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10일 이스라엘 군이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드는 시위대 앞에 서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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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격을 개시한지 5월 됐다.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망자는 3만을 넘어섰고, 부상자는 7만명에 달한다. 현지 상황은 참혹하다. 유엔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구호 물자 반입 차단으로 가자지구 주민 최소 50만 명이 기근 위기에 처해 있다. 북 가자 지역에서 어린이 13명이 이미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이스라엘은 구호품을 받으러 가는 민간인들도 계속 공격하고 있다. 특히 2월 29일 이스라엘 점령군은 가자 시티에서 구호품인 밀가루를 실은 트럭을 기다리던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무차별 발포하고 탱크로 들이받아 115명을 살해하고 760명에 부상을 입혔다. 이스라엘의 이번 학살을 다루는 알자지라 기사를 소개한다.
사건은 2월 29일 목요일 새벽 2시 반 가자지구의 하룬 알라시드 거리에서 밀가루를 실은 구호 트럭이 올 예정인 곳에 사람들이 모이면서 발생했다. 구호 트럭 행렬이 검문소를 통과해 북쪽으로 향하는 가운데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측에 따르면 31대의 구호 트럭이 가자지구에 진입했고, 그 중 거의 20대가 월요일과 화요일에 가자지구 북부에도 갔다고 한다.
알자지라의 하니 마흐무드는 이스라엘이 라파에서 지원을 기다리던 사람들을 온갖 종류의 장비로 쏘았다고 했다. AP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총격 사이사이에도 사람들이 트럭에서 밀가루와 통조림 상자를 끌어 내렸다고 한다. 첫 사격이 멈추자 사람들은 트럭으로 다시 모였는데, 이스라엘 군은 이들을 향해 다시 사격을 가했다. 사고 현장에서 소식을 전한 알자지라의 이스마일 알굴은 발포 후 이스라엘 탱크가 시신과 부상자 위로 진격했다고 했다.
사건 현장은 어디였는가
팔레스타인 당국은 이번 학살이 가자시티 남서쪽에 있는 나불시 로터리의 알라시드 거리에서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곳은 구호 식량의 배달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가자지구 북부에 있다. 이번 구호품 배달도 한 달여 만에 처음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이번 학살은 세계식량계획(WFP)의 칼 스카우 부사무총장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가자지구에서 50만 명 이상, 즉 4명 중 1명이 기근 위험에 처해 있고, 2세 미만 어린이 6명 중 1명이 급성 영양실조 상태라고 밝힌 지 하루 만에 일어났다.
알자지라의 마흐무드는 팔레스타인 난민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이번 학살이 함정이라는 것을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고 했다. 한 목격자는 “우리는 구호품 때문에 이곳에 왔다. 어제 정오부터 기다렸는데 새벽 4시 30분쯤 구호 트럭이 하나, 둘 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가 트럭에 접근하자 이스라엘의 탱크와 전투기가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다른 목격자들은 이스라엘의 발포 이후 많은 사람이 넘어지고 트럭도 부상자를 덮쳐 사망자 수가 늘었다고 했다. 알자지라는 구급차가 이 지역에 도착하지 못해 당나귀 수레를 이용해 부상자를 병원으로 이송했음을 확인했다. 현장에 있었던 다른 사람은 “우리는 밀가루를 가지러 갔다. 그런데 이스라엘 저격수가 우리를 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 다리에 총을 쐈다. 지금은 일어나지도 못한다”고 했다.
이스라엘의 대응
이스라엘 군은 민간업체가 나흘 동안 구호트럭을 관리, 감독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설명은 바뀌었다. 점령지 동예루살렘에 있는 알자지라의 버나드 스미스는 이스라엘이 처음에는 군중에게 책임을 돌려, 구호 트럭이 도착했을 때 수십 명이 밀리고 넘어져서 압사했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자기네 군대가 위협을 느꼈고, 발포로 대응했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군이 왜 위협을 느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많은 목격자의 말은 하나로 모아진다. 이스라엘 군이 식량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발포하기 시작한 후에 놀란 난민이 도망치려는 과정에서 넘어졌다고 했다.
가자지구의 현재 상황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공격하기 시작한 지 5개월이 지났다. 구호단체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초반부터 구호품 전달을 지연시켜왔다. 이스라엘은 이를 부인한다.
세계식량계획(WFP)의 스카우 부사무총장은 “현장에서 직원들이 활동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고, 가자지구에 필수 식료품을 전달할 수 없어 기근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WFP 구호트럭이 지난달 가자지구 북부를 향했는데, 검문소마다 수송이 지연됐고, 많은 식량이 약탈당했다. 직원들은 총격과 다른 폭력에 직면했고, 목적지에서는 굶주린 채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에 압도당했다고 했다.
세계의 반응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통령은 이스라엘 점령군이 추악한 학살을 저질렀다고 비난했고, 유엔의 안토니오 구테호스도 “목요일 가자지구에서 구명 지원을 받으려다 100명 넘게 사망한 사건을 규탄한다. 절망에 빠진 가자지구의 민간인은 긴박한 도움이 필요하다. 유엔이 일주일 이상 구호품을 전달하지 못한 북부 가자지구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에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면서도 이번 학살을 직접 비난하는 것은 거부했다. 매뉴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오늘뿐만 아니라 지난 5개월 가까이 이어진 이 분쟁에서 너무 많은 무고한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다. 우리는 오늘 아침 일찍부터 이스라엘 정부와 연락을 취해 왔으며, 조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그 조사를 면밀히 감독하고 답변을 촉구할 것”이라고 했다.
에미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가장 강력한 규탄”을 표명했고, 요르단 외무부도 “이스라엘 점령군이 가자지구 알라시드 거리 인근 나불시 로터리에서 구호를 기다리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잔인하게 표적으로 삼은 것을 규탄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에 국제법을 지키라고 촉구하는 등 확고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은 “식량을 구하다가 네타냐후에 의해 1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살해당했다. 이건 대학살이다. 세계 강대국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 일은 홀로코스트와 비슷하다. 국제사회가 네타냐후를 막아야 한다. 콜롬비아는 이스라엘 무기 구매를 모두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학살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에 미치는 영향
이번 학살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에서 사상자가 가장 많은 단일 사건이다. 이번 학살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에 전투를 중단하고 가자지구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허용하는 협상이 진행 중이던 와중에 발생했다. 사건 이후 하마스는 협상 참여를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으며, 3월 7일까지 휴전이 이뤄지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회담의 조기 타결에 회의적이다. 바이든도 이후 휴전에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인정했다. 백악관은 바이든이 협상 중단을 막기 위해 카타르와 이집트 지도자와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