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대의 연간 물가 상승률과 60%에 육박하는 빈곤율 등의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12월 10일 취임한 극우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의 독단적인 개혁 조치로 아르헨티나 국민의 삶을 뒤흔들고 있다. 밀레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부에노스아이레스 연방의회에서 취임 선서를 한 후 연설 없이 퇴장했다. 연방의회에서 취임 선서 후 별도의 메시지를 내지 않은 대통령은 1983년 민주화 이후 밀레이가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밀레이는 취임 첫날부터 친족을 대통령실과 부처 공직에 들일 수 없다는 규정을 수정해 평소 ‘보스’라고 불러온 여동생 카리나 밀레이를 비서실장에 전격 발탁했고, 지난달 ‘포괄적인 개혁안’이 의회에서 부결됐음에도 불구하고 페소화 평가 절하, 국가 지원금 축소, 공무원 해고 등을 늦추지 않으면서 정작 자기 월급은 50% 인상했다. 지난 1월에는 밀레이 취임 45일 만에 총파업이 일어났고, 1976년 군 쿠데타 발발 48주년이었던 3월 24일에는 인권단체, 노조, 각종 시민단체 및 일반 시민 수십만명이 대통령궁 앞 5월 광장에 모여 반정부 시위를 벌이는 등 이에 아르헨티나 국민의 저항은 거세지고 있다. 그 단면을 보여주는 자코뱅의 기사를 소개한다.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취임한 지 100일이 된 주는 그야말로 재앙 같았다. 아르헨티나는 3월 11일과 20일 두 차례에 걸쳐 강풍·달걀만 한 우박과 폭우를 동반한 초대형 폭풍이 몰아쳐 공장, 주택, 도로 표지판 등이 파손됐다. 이 폭풍으로 13명이 사망하고 수억 달러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
한편 뎅기열이 계속 유행하면서 79명이 목숨을 잃었고 12만 명이 감염됐다. 버스 운전사, 보행자, 주차장 관리인을 겨냥한 총격 난동으로 마약 카르텔이 사실상 전쟁 선포를 한 후 아르헨티나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로사리오가 마약 폭력에 휩싸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사는 친구 마틴과 맥주 몇 잔 후에 농담을 던졌다. ‘개구리와 메뚜기는 빠졌지만, 아르헨티나가 곧 [성경에 등장하는] 열 가지 재앙을 다 겪을 것이다’. 3월 말 어느 늦은 밤이었는데, 그의 눈이 순간 침울해졌다. 그리고 함께 있던 열다섯 살짜리 아들을 바라보며 ‘난 괜찮을 거야, 아이들도 그럴 거야. 우리에게는 집이 있고, 수입이 있어. 물론 이달 말에도 내게 직장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마틴은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에서 법학 학위를 받은 후 20년 넘게 같은 판사와 함께 일해 온 법률사무원으로 아내와 두 아이를 둔 가장이다.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성향의 밀레이 정부가 최근 정부 지출과 공무원 고용을 대폭 삭감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자 마틴을 비롯한 많은 사람의 근심이 깊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루이스 알베르토 베카리아 사르미엔토 국립대학 교수는 ‘밀레이 정부가 하는 일은 재앙이라고 생각한다. 정부 정책은 국민의 가장 취약한 계층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오랫동안 아르헨티나 통계청(INDEC)을 이끌며 임금과 고용을 연구한 경험이 풍부한 베카리아는 아르헨티나의 고질적인 문제인 물가상승이 둔화되기는 했지만 지난 12월 25%, 1월 20%, 2월 13%로 여전히 두 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밀레이 취임 이후 1월과 2월에만 실질임금이 17%나 감소했다. 그런데 지금은 물가상승이 아르헨티나 페소화뿐만 아니라 미국 달러화에서도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임금 억제를 통해 재정 적자를 줄이려는 밀레이의 전략이 문제 해결을 계속 미루는 격이라는 게 베카리아의 설명이다.
4월 8일 인터뷰에서 밀레이는 아르헨티나의 대표적인 대형 슈퍼마켓인 점보의 온라인 가격을 추적한다는 트위터 계정인 ‘점보트’를 인용하며 장바구니 물가가 급락했다고 주장했으나, 같은 날 그 계정이 사기임이 드러났다. 점보트가 점보의 가격을 추적한 적이 없다며 그 계정이 사회실험용이었는데 많은 사람이 현실을 부정하는 결과를 선전할 필요성을 느낀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밝힌 것이다. (밀레이의 경제부 장관인 루이스 카푸토도 일주일 전에 이 가짜 봇을 언급한 바 있었다).
실제 데이터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의 물가는 계속 상승하고 있고, 임금과 연금의 구매력이 급락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아르헨티나를 더 깊은 사회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
밀레이의 긴축 정책
밀레이의 2024년 목표인 정부 고용과 지출 감축은 미묘한 이슈이다. 노동자 2명 중 1명이 통계에 잡히지 않아 정부의 관리나 감독을 받지 않는 비공식 노동자이거나 임시직인 아르헨티나에서는 근로계약 기간이 임의로 정해지거나 1년인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노동자의 절반이 해고 시 실업급여나 그 어떤 종류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목수이자 세트 제작자인 구스타보 데 산티스는 국립무대이자 코미디 극장인 세르반테스 극장에서 일하며 연극과 각종 공연을 위한 배경 및 소품을 제작한다. 하지만 한동안은 택시 운전이 주 수입원이었다. 그는 ‘예전에는 연극 무대를 많이 만들었고, 그다음에는 TV 드라마 세트를 많이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일이 끊겼고, 목공 일도 거의 없을 정도로 뜸해졌다’고 했다. 데 산티스는 밀레이가 부자를 위한 통치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는 ‘모두의 주머니가 비었고, 사람들은 그나마 가지고 있던 작은 희망마저 잃어가고 있다’고 한탄했다.
