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현지시각)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부르즈 알 바라즈네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열린 가자지구 연대 집호에 참석한 한 남성이 불에 탄 미국 국기를 짓밟고 있다. 2023.12.18. ⓒ사진=뉴시스
편집자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학살이 5개월째 이어지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된 가운데 2024년이 미국의 세계적 패권이 몰락한 분수령인 해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많다. 우크라이나의 병력과 탄약, 무기 등이 고갈되면서 전략적 패배가 지속될 전망이고, 오늘 당장 선거가 치러진다면 하마스의 압승이 뻔한 팔레스타인의 독립 운동은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약화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 게다가 시진핑이 바이든에게 '중국은 결국 대만과 통일할 것'을 통보한 상황이기 때문에 미중 갈등이 언제 폭발할 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데 군사적으로 미국은 러시아나 중국과의 전면전을 치를 역량이 안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의 기술적 우위 신화가 상당 부분 과대평가 됐음을 보여줬고, NATO의 군사력으로는 현대전을 1주일도 지속할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또,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신뢰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어 미국의 정치적 분열이 심각해지고 서방 동맹의 결집력도 그 어느 때보다 약해졌다. 군사적 우위와 이데올로기적 장악력이 모두 급격히 약화된 미국이 과연 세계적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는 카운터펀치의 기사를 소개한다.
제국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는다. 연속으로 위기를 맞아 힘과 자신감이 서서히 없어지다가 갑자기 붕괴한다. 영국도 그랬고, 프랑스와 소련도 그랬다. 그리고 이제 미 제국도 마찬가지다. 영국은 식민지 인도, 이란, 팔레스타인에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후 1956년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한 이집트를 침공하면서 몰락했다. 소련은 냉전 말기에 체코슬로바키아, 이집트, 에티오피아에서 위기를 겪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벽에 부딪혔다.
미국은 냉전 종식 이후 승리를 만끽하다가 금세기 초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이 재앙으로 치달아 위기에 봉착했고, 이제 가자지구, 대만, 우크라이나의 위기가 코앞에 닥쳤다. 이 세 위기가 미국을 붕괴시키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서서히 진행된 미 제국의 쇠퇴가 급격히 가속화할 것은 분명하다.
우선 ‘제국의 위기’라는 개념부터 이해해야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제국의 역사는 계속되는 위기로 점철됐다. 대개의 경우 제국의 초창기에는 위기가 잘 극복되지만, 쇠퇴기에는 처참할 정도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제2차 대전 직후 미국은 그리스, 베를린, 이탈리아, 프랑스의 위기를 능숙하게 처리했다. 한국전쟁도 능숙하지는 않지만 처참할 정도의 대처는 아니었다. 미국은 1961년 쿠바 침공과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베트남 전쟁에서 재앙적인 실패를 겪고도 소련보다 오래 살아 살아남고 냉전에서 ‘승리’하며 지구상에서 유일한 초강대국이 될 만큼 위기극복에 필요한 변신에 성공했다.
위기관리를 하려면 국내 정치와 국제 지정학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CIA가 주도한 1961년 쿠바 피그스만 침공의 처절한 실패 후 정치적 균형을 되찾고 국방부를 견제하며 소련과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무력이 아닌 외교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점차 커지는 국내 정치의 분열과 일련의 국제 격변 사이의 불균형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미국이 현재 곤경에 처한 이유 중 하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가자지구, 우크라이나, 심지어 대만과 관련해서도 국내 정치의 이해와 국제적 이익을 조화시키는 데 실패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이 냉전 종료 이후 수십 년간 누적된 실수 인해 이 위기를 해결하기 어렵거나 아예 해결할 수 없는 난제로 만들었다.
이 위기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은 미국은 국제적으로도, 국내적으로도 초강대국의 지위를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추락하기 시작하는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에서 서서히 재앙을 키운 미국
집권당이 민주당과 공화당 어느 쪽이든 미국은 이미 냉전 후반기부터 우크라이나와의 관계를 잘못 다뤘다. 1991년 소련이 붕괴 조짐을 보이자 미국은 소련의 약 45,000개 핵무기, 특히 소련 최대의 핵무기 공장이 있던 우크라이나의 5,000개 핵무기를 안전하게 처리하는 데 주력했다.
1991년 8월 방문에서 (공화당의)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총리에게 ‘미국 국민은 모스크바의 원격 폭정을 우크라이나 지역 독재로 대체하기 위해 독립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민족적 증오에 기반한 자살적인 민족주의를 선동하는 사람들을 돕지 않을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핵무기가 없다고 비슷한 상황이던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의 독립은 곧 인정했으면서 말이다.
소련이 1991년 12월에 드디어 붕괴하자 우크라이나는 실제로 사용할 능력은 없지만 세계 제3의 핵보유국이 됐다. 구소련 국가의 비핵화를 설득하기 위해 미국은 3년간의 다자협상을 시작했지만, 우크라이나에는 안보를 걱정하지 말라고 했을 뿐 어떤 보장도 해주지 않았다.
