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처리 매뉴얼 일체 무시한 강남 D중학교…교육청은 모르쇠

경찰 출동 사건 접수·보고 누락…정식 조사 없이 자의적 대응으로 종결

학교폭력 사안의 ‘발생-조사-보고’ 진행 과정 흐름도. ⓒ교육부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

학교폭력 은폐 의혹이 일고 있는 강남 D중학교가 문제의 학폭 사건을 처리한 과정은 교육부 매뉴얼을 무시한 채 자의적으로 이뤄졌다. 학폭을 인지했음에도 사건을 정식으로 접수하지 않았다. 학폭 조사를 위한 법정 기구를 거치지 않고, 사건을 종결했다. 절차 누락은 가해 학생이 명시된 어떠한 기록도 남기지 않는 결과로 이어졌다. 일선 학교의 학폭 처리를 관리·감독해야 할 교육지원청은 단순 해프닝이었다는 학교 측 주장을 받아들여, 조사를 마무리했다. 서울시 학사 전반을 책임지는 서울교육청은 담당 업무가 아니라며 외면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취재를 종합하면, D중학교는 지난해 5월 발생한 학폭 사건을 처리하면서 교육부의 ‘학폭 사안처리 가이드북’에 규정된 절차 일체를 누락했다.

교내에서 학폭이 발생했으나, D중학교는 피해 학생 측이 학교가 아닌 경찰로 신고해 사건을 접수·보고하지 않았다는 황당한 주장을 내놨다. 조사·심의·처분 등 일련의 절차가 모두 누락됐다.

경찰 출동 학폭 접수 누락으로 의혹 키운 학교

사건을 처음 접수한 건 경찰이었다. 피해 학생의 학부모가 112에 ‘중학생 딸이 남학생 5명으로부터 폭행 및 욕설을 당했다’고 신고했다. 학교로 출동한 지구대 경찰관은 피해 학생과 학부모 진술을 듣고, 관할 경찰서에 공동폭행으로 발생보고를 올렸다.

D중학교는 경찰과 피해 학생 학부모가 학교를 찾아오면서 학폭을 인지했다. D중학교는 이때 사건을 접수해야 했다.

교육부 매뉴얼은 학교가 학폭을 인지하는 즉시 접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학교가 사건을 접수할지 여부를 판단할 여지는 없다. 학교가 직접 신고를 받았든, 경찰에게서 112 신고 사실을 들었든, 학교가 학폭을 인지한 경로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학폭 접수는 신고 접수 대장에 사건을 기록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고 접수 대장은 학교가 학폭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첫 번째로 작성하는 문서다. 접수 일시와 신고자, 신고 내용, 작성자 등 최소한의 항목만을 간략하게 기재하게 돼 있다.

D중학교는 해당 사건을 신고 접수 대장에 기재하지 않았다.

신고 접수 대장은 약식 문서이지만, 이를 작성하지 않는 건 학폭 처리 매뉴얼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사건을 접수하지 않으면 이후 진행해야 할 모든 절차가 무시된다. 가이드북은 ‘학교폭력 신고 접수 대장은 학교장, 교원의 학교폭력 은폐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초자료로 활용되므로, 사소한 폭력이라도 신고한 것은 접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이기백 대변인은 D중학교의 접수·보고 누락에 대해 “통상적이지 않다는 점은 명확하다”며 “학교와 교사가 절차상 문제의 책임 소재를 스스로 키우는 방향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학폭 조사 법정 기구도 안 열고 사건 종결

D중학교는 사건을 접수·보고하지 않고, 일단 상황 파악에 들어갔다. 사건 당일, 가해·피해·목격 학생을 면담했다. 면담 기록은 남기지 않았다. 가이드북에는 학생 면담을 진행할 때, 개별 면담자로부터 학폭 내용을 육하원칙에 따라 정리한 확인서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D중학교는 같은 날 가해 학생 학부모를 학교로 호출했다. 가해·피해 학생 학부모들은 학교 측과의 면담 이후, 서로 대화를 나눴다. 학생 면담에 배석했던 경찰은 학부모 면담에서는 빠졌다.

