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무원노조 위원장 “잔인해진 악성민원, 기관장 대응 의무화 필요”

이해준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이 26일 서울 영등포구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4.03.26 ⓒ민중의소리

지난 5일, 경기 김포시의 9급 공무원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의 극단적 선택 이면엔 온라인상에서 신상을 공개하는 이른바 ‘좌표찍기’를 동원한 악성민원이 있었다. 공무원을 향한 악성민원이 사회적 문제가 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악성민원의 양태가 악랄해져 공무원들의 목숨마저 위협하는 실정이다.

26일 서울 영등포구 공무원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이해준 공무원노조 위원장의 고민도 깊어 보였다. ‘국민의 공복’이라는 사회적인 인식 때문에 별다른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끙끙 앓다가 몸도 마음도 다치는 공무원은 늘어나고 있음에도 기관 차원에서의 대응은 소극적이기만 한 탓이다.

이 위원장은 현재 상황에 대해 “공무원을 향한 악성민원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회적 문제가 됐지만 정부에서 대책 마련이 늦어지다 보니 아주 잔인하게 변질된 것”이라며 보다 실효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동안 정부도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2022년에는 민원처리법 시행령을 개정해 사무실 내 안전 장비 설치 및 안전요원 배치 등을 의무화했고, 같은 해 개정된 악성민원 대응지침이나 매뉴얼 등에는 민원 공무원 보호를 위해 기관 차원에서 고소·고발을 할 수 있도록 법적 대응 요령도 담았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예산 부족과 기관장의 의지 부족 등의 문제로 이러한 조치들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게 공무원들의 일관된 증언이다.

이 위원장 역시 “정부 대책은 악성민원 대응 매뉴얼 정도”라며 “지금까지 그 매뉴얼대로 이뤄진 것은 거의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지자체장은 정치인이고, 선거로 뽑히다 보니 주민들을 고발하지 않는다. (말단 공무원들은) ‘공무원이니 우리가 참아야 돼’라는 생각으로 참아왔고, 노조가 나서서 고발을 하려고 해도 상급자들이 못하게 막는 사례도 많았다”며 “그렇게 속앓이면서 연가와 병가를 내면서 참아왔다. 사실은 우리 스스로가, 공직 내부에서 그런 문제들을 키운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 위원장은 그간 정부 차원에서 내놓은 대책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이유로는 “탁상행정”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민원을 응대하는 공무원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서 현장과 동떨어진 대책들이 나왔다는 지적이다. 이 위원장은 “행정안전부나 인사혁신처는 직접 주민들과 대면 업무를 보지 않는다. 그렇게 탁상행정식 대책을 내놓고, 일선 자치단체에서 알아서 해야 할 문제 아니냐는 식”이라며 “김포에서 청년 공무원이 목숨을 잃고 난 뒤 행안부도 시·군 공무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함께 TF 팀을 꾸린다고 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진작 이뤄졌어야 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20일부터 범정부 관계기관이 모인 TF를 꾸려 악성민원 근절 대책을 논의 중이다. TF는 오는 4월 중 민원 공무원 보호를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목표인데, 여기에는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대응 지침을 마련하고 민원 해결 등을 지원하는 전담 조직 운영 방안 등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위원장은 정부 대책에 강제성 있는 방안이 포함돼야 악성민원으로 고통받는 공무원들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현재 시행령에도 담긴) 안전 요원을 배치하기 위해서는 인력 확충이 필요한데, 시나 군에서는 예산이 적다 보니까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민원실 등에는 의무적으로 안전 요원을 배치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민원 과정에서) 폭행 등이 있을 경우에는 고소·고발을 의무적으로 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며 “이런 조치들이 이뤄지지 않을 시 시장이나 군수 등이 처벌받을 수 있도록 법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조항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파격적인 개혁 있어야 공무원 이탈 막을 수 있어”


이해준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이 26일 서울 영등포구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4.03.26 ⓒ민중의소리

저연차 공무원들의 이탈 문제도 심각한 상황이다. 정부에 따르면, 5년 미만 저연차 공무원들의 조기 퇴직자는 2019년 6663명→2020년 9258명→2021년 10,693명→2022년 13,321명으로 급증했고, 공무원 시험 응시율도 점차 떨어지는 추세다.

인터뷰 당일, 정부는 그 원인으로 낮은 보수와 민원인의 폭행·폭언 등 불안정한 직무 환경, 재난 대응 비상근무 증가에 따른 피로 누적 등을 지목하며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6급 이하 실무직 국가공무원 2천여명의 직급을 상향 조정하고, 기존 9급 공무원이 4급으로 승진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근무 기간을 현행 13년에서 8년으로 대폭 단축해 승진 기회를 늘리겠다는 게 골자다. 이 외에도 민원 공무원에게 민원업무 수당 3만원을 추가 지급하고 초과근무 상한 시간을 확대(하루 4시간→8시간)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 위원장은 이날 발표된 대책에 대해 일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공무원들의 공직사회 이탈 문제가 심각한 만큼 보다 과감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저연차 공무원들이 이탈하는 이유를 조사해 보면 저임금과 경직된 공직문화, 악성민원 때문”이라며 “과거에는 승진만을 목표로 삼고 공직 생활을 했다면 지금은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한다. 공무원으로서 바라는 부분이 다 바뀌었는데, 국가는 이 변화를 못 따라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2030 세대의 공무원들이 이제 행정의 주역이 될 텐데, 이런 식으로 가다간 정부가 정상적으로 작동이 될 수 없을 정도로 공무원들의 거부 반응이 많다”며 “이렇게 한 번 개선책을 내놓을 때 파격적인 개혁이 이뤄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아쉽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이 앞으로 추진할 투쟁 방향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이 위원장은 “공무원 이탈 원인 중 가장 첫 번째가 이유가 낮은 임금이기 때문에 올해 상반기 적극적으로 투쟁해 조합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임금 인상을 이뤄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또한 “만약 올 하반기 정부가 공무원 연금을 개악할 경우, 향후 20~30년 동안은 연금 개악을 할 수 없도록 사회적인 합의를 이뤄내는 투쟁을 할 것”이라며 “공무원노조가 ‘주 4일제’에 대한 분위기를 조성해 가는 역할도 주체적으로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한편, 이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임원 선거에서 당선돼 이달부터 공식 임기를 시작했다. 이 위원장은 2007년 정부의 노조 탄압에 맞서는 ‘노조사수 투쟁’에 나섰다가 해임됐지만, 2년 후 재판에서 승소해 복직했다. 이후 지역본부장을 역임하며 위축된 노조를 다시 정상화하는 활동에 힘써왔다.

이번 위원장 선거에서는 ‘임금 삭감 없는 주4일제 도입’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 위원장은 “20년 전 시작된 주 5일제 근무도 공공기관이 먼저 시행한 뒤 안착됐다”며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에서도 주 4일제 논의가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는데 공무원노조가 앞장서 분위기를 조성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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