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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국힘 정승연 후보, 그래서 일본이 사과를 했다는 거냐, 안 했다는 거냐?

관전자로서 선거를 오래 보다보면 참 멍청한 선거전략을 펼치는 후보들을 종종 보는데 이번에도 그런 후보를 한 명 봤다. 주인공은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인천 연수구갑에 출마한 정승연 후보.

정 후보에게는 조금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는 이 사람의 이름을 이번에 처음 들었다. 존재감이 너무 없어서 기사에 등장을 했더라도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 인물이 민중의소리 강경훈 기자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동시에 고소했단다.

뭔 일인가 싶어서 살펴봤더니(우리 기자를 고소 안 했으면 뭔 일인지 살펴보지도 않았다) 주제가 친일논란이다. 그간의 과정을 상세히 적기에는 지면이 아까우니 링크를 드린다. 앞의 기사가 강경훈 기자의 첫 보도고 뒤의 기사가 정승연 후보의 고소 소식이다.

[단독] ‘인천 연수갑’ 국민의힘 정승연 “한국인들 반일 감정엔 피해의식, 열등의식 병존”(해당 기사로 바로가기)

국민의힘 정승연 후보, 본지와 이재명 대표 검찰 고소(해당 기사로 바로가기)

이제 이 문제에 대해 칼럼에서 자세히 살펴볼 참인데, 나는 이런 선거전략이 진짜 한심하다고 생각한다. 정 후보 측은 ‘무플보다 악플이 났다고, 이렇게라도 이름을 알리는 게 이득이다’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선거는 프레임의 싸움이다.

나부터 이 칼럼에서 정승연이라는 이름을 수도 없이 사용하겠지만, 정 후보 뜻대로 이게 선거에서 이슈가 된다고 치자. 사람들의 머릿속에 뭐가 남겠나? ‘정승연 = 친일 논란’ 이것만 남는다. 이게 선거에서 작용하는 프레임의 무서움이다.

아무튼 상대가 이걸 원하는 듯 하고(진짜 웃기긴 하다) 우리를 상대로 법적 조치까지 빼들었으니 내 비록 소송 당사자는 아니지만 답을 하지 아니할 수 없다.

‘인천 촌구석’ 발언이 더 많이 검색된다

정 후보가 고소를 하면서 낸 보도자료를 보면 그의 주장은 이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이번 민중의소리 기사와 이재명 대표의 인용은 대표적인 ‘친일몰이’다. 둘째, 자신은 친일이 아니라 극일(克日)을 주장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있다.

일본의 불법침략과 강제징용 등 전쟁범죄를 강력하게 비판해 온 학자인 정승연 후보는 앞선 저서에서 “역사문제를 경제나 안보로까지 비화시킨 아베 정부와 문재인 정부 모두 문제가 있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런데 웃긴 대목이 있다. 내가 평소라면 절대 거들떠보지도 않을 이 책을 손수 e북으로 사서 쭉 읽어봤다. 이 책의 주제는 일본과 동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뭐 이건 충분히 그렇게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읽어도 이 책에는 정 후보의 보도자료에 나오는 “일본의 불법침략과 강제징용 등 전쟁범죄를 강력하게 비판해 온 학자인 정승연 후보”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문장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정 후보 스스로 주장이 “강력하게 비판해 왔다”이다. 그러면 일본에 관해 책을 한 권 쭉 쓰면서 적어도 일제의 불법침략과 강제징용 등 전쟁범죄를 강력히 비판한 대목이 최소한 한 줄은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

7일 국민의힘 인천 연수갑 정승연 후보가 민중의소리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허위사실 공표 및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정승연 후보

구글 검색도 해봤다. 2016년부터 총선에 출마했으니 정치인으로 살아온 기간이 최소 8년이다. 교수 생활도 꽤 한 모양이다. 그러면 정 후보의 과거 발언 중 일제의 불법침략과 강제징용 등 전쟁범죄를 강력히 비판한 문서가 어디 한 곳에서라도 나올 법하다.

그런데 아무리 검색해도 그런 문서는 없다. 기껏 검색했더니 나오는 게 2020년 총선 때 정 후보가 격려 방문을 온 유승민 의원에게 “존경하는 유승민 대표께서 인천 촌구석까지 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는 기사다. 인구 300만의 거대 도시 인천을 촌구석이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도 참 신선한데, 그러고도 인천에 3번째 출마한다는 사실이 경이롭긴 하다.

아무튼 이게 그나마 정승연 후보의 이름을 좀 널리 알린 속칭 ‘인천 촌구석’ 논란이다. 아니, 본인 주장처럼 그토록 일제의 전쟁범죄를 강력히 비판했으면 ‘인천 촌구석’보다는 일제 침략전쟁 비판 문서가 더 많이 검색돼야 하는 것 아니냐? 정 후보는 도대체 어디서 일제의 침략전쟁을 강력히 비판했는지 좀 알려주길 바란다. 혹시 방구석에서 혼자 비판했나?

