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신세계그룹이 정용진 총괄부회장을 회장으로 승진시켰다. 2006년 부회장 자리에 오른 이후 18년 만의 승진이다. 모친인 이명희 총괄회장이 건재하지만 이번에 승진한 정용진 회장의 역할도 대폭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정 회장이 한 그룹을 총괄할만한 경영 능력을 보여준 적이 거의 없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역량을 보여주기는커녕 그가 손을 대는 사업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정 회장에게는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멸칭까지 붙었다.
정 회장이 실패한 신사업은 한 손에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야심 차게 인수했던 제주소주는 670억 원을 유상증자로 쏟아붓고도 사업을 접었다. 헬스 및 뷰티 브랜드 부츠(BOOTS)와 서양식 드럭스토어 분스(BOONS)도 망했다. 일본의 유명 잡화점 ‘돈키호테’를 흉내 낸 삐에로쑈핑, 남성 패션 전문숍 쇼앤텔, 가정간편식 매장 PK피코크도 문을 닫았다. 전부 정 회장이 주도한 사업들이다.
본업도 엉망진창이긴 마찬가지다. 정 회장이 최대주주인 이마트는 지난해 469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적자를 냈다. 이마트 주가는 지난 5년 동안 59% 하락했고, 10년으로 기준을 늘리면 주가 하락률은 70%에 이른다.
시가총액은 2조 원에 못 미치는데 금융부채는 14조 원으로 불어났다. 불필요한 자산을 매각해 부채를 줄여도 모자랄 판에 와이너리, 골프장, 야구단 등 정 회장의 취미생활에 가까운 사업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다.
이 정도 실적과 주가를 기록한 경영자라면 승진이 아니라 해고를 당해 마땅하다. 그런데도 신세계그룹은 그가 단지 총수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그룹을 총괄하는 자리로 승진시켰다. 우리나라 재벌의 지배구조가 얼마나 후진적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 바로 이런 후진적 지배구조다. 신상필벌의 원칙 대신 단지 혈연에 따라 경영권을 이어받는 재벌 세계의 현실이 신세계 그룹은 물론 한국 경제의 미래를 더 어둡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