1994년 12월 부다페스트 안전보장 각서에 따라 벨라루스, 카자흐스탄과 우크라이나는 핵확산조약(NPT)에 가입하고 핵무기를 러시아로 옮기기 시작했다. 미국, 영국, 러시아는 3개국의 주권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핵무기의 사용을 삼가기로 했다. 그러나 6개 국가 모두 이 각서가 얼마나 취약한지 알고 있었다. (한 우크라이나 외교관은 미국 측에 ‘러시아가 서명한 내용을 지킬 것이라는 환상 따위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편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NATO를 팽창하려는 미국의 계획에 분개했고, 윌리엄 페리 미 국방장관은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NATO를 확장하면 러시아가 반격을 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클린턴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그의 후임자 (공화당의) 조지 W. 부시도 러시아 국경을 향해 NATO 확장을 계속 진행했다.
NATO는 1999년에 체코, 헝가리, 폴란드, 2004년에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가입시켰다. 게다가 2004년 NATO 부다페스트 정상회의에서는 구체적인 시점을 정하지 않았지만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가입도 공식 합의됐다. 미국은 러시아가 위협을 느끼고 대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모르기라도 하듯 러시아 국경까지 NATO를 팽창하려 한 것이다.
미국의 착오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미국은 당시 러시아를 민주 체제로 전환시켜 미국을 원탑으로 하는 세계 질서에 완전히 통합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러시아가 200여 년 동안 독재체제였고, 캐서린 대제부터 레오니트 브레즈네프까지 모든 통치자가 끊임없는 팽창을 통해 국내 안정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결국 2014년 3월 NATO의 끝없는 확장에 맞서 러시아가 올림픽을 개최한 지 불과 몇 주 만에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병합했다. 이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NATO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해도 결국 러시아의 군사적 지배에 취약할 것’이라며 그 주변 지역 모두를 러시아의 영향권으로 인정하는 듯했다.
러시아는 NATO의 확장에 맞서 오바마가 언급한 군사적 지배를 확립하기 위해 20만 군을 파견해 또다시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수도 키이우로 진격하려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크라이나가 저항했고, 이번에는 미국이 서방과 동맹국을 동원해 강력한 경제 제재를 시행했고 유럽은 러시아 에너지 수입을 줄였으며, 모두 힘을 합쳐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 차에 접어들자 반러시아 동맹의 균열도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의 영향력이 황금기를 지나 많이 감소했다는 얘기다. 30년 동안 자유시장 체재에 편입됐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경제는 제재를 극복하고 새로운 석유 시장을 개척해 올해 GDP가 2.6% 성장할 전망이다. 또 작년 봄과 여름에 진행된 우크라이나의 반격이 실패로 돌아갔고, 전쟁은 최소한 교착 상태가 됐고, 심지어 러시아에 유리한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 방어를 위해 NATO 동맹을 성공적으로 집결시킨 (민주당의) 바이든 정권은 우크라이나에 무려 61조 원(460억 달러) 상당의 무기를 제공하며 그 작은 군대가 전투에서 기술적 우위를 점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공화당의 일부가 제2차 대전 이후 미국을 세계 강대국으로 유지해 준 초당적 외교정책을 거부하는 역사적인 전환이 시작됐다.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은 바이든 정권의 600억 달러에 상당하는 우크라이나 지원 패키지를 몇 주 동안 고려하지도 않았고, 전장에서 우크라이나는 더욱 밀리게 됐다.
이는 트럼프와 푸틴의 사적인 친분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공화당의 전통적인 ‘고립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지원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 공화당 계열의 미국 유권자가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인 2022년 3월 9%에 불과했지만, 2023년 12월에는 48%에 이르렀다. 뉴욕타임스의 데이비드 브룩스는 ‘트럼프의 포퓰리즘이 감당하지 못하는 과도한 개입에 대한 우려와 세계화의 압력으로부터 노동자 계층을 보호해야 한다는 믿음 등 국민의 매우 정당한 요구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트럼프가 이런 추세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NATO에 대한 그의 적대감은 더 큰 의미를 지닌다. 트럼프는 최근 ‘제 몫’을 내지 않은 NATO 회원국은 러시아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둘 것이라고 했다. 충격에 빠진 유럽은 미국이 빠진 NATO가 어떤 모습이 될지를 고민하게 됐고, 이 모든 것은 미국이 계속 국제적 리더십을 행사하려 할지 더 이상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자지구의 위기
우크라이나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자지구의 위기도 수십 년 지속된 미국의 소심한 리더십과 점점 혼란에 빠지는 국내 정치 때문에 가자지구 위기는 통제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냉전이 막을 내린 직후 중동이 강대국 정치로부터 조금 자유로울 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미국이 주도한 1993년 오슬로 협정을 체결하고, 두 국가 해법을 향한 첫걸음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를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났지만, 미국의 비효과적인 중재는 이스라엘과 PA의 교착 상태를 깨지 못했다.
