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8일 의대 정원 2천 명 증원을 1년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처음 밝혔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대한의사협회가 전날 제안한 ‘1년 유예안’에 대해 “내부 검토는 하겠지만,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미복귀 전공의들에 대한 행정처분 및 사법처리 압박과 윤석열 대통령과의 전공의 대표자 면담 이후에도 의-정 대치 상황이 해소되지 않고 있으며, 휴학을 신청한 의대생 수는 어느덧 1만 명을 넘어섰다. 정부의 강경일변도 의대 증원 추진이 의료계를 굴복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현 상황이 지속되면 의료 현장의 장기 공백으로 인한 국민 피해가 가중될 수밖에 없기에 정부로선 의료계와의 실효적인 대화 채널을 가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접점인 ‘1년 유예안’을 띄운 것으로 풀이된다.
박 차관 발언을 인용한 보도가 확산되자, 복지부는 “1년 유예안은 내부 검토된 바 없으며, 향후 검토 여부에 대해서도 결정된 바 없다”는 내용의 해명을 내놓았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도 2천 명 증원을 전제로 한 의대 학사 일정 정상화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1년 유예안 검토 여부에 대해서는 “계획이 없다”고 일축했다.
다만 현실적으로 정부가 ‘2천 명’이라는 숫자에 집착하는 한 의대 증원을 1년 유예하든, 하지 않든 정부 방침에 반발해 휴학계를 낸 의대생 규모를 감안하면 숫자상 무슨 차이가 있는지 의문이다. 신입생 2천 명 증원 강행에 맞서 기존 의대생들이 휴학을 하는 것이나, 증원을 1년 유예하는 대신 의대생들이 휴학계를 철회하고 학교로 돌아오는 것이나 그게 그것 아니겠는가.
당초 의대 증원 자체에 대해 폐쇄적이던 의료계는 증원을 전제로 열린 논의를 해보자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한 상태다. 전날 의협이 정부에 1년 유예안을 제시한 것 역시 일단 유예기간 동안 증원 규모에 대한 논의를 다시 면밀하게 해보자는 취지가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도 이런 의료계의 의중을 모를리 없다.
따라서 정부가 1년 유예안에 대한 검토를 언급했다는 건 향후 증원 규모에 대한 논의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박 차관 역시 “학교별 배정을 되돌리면 또 다른 혼란이 예상된다”면서도 “신입생 모집 요강이 최종적으로 정해지기 전까지는 물리적으로 변경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고 말했다. 통상 의대 정원 최종안은 5월 말 ‘대입전형 수시모집 요강’을 통해 공고된다. 그때까진 세부 조정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정부는 2천 명 증원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주장을 고수하면서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조정 가능성을 띄웠다가 다시 주워 담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이달 초 담화에서 2천 명 증원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힌 이후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참모들이 담화 내용에 대해 ‘논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며 상반된 해석을 내놓은 것, 이번에 유예안에 대한 입장 번복이 그렇다. 증원 규모를 둘러싸고 불을 보듯 뻔했던 의료계와의 충돌 상황에 대한 대비책이나 갈등 관리 능력이 얼마나 부실한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일단 던져보고 반응을 보면서 저울질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의사들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실효적인 카드를 제시해 지금의 혼란을 신속하게 종결하기 위한 압축적인 논의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