 전했다. 그는 “오히려 환자분들이 농성장에 힘내라고 해주신다”며 “노조의 투쟁은 환자에 대한 치료가 안전하고 충분하게 이뤄지도록 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임금이 정상화돼야 인력들이 남아있을 테고, 숙련도 있는 인력들이 남아있을 때 그것이 곧 환자에 대한 치료의 질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양보 없는 병원, 민주노총 대표교섭권 잃게 하려 시간 끄는 건 아닌지 의심” 노조, 병원 대상으로 한 고소·고발 등 현장 투쟁 이어가기로
교섭 과정에서 ‘경영악화’와 ‘재정난’ 주장을 반복하던 병원은 경영 정상화 방안으로 친절한 미소로 병원 분위기를 밝게 하자는 취지의 제안을 했다고 한다. ‘병원의 노력이 필요한 내용은 없었나’라는 질문에 임 지부장은 “오히려 노노 갈등 격화가 우려되는, 관리자의 재량권을 강화하는 방식을 제안했다”며 “우리의 요구는 (임금과 관련해)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인데, 병원은 어떤 문제도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노조는 병원 측에 교섭을 요구하고 있지만 병원은 묵묵부답이다. 병원의 시간끌기 이면에는 노조의 대표교섭권을 잃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노조법 시행령에 따르면, 교섭창구 단일화로 결정된 대표노동조합이 결정된 날부터 1년 동안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한 경우 어느 노동조합이든 사용자에 교섭을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복수노조 사업장인 금천수요양병원의 경우, 지난해 3월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가 노조 설립 8년 만에 교섭대표노조로 인정됐다.
임 지부장은 “사측은 전혀 양보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임금 삭감과 구조조정, 폐업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식으로 협박을 하고 있다. 노조의 요구는 아무것도 들어주지 않고 시간 끌기를 하고 있다”며 “곧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획득한 지 1년째가 되는데, 협상을 맺지 않으면 교섭대표 노조 지위를 잃게 된다. 병원은 철저히 그걸 노리고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단식농성은 이날 마무리했지만, 노조의 투쟁은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당장 병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고소·고발 등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임 지부장은 “우리가 요구하는 건 최소한”이라며 “이마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면 이후 일어날 일들은 병원장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임금 교섭과 관련된 금천수요양병원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병원 측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