2005년 극우파 매파의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가자지구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25개 정착촌을 철거해 이스라엘의 안보와 국제적 지위를 강화하려 했다. 그러나 2년도 되지 않아 마무드 아바스 PA 대통령이 총선에서 하마스에 패배하고 가자지에서 밀려나고, 2009년 총리로 취임한 극우파 베냐민 네타냐후는 자기가 혐오하는 두 국가 해법을 막기 위해 하마스를 지지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하마스의 2023년 10월 7일 공격 때까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분리해서 하마스의 성장을 도왔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이미 수많은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사망한 지난 10월 18일 바이든이 네타냐후를 만나기 위해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네타냐후는 문명 세력과 야만 세력을 잘 구분한다며 바이든을 칭찬했고, 바이든은 하마스가 이슬람국가보다도 더 잔학한 악행을 저지른다며 이스라엘이 필요한 무기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네타냐후의 천박한 견해에 동조했다.
미국은 유엔의 휴전 제안을 모두 거부하면서 이스라엘에 15,000개의 폭탄을 포함한 무기를 공수하기 시작했다. 이 폭탄에는 벙커 등 방호력이 높은 구조물을 타격하기 위해 개발된 벙커버스터도 있어 가자지구의 고층 건물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민간인 피해를 크게 늘렸다.
바이든은 5개월 간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수하고, 유엔 휴전안에 세 번 거부권을 행사하고, 두 국가 해법을 대체하고 이스라엘의 무기한 가자지구 점령을 막을 대안도 없어 중동과 세계 대부분에서 미국의 외교적 리더십을 훼손시켰다. 지난 11월과 2월에는 가자지구의 평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베를린, 런던, 마드리드, 밀란, 파리, 이스탄불, 다카르 등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가자지구에서 민간인 사망자가 30,000명을 훨씬 넘었고, 그중 대부분이 여성과 어린이이다. 이 때문에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주요 경합 주 미시간의 아랍계, 전국의 흑인과 청년층 등이 민주당에 등을 돌렸다.
다급해진 바이든은 가자지구의 휴전이 절실하다. 하지만 국제 정치와 국내 정치 모두에서의 무능으로 바이든은 네타냐후에게 가자지구 공격을 계속할 수 있게 함으로써 민주당의 지지층 연합을 와해하고 11월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는 미국의 세계적 영향력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대만해협 문제
미국이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에 몰두하고 있는 가운데 대만해협도 심각한 위기의 문턱에 있다. 대만에 대한 중국의 압박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2014년부터 남중국해에 점진적으로 6개의 군사기지를 확보한 중국은 대만의 주권을 서서히 압박하고 있다. 중국의 대만 항공 침범 횟수는 2020년 400회에서 2023년 1,700회로 증가했고, 중국 군함은 2022년 8월 이후 대만해협 중간선을 300회나 넘어 사실상 이 완충지대를 무력화했다. 논객 벤 루이스가 지적하듯 ‘조만간 중국이 넘을 선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미국은 197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한 후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것도 인정했다. 하지만 동시에 미 의회는 대만 관계법을 통과시켜 ‘미국이 대만 사람의 안전을 위협하는 무력에 대응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미국의 이런 모호한 태도는 오랫동안 문제가 되지 않았다. 2022년 10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제20차 공산당 대회에서 ‘통일을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며 무력 사용 포기를 거부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미국은 ‘전례 없는 공격’을 받을 경우 대만을 방어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그러나 중국은 세관 검역으로 대만행 화물을 모두 중국 본토로 우회시킴으로써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대만을 무력화할 수 있다.
대만의 주요 항구인 타이베이와 가오슝은 대만 해협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금수 조치를 위반하려는 미국 군함은 핵잠수함, 제트기, 함정 살상 미사일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미국은 분명히 항공모함 1척이나 2척을 잃을 것이고, 그러면 미 해군도 철수하고 대만은 중국과 통일 협상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런 굴욕은 80년 만에 태평양에 대한 미국의 지배가 끝났다는 분명한 신호로, 미국의 세계 패권에 또 다른 큰 타격을 입힐 것이다.
세 위기의 결합
미국은 이렇게 복잡한 세 가지 국제적 위기를 직면하고 있다. 경험이 가장 풍부한 외교관들이 모든 관심을 집중해도 모자랄 정도로 각각의 위기가 심각하다. 국내 정치가 혼돈에 빠진 미 제국에 그런 위기가 한꺼번에 닥친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이스라엘은 미국의 정치적 분열을 이용하면서 쓸 수 있는 패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미국보다는 훨씬 많은 패를 쥔 3국은 버티기만 해도 미국에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바이든은 세 위기 상황이 악화될 경우, 11월 대선에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트럼프는 2024년 대선 이후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지위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공화당의 전통적인 고립주의로 회귀함으로써 이런 문제와 그로 인한 정치적 비용을 피하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글로벌 헤게모니는 놀라운 속도로 사라져 머지않아 먼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