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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케이팝에 울리는 경고등

걸그룹 에스파의 멤버 카리나가 지난 3월 5일 소셜미디어에 사과문을 올렸다. 배우 이재욱과의 연애 사실이 알려지면서 팬들에게 사과를 한 것이다. ⓒ뉴시스

아이돌 음악인은 연애하면 안 되는 것일까. 지난 3월 5일 걸그룹 에스파의 멤버 카리나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과문을 읽고 떠올린 질문이다. 카리나가 2월 27일 디스패치의 보도로 인해 배우 이재욱과의 연애 사실이 비자발적으로 드러난 뒤 일주일 만에 올라온 사과문이다. 그 일주일 동안 소셜미디어에 카리나 팬들이 실망과 분노를 표현하는 글들이 올라왔을 뿐 아니라, 소속사인 SM 엔터테인먼트 앞에는 중국 팬들이 보낸 시위트럭까지 등장했다. 결국 카리나는 자필로 쓴 사과문을 올렸고, 그 사과문을 팬 아닌 이들까지 읽게 되었다.

이 사과문이 카리나의 자의일까. 사과문이 회사의 압박과 종용 없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졌을 거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제 케이팝 아이돌 음악인이 주체적으로 음악을 만들고 음악 안에 자신의 꿈과 고민을 담기도 한다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케이팝 아이돌 음악인에게 허용된 자유, 그들이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자유가 어디까지인지 의심하게 된다. 물론 케이팝은 소속사가 다년간 기획해서 만들어내는 기술/노동집약형 상품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개개의 케이팝 음악인은 기계적이지 않고 개성 있고 재미있으며 인간적인 매력까지 넘치는 콘텐츠처럼 포장해 판매한다. 그렇게 해야 더 많은 인기를 누린다.

하지만 카리나의 사과문을 읽으면 공들여 만든 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케이팝 아이돌 음악인은 여전히 회사의 꼭두각시이고, 팬들의 노예처럼 보인다는 인상을 부정하기 어렵다. 어찌 보면 회사와 음악인의 이미지에 손해가 될 수 있는 사과문을 올린 이유는 그만큼 팬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 아닐까. 케이팝 제작사들은 음반, 공연, 굿즈, 커뮤니티 등의 온오프라인 상품을 판매하며 수입을 올리는데, 그동안 팬들의 관심과 애정을 끌어올려 최대한 많은 시간과 열정과 돈을 쓰게 하는 노하우를 계발하면서 시장을 키워왔다. 음반 안에 팬 사인회 응모권을 넣는 방식으로 음반을 여러 장 사게 만드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배우 이재욱과 에스파 카리나 ⓒ 인스타그램

그 결과 회사는 원하는 수익을 올렸을지 모르지만, 모든 일이 회사의 계획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맹렬한 애정을 쏟아 부은 팬들 중에 지쳐 떨어져나가는 이들이 늘어 가는가 하면, 카리나의 연애 소식에 반발하는 팬들이 생긴 현실은 그동안 케이팝 제작사가 취해온 제작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는 징후다. 물론 팬과 스타의 관계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태도와 방식으로만 이어지지 못한다. 유사 연애나 종교에 가까운 숭배와 추종이 없다면 대중문화산업은 존재조차 할 수 없다. 게다가 요즘에는 사회 전반에서 팬덤이 도드라진다. 특정 인물을 절대적으로 추앙하는 팬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문제는 팬덤 안에서 상식적인 판단과 태도가 발을 붙이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것이 팬덤의 속성이라 해도 지속적으로 스타에게 몰입하게 만들고, 애정과 시간과 돈을 계속 지출하게 만드는 문화에서는 적절한 거리감을 형성하기 어렵다. 자식의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투여하고 관리하는 부모들은 자녀를 독립적 인격체로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지금 화가 난 일부 케이팝 팬들의 모습은 그 부모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팬들이 그런 모습을 갖도록 만든 것은 케이팝 제작사들이다. 앞으로는 케이팝의 팬들이 가볍게 케이팝을 즐길 수 있는 이들로 넓어져야 한다고 했던 방시혁 의장의 말이 백번 천번 맞지만, 지금껏 헤비 팬덤을 키워 성장해온 주역의 이야기로서는 상당히 무책임한 이유다.

처음에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자. 카리나가 연애하는 게 문제가 될 수 없고, 연애를 안 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없다. 케이팝 음악인의 사생활은 최대한 지켜져야 한다. 그렇다고 카리나의 사과문을 압박한 팬들만 문제가 아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케이팝을 키워온 제작사들의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 팬들의 등골을 빼먹으면서 팬들의 압박에 짓눌려 음악가의 자유로운 삶을 가로막는 제작 방식으로는 케이팝이 지속하지 못한다. 카리나의 사과문은 단지 또 한 번의 해프닝이 아니라 케이팝에 울리는 경고신호나 마찬가지다. 어떤 파국과 침몰도 예고 없이 단숨에 오지 않는다. 계속 이어지는 몇몇 스타들의 죽음과 팬들의 과한 반응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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