정부의 무분별한 긴축 정책은 여러 분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니콜라스 마소 하원의원은 ‘이 정부는 소득정책이 없다. 정부는 환율과 공공요금은 시장에 맡기면서 임금 협상은 동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마우리시오 마크리 전 대통령이 창당한 우파 연립 정당인 PRO 소속이었던 마소는 자유주의를 주창하는 정부가 임금은 동결하고 노조와 고용주 간의 정기적인 임금 협상인 ‘파리타리아’를 중단하는 정부의 모순을 꼬집었다.
마소의 설명은 ‘정상적인 구조를 지닌 경제에서 소득정책은 주로 강력한 노조가 교섭하는 임금 정책이다. 그러나 고물 수집가, 재활용 업자, 일용직 노동자 등 비공식 부문이 큰 아르헨티나는 소득 정책에서 급여뿐만 아니라 비공식 임금, 연금, 사회 부조 등 물가상승으로 인해 가치가 점점 떨어지는 항목도 정부가 계속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소 의원은 정부 지출을 줄이기 위한 정부 정책의 일부는 지지하면서도 은퇴자와 비공식 노동자를 소홀히 하는 밀레이와 카푸토 경제장관을 비난했다.
밀레이 취임 이후 특히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 등의 공립대학과 국가과학기술연구위원회(CONICET)와 같은 공공 연구기관이 지출 삭감의 표적이 되고 있다. 페데리코 페넬라스 철학과 교수는 ‘2년 동안 물가가 200% 올랐는데 대통령이 새 예산안을 승인하지 않아서 우리는 2022년 승인된 예산과 동일한 금액의 자금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CONICET 회원인 페넬라스는 ‘해고가 이뤄졌고, 앞으로도 더 있을 것이라는 위협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운영비도 부족하다는 점’이라고 했다.
페넬라스는 정부의 연구 및 개발(R&D) 지출 삭감이 매우 우려스럽다며 ‘CONICET가 지원하는 연구와 박사학위가 1,300개에서 600개로 반 이상 줄었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과학, 기술, 공학 및 수학(STEM) 분야이다.
페날라스는 3월 15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영향력 있는 진보 일간지 ‘파냐 12’에 기고문을 게재해 밀레이가 공공 부문을 대상으로 무정부주의적인 자본주의 혁명을 전개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정부가 돈이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밀레이가 정부는 돈이 있으면 안 된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대학을 공격하는 밀레이
3월 중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비가 잠시 그치자마자 나는 5년간 공부한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 철학·문학 학부를 찾았다. 거대한 옛 담배 가공 공장을 개조한 건물에 있는 이 학부는 카바히토라는 부촌에 자리 잡고 있다. 개학 전이었기 때문에 복도는 조용했고, 2층으로 올라가는 콘크리트 계단에는 열댓의 학생만 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벽은 내가 기억하는 대로 여전히 붉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낙태권을 옹호하고 정부의 긴축정책을 반대하는 내용이었다.
200여 명의 학생이 앉아 있는 가장 큰 강의실 앞에서 나는 3학년 미대생 에밀세 이칸드리를 만났다. 그녀는 ‘Las Rojas’(붉은 이들)라고 쓰인 빨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학내 반자본주의 동아리는 ‘야 바스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칸드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의 미래와 대학 지원을 삭감하려는 정부의 시도에 저항할 방법을 논의하는 공개 토론의 체크인 테이블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녀는 학생들이 대학 지원 삭감 계획을 재고하도록 요구하는 편지를 정부에 보냈지만, 공식적인 통로는 막다른 길임을 깨달았다며 ‘우리의 우려가 무시되고 모든 정치 세력이 지원 삭감이 정부 계획대로 진행되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강의실에서는 한 참여자의 발언이 끝났는지 철재 지붕의 빗소리와 섞여 박수 소리가 흘러나왔다.
일주일 뒤 나는 고물을 수집하던 빈민 출신의 활동가로 2019년 처음 당선돼 2023년 재선에 성공한 나탈리아 사라초(34) 하원의원을 만났다. 사라초는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공식 경제의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대중경제노동자연맹(UTEP)의 대표로 하원에 입성했다. 이날 UTEP를 비롯한 여러 사회단체가 수천 개의 무료 급식소에 대한 정부의 식량 공급 중단에 대응하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주요 진입로를 차단하고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오늘은 긴박감이 느껴진다’며 사라초는 내 어깨 너머를 흘낏흘낏 쳐다보면서 말을 시작했다. 음소거된 내 뒤의 텔레비전에는 팔을 낀 채 인근 도시 아벨라네다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진격하는 시위대를 맞을 준비를 마친 완전무장한 진압 경찰의 대열이 보였다. 사라초는 ‘우리는 21세기의 새로운 노동자, 즉 일은 하지만 권리가 없는 노동자를 대표한다’고 했다.
사라초 뒤에는 파란색과 노란색 작업복을 입은 고물 수집 노동자가 폐지를 쌓고 있는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녀가 당선된 날 함께 일하던 친구가 뿌리를 잊지 말아 달라며 준 선물인데, 그때부터 늘 의원실에 걸어놓고 있다고 한다.
아르헨티나가 국가부도를 선언한 2001년 경제위기 당시 어린 사라초는 부모님과 함께 폐지를 주우러 다니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친해졌다. 그녀는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오늘날의 사회운동이 훨씬 더 조직화돼 있다고 했다. 그녀는 사회운동이 대표와 대변인을 갖추고 언론과 SNS에서도 강력한 존재감이 있다며 ‘우리는 뭉쳤다. 우리는 강력하다. 국민을 굶기는 정부 정책을 국민이 오래 참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 있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