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4일 여의도에서는 시골 주민들의 집회와 행진이 이어졌다. 오전에 종각역 부근 SK 서린빌딩 앞에서 산업폐기물 처리의 공공성 확보를 요구하며 집회를 한 주민들이 여의도 태영그룹 사옥 앞으로 왔기 때문이다.
SK와 태영은 ‘친환경’, ‘에코’, ‘그린’ 같은 말로 포장하면서 농어촌 지역에 산업폐기물을 매립하고 소각하여 돈을 벌려고 하는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그래서 농어촌 주민들이 이날 상경집회를 하게 된 것이다.
복마전이 된 산업폐기물
지금 대한민국의 산업폐기물 매립, 소각, 유해재활용 사업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복마전’과 ‘횡재’이다.
인·허가만 받으면 수백, 수천억 원의 이윤이 보장된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너도나도 산업폐기물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업체들은 인·허가를 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주민들과 지역의 환경이 입게 된다.
그리고 곳곳에서 ‘유착’의 징후들이 포착되고 있다. 납득할 수 없는 행정처리들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의인지 과실인지 몰라도 공무원이 행정처리를 하면서 법절차를 어기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법적으로는 공장설립승인을 먼저 받은 후에 건축허가를 해야 하는데 건축허가부터 먼저 해준다든지, 건축허가를 할 때 개발행위허가 심사를 해야 하는데 심사가 누락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산업폐기물 시설 반대’를 공약하고 당선된 후에 입장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냄새가 나는 상황이다. 환경부도 이상하다. 필자가 본 자료 중에는, 대형로펌이 ‘환경부의 유권해석을 특정업체에게 유리하게 바꿨다’고 홍보한 자료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복마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난 14일 민주당 당사로 행진하는 주민들 ⓒ하승수 제공
그리고 특히 산업폐기물매립장의 경우에는 인·허가만 받으면 ‘횡재’ 수준으로 돈을 벌 수 있다. 유해성이 강한 지정폐기물이 포함되면 더더욱 큰 돈을 벌 수 있다. 그래서 대기업과 사모펀드들까지 산업폐기물 매립사업에 뛰어든 상황이다. 그래서 농촌지역 곳곳이 산업폐기물 매립장으로 인한 갈등을 겪고 있다.
이 모든 문제의 근본원인에는 정부가 민간업체들에게 산업폐기물처리를 맡겨 놓고 있다는 문제가 깔려 있다. 생활폐기물은 공공(지방자치단체)이 책임지는데, 유해성이 더 강한 산업폐기물을 민간업체에게 맡겨 놓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납득되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 현실은 상식과는 정반대이다.
정치는 무엇을 하고 있나?
이렇게 산업폐기물 사업이 돈이 된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전국 곳곳에서 무분별하게 산업폐기물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대부분 비수도권 지역이고, 농어촌지역이다. 산업폐기물과는 무관한 청정지역에 매립장이나 소각장이 추진되는 경우도 많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정치의 책임이 크다. 정당들도, 국회의원들도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방치해 왔다. 작년 11월 15일 몇몇 뜻있는 국회의원들과 시민·환경단체들이 국회에서 토론회도 했지만, 국회 내부에서는 추가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3월 14일 주민들은 여의도 태영사옥 앞에서 집회를 한 후에 거대양당 앞으로 행진을 해 갔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에 정책요구서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거대양당 앞에는 경찰의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었고, 주민들은 정책요구서를 양당의 당직자에게 전달하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시골주민들에게 정치는 그 자체로 ‘거대한 벽’이었다.
국민의힘 앞에서 부른 ‘고향의 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정책요구서를 전달하기 전에, 경기도 연천에서 온 주민 한 명이 마이크를 잡았다. 수십년간 마을 옆에 들어선 공장과 산업단지로 인해 큰 피해를 입어 왔는데, 최근에는 산업폐기물 고형연료(SRF)를 소각하는 열병합 발전소까지 들어서서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주민은 국회의원들에게 얘기하고 싶어서 미리 준비해 온 글을 읽었다. 그동안 입어 왔던 피해와 고통, 억울함을 호소하는 ‘절규’에 가까운 글이었다.
지난 14일 국민의힘 당직자에게 정책요구서를 전달하는 모습 ⓒ하승수 제공
집회를 마무리하려는데 강릉 주문진에서 온 대책위 사무국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주문진에는 태영건설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지정폐기물매립장을 추진하고 있다. 사무국장은 주민들이 지정폐기물매립장에 반대하는 집회를 마무리할 때마다 불렀다는 ‘고향의 봄’을 함께 부르자고 제안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로 시작하는 노래가 국민의힘 앞에 울려 퍼졌다. 고향마을을 지키려고 하는 간절한 바람이 담긴 노래였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이날 전달한 정책요구서에 대해 아직까지 답이 없다. 같은 날 정책요구서를 전달받은 민주당은 만족스럽지 못한 내용이지만 답변서를 보내오기는 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응답이 없다.
그래서 화가 난다. 도대체 농어촌 주민들은 국민으로 보이지도 않는 것인가? 수많은 사람들의 안전과 미래까지 물려줘야 할 환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여당이 취해야 할 태도인가? 라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국민의힘은 지금이라도 농어촌 주민들의 절규에 책임있게 응답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