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1일 충남 예산군 신암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열린 SK에코플랜트 ‘조곡 그린컴플렉스’ 산업단지 환경영향평가서 초안 공청회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하는 주민들. ⓒ하승수 제공
지난 2월 21일 충남 예산군 신암면 행정복지센터에 갈 일이 있었다. SK에코플랜트가 신암면 조곡리 일대에 추진하고 있는 ‘조곡 그린컴플렉스’라는 산업단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서 초안 공청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그린’이라는 말을 썼지만, 실제로는 ‘그린’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산업단지에 일반적으로 들어서는 공장뿐 아니라, 지정폐기물 등 산업폐기물을 매립하는 매립장을 건설하는 것이 목표인 사업이다. 산업폐기물매립장은 일단 들어서기만 하면 산업단지 안에서 발생하는 폐기물뿐만 아니라 전국의 산업폐기물을 가지고 와서 매립할 수 있는 시설이다. SK에코플랜트는 신암면을 포함해서 충남에서만 다섯 군데에서 산업단지와 산업폐기물매립장을 패키지로 추진하고 있다.
‘뻥튀기’ 환경영향평가서 초안
필자도 의견진술인 자격으로 공청회 참석을 요청받았기 때문에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검토해 보았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는 대목들이 눈에 보였다.
사과와 온천, 그리고 요즘에는 백종원으로도 유명한 충남 예산군에는 산업단지가 무분별하게 들어서고 있다. 총 13개의 산업단지와 농공단지가 들어섰거나 추진되고 있다. 그중 이미 분양이 되어 가동 중인 3개 산업단지와 8개 농공단지에서 일하는 종사자 숫자가 총 6,714명이라고 되어 있는데,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에서는 ‘조곡 그린컴플렉스’에 종사할 인원을 6,370명이라고 예측해 놓았다.
기존의 11개 산업단지·농공단지에 종사하고 있는 인원에 맞먹는 규모의 종사자들이 새로 조성된 1개 산업단지에서 일한다는 것은 상식에 반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종사자 숫자를 ‘뻥튀기’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종사자 숫자를 ‘뻥튀기’했을까? 그 이유는 산업폐기물 발생량을 ‘뻥튀기’하기 위해서이다. 산업단지에서 발생할 산업폐기물 발생량을 계산하는 방식이 종사자 숫자에 1인당 폐기물 발생량을 곱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계산방식도 납득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이런 계산방식에서는 종사자 숫자를 늘려야 산업폐기물 발생량도 늘어나게 되어 있다.
지난해 10월 31일 충남 예산 조곡산업단지 반대대책위원회가 충남환경운동연합, 공익법률센터 농본과 함께 예산군 신암면 행정복지센터 앞에서 연 조곡 그린컴플렉스’ 산업단지 반대 기자회견 모습 ⓒ충남환경운동연합
그리고 이렇게까지 산업폐기물 발생량을 ‘뻥튀기’를 하는 이유는 산업폐기물 발생량(재활용 제외)이 연간 2만톤 이상이 되어야 「폐기물처리시설 설치 촉진 및 주변지역 지원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매립장을 의무설치해야 하는 ‘의무설치 산업단지’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단지를 하려면 산업폐기물 매립장도 꼭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주민들도 ‘SK에코플랜트의 관심은 산업단지보다는 산업폐기물매립장에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한다. 그런데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보니, 그런 의심이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든 산업폐기물 발생량을 늘려서 매립장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산업단지는 적자 보고 폐기물로 돈 벌어
이렇게 기업이 산업폐기물 매립장에 관심이 있는 이유는, 산업단지를 조성해서 적자를 보더라도, 산업폐기물 매립장만 할 수 있으면 큰 이익을 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경북 고령군의 어느 산업단지의 경우에는 산업단지를 조성한 업체가 142억 원 적자를 봤는데, 관련 회사가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해서 지금까지 411억 원의 이익을 기록한 사례가 있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이익을 벌어들일 것이다. 산업단지는 분양이 잘 안 되더라도, 매립장만 인·허가를 받으면 막대한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산업폐기물 매립장만 별도로 인·허가를 받는 건 쉽지 않다. 지역주민들도 반대하지만, 지방자치단체들도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단지를 내세우면 지방자치단체들이 찬성하는 경우가 많다. 막연하게 인구가 늘어나고 지역경제가 좋아진다는 환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SK같은 기업들이 산업단지와 패키지로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추진하는 것이다. 매립장 인.허가를 받기 쉽기 때문이다. 더구나 법적으로 의무설치라고 하면, 산업단지에 매립장을 끼워넣기 쉬운 것이다.
SK 홈페이지 ⓒSK홈페이지 캡쳐
그렇지 않다면 지금처럼 경기도 좋지 않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런 사업을 밀어붙일 이유가 없다.
SK의 기만적인 ESG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어
2월 21일 공청회 현장에 도착하니 산업폐기물 매립장 예정지 인근 주민들이 산업단지와 산업폐기물 매립장에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농민은 ‘제발 이대로 농사짓고 살게 해 달라’고 외치고 있었고, 귀농·귀촌한 주민은 ‘농촌에 살려고 왔는데 산업폐기물 매립장이라니, 이게 웬 날벼락이냐’고 호소를 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필자가 SK에코플랜트 측에 책임자가 와 있냐고 물어보니, 팀장이라는 사람과 직원들만 있었다. 대표이사나 임원급은 없었다. 공청회를 주최해놓고, 법적인 의사결정권이 있는 책임자도 보내지 않는 무성의한 모습이었다.
결국, 그날의 공청회는 무산됐고, 필자는 집에 돌아와서 SK 그룹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친환경을 실천한다는 얘기도 나와 있고, 이해관계자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문구도 보였다. 이런 문구들을 보니 조금 전 공청회장에서 절규하던 주민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SK에게 이 주민들은 이해관계자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것인가?
그리고 농촌에 지하 30m, 지상 15m로 산업폐기물을 묻어서 돈을 벌겠다는 것이 친환경이고 ‘건강한 지구생태계를 보전’하는 것인가? 라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SK뿐만 아니라 태영같은 대기업도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전국 곳곳에서 추진하고 있다. 환경을 오염시키고 마을공동체를 갈등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런 행태에 항의하기 위해 3월 14일 지역주민들이 서울로 상경해서 SK, 태영 같은 대기업 앞에서 집회하려고 한다.
필자도 함께하려고 한다. 서울에서는 친환경을 떠들면서, 농촌에서는 환경을 오염시키고 농촌주민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부정의한 일을 벌이는 것을 더는 방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