판단하는 것은 독자

내가 이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에 사는 그 누구도 자신을 친일을 한다거나, 혹은 친일파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물론 살다보면 반쯤 제 정신이 아닌 이도 있어서 3.1절에 일장기를 게양하는 도른자도 있다. 하지만 이런 도른자는 일단 정상적인 범주에 넣지 않는다고 보면, 99%의 사람들이 자신을 친일파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표적 친일 문학가 춘원 이광수도, 미당 서정주도 자신을 친일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대표적 친일 가문이 세운 두산그룹도 자신의 창업주가 친일파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친일 여부를 판단하는가? 그 대상자가 남긴 글, 발언, 행적으로 판단한다.

이 관점에서 강경훈 기자의 기사를 다시 살펴보자. 그 기사에는 단 한 대목도 ‘정승연 후보는 친일’이라는 대목이 나오지 않는다. 기사 전체에서 ‘친일’이라는 단어는 딱 두 번 쓰였는데, 전부 정 후보가 아닌 다른 인물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사용됐다.

강 기자의 기사는 그 책에 나온 대목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옮긴 내용은 정 후보가 책에 기술한 그 내용, 한국 국민들의 반일 감정을 피해의식, 열등의식, 콤플렉스 등으로 여러 차례 기술한 그 대목이다. 이게 친일적 생각이냐 아니냐는 것은 읽는 사람의 몫이다.

“왜 하고 많은 책 내용 중에 그것만 쏙 빼서 기사화하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왜 그랬냐고? 당연히 그 대목이 눈에 걸렸기 때문이다. 강 기자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그 대목을 읽고 빡쳤을 것이다. 나도 빡쳤다. 공직선거 후보자의 발언 중에 민중을 빡치게 할 대목이 있다면 그걸 소개하는 것은 기자의 당연한 도리다.

전체 책의 분량 중 그런 기술은 몇 대목 안 된다고? 그러면 그 몇 대목이라도 그렇게 빡치게 쓰지 말지 그랬냐? 그래서 묻는다. 강 기자 기사의 핵심은 정 후보의 언급, 즉 한국 국민들의 반일 감정이 피해의식, 열등의식, 콤플레스냐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정승연 후보는 답하라. 이게 피해의식이고 열등의식이며 콤플렉스냐?

그게 정 후보 소신이라고? 어이쿠 그러시군요. 그러면 그 기사가 뭐가 문제인가? 그건 오해라고? 그러면 그렇게 쓰지를 말던가!

또 한 가지 지적해야 할 부분이 있다. 기사를 보면 정 후보가 한국 사법부의 강제동원 판결에 대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를 ‘작용·반작용의 법칙’이라고 해설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책을 살펴보니 진짜로 그런 대목이 있다.

나는 이게 빡친다. 왜냐? 이걸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라고 이야기하면 한국과 일본이 피차 동등한 관계에서 서로 치고받았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가? 내가 빡친 대목은 일본이 지금까지 제대로 된 사과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렇게 참혹하게 우리 민중을 짓밟아놓고 지금까지 그들은 되레 고개를 뻣뻣이 든다. 이게 사람들이 정 후보의 ‘작용·반작용’ 운운에 빡치는 이유다.

그래서 또 묻는다. 정승연 후보는 대충 뭉뚱그리지 말고 제대로 답하라. 지금 한일 관계가 꼬인 이유가 일본이 제대로 사과를 하지 않은 것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에 동의하는가? “문재인과 아베 모두 잘못했다” 이런 어정쩡한 이야기 말고,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일본이 사과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느냐는 이야기다. 만약 그렇다면 정치인으로서 일본의 사과를 강력히 요구할 의향이 있는가? 일본과의 동행 운운하기 전에 정 후보가 밝혀야 할 대목이 이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정승연 후보는 글을 썼고,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이재명 대표가 민중의소리 기사를 링크하며 ‘친일 DNA’를 언급한 것도 이재명이라는 독자의 판단이었을 것이다.

그 판단의 옳고 그름도 그 발언을 들은 국민들의 몫이다. 나는 최소한 개그맨 김제동 씨가 봉사활동을 갔더니 “종북 왔다!”라고 욕을 해댔다는 사람들의 개떡 같은 판단보다 이재명 대표의 판단이 훨씬 논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강경훈 기자가 기사에도 언급했듯이 최근 국민의힘 진영에서 나오는 일본에 관한 연쇄 발언들이 충분히 ‘친일 DNA’로 판단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본지 기자가 고소를 당했다고 해서 난생 처음 들어보는 사람의 책까지 구입해 읽느라 시간 낭비 돈 낭비가 여간 아니었다. 정승연 후보, 적어도 정치를 하려면 말이다. 인천 촌구석 발언보다는 유명한 자신만의 브랜드 하나쯤은 가지시길 권한다. 그게 설마 ‘일본과의 동행’이냐? 그러면서 하는 말이 “반일 감정의 근원이 피해의식, 열등의식, 콤플렉스”고? 어이쿠,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닌 것 같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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