피해 학생 측이 돌연 입장을 바꿨다. 피해 학생 학부모는 가해 학생 학부모와 대화를 나눈 직후, 피해 학생이 오해한 것이니 신고를 취소하겠다는 의사를 학교 측에 전했다. 피해 학생 학부모는 사건 이튿날 경찰서를 찾아가 신고를 취소하고, 학교에 이를 알렸다. 경찰서를 방문할 땐 변호사와 동반했다. 다음 날엔 학교를 방문해, 신고를 취소한다는 내용의 문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D중학교는 신고 취소를 빌미로 사건을 종결했다.

오인신고 사건도 매뉴얼에 정해진 조사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학교가 사건을 인지·접수하면, 학폭 전담기구가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전담기구는 개별 학교 차원에서 운영한다.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교감과 학폭 책임교사, 학부모 등으로 구성한다. 학부모는 전담기구 구성원의 3분의 1 이상이어야 한다.

전담기구 조사는 가해·피해 학생과 학부모 면담, 주변 학생 조사, 입증자료 수집 등 방법으로 이뤄진다. 전담기구 조사 결과 오인신고로 확인되면, 종결 보고서를 작성해 교육지원청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D중학교는 학폭 처리 과정에서 전담기구를 개최하지 않았다.

D중학교가 해당 사건과 관련해 작성한 문서는 ‘신고 접수 대장의 별첨’ 한 장이다. 별첨은 가이드북에 없는 학교 측 자체 양식으로 작성됐다. 피해 학생 학부모가 경찰관과 함께 학교를 방문해 사건을 인지했고, 피해 학생이 쉬는 시간에 학생 여러 명에게 놀림을 당했다고 주장했으나, 피해 학생 측이 경찰 신고를 취소했다는 내용이다. 가해 학생의 인적사항은 기재하지 않았다. 피해 학생 측으로부터 경찰 신고 취소 확인서를 받았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볼 때, 사건 발생 이후 최소 이틀이 지난 시점에 작성됐다.

이기백 대변인은 “의도적으로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 한 것으로 읽힌다”며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경미한 사건도 전담기구를 소집하는 것에 비추어 볼 때 너무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미숙지였다’ 학교 주장 그대로 수용한 교육지원청

D중학교는 상급기관에 사건을 보고하지 않았다.

학교는 사건을 인지하면 48시간 이내에 교육지원청에 보고해야 한다. D중학교가 보고를 누락하면서 학폭 처리에 대한 상급기관의 관리·감독 체계가 무력화됐다.

상급기관은 D중학교의 학폭 처리 문제에 대해, 뒤늦게 조사에 나섰다. 강남서초교육지원청은 지난 3일 D중학교를 방문해, 학폭 처리 적정성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D중학교가 사건 접수·보고를 누락했다는 점을 확인했다.

교육지원청은 단순 해프닝이라는 D중학교 주장을 그대로 수용했다. 절차 누락 원인이 매뉴얼 미숙지였다고 결론내렸다.

D중학교 주장과 교육지원청 결론은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학폭 책임교사가 업무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매뉴얼을 숙지하지 못했을 수는 있지만, 학폭 처리는 책임교사 한 명이 전담하는 구조가 아니다.

해당 사건은 112로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이 학교로 출동하고 학교 측이 학부모를 호출하는 과정에서 교감 또는 교장에게 보고됐을 것으로 보인다. D중학교가 학폭 처리 절차를 누락한 배경에 사건을 은폐·축소하려는 의도가 작용했을 가능성을 조사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 징계 사유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 교육공무원 징계양정 규칙은 학폭을 고의로 은폐하거나 대응하지 않은 경우를 징계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기백 대변인은 “책임교사의 미숙함으로 몰고 가려는 것이지 않겠냐”며 “적어도 교감까지 보고가 올라갔을 것”이라고 했다.

D중학교에 대한 교육지원청 조치는 매뉴얼 숙지를 강조하고, 향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겠다는 수준에 그쳤다.

교육지원청은 추가 조사나 감사를 진행하지 않고 사안을 마무리한 상태다. 내부적으로는 해당 사건을 종결했고, 외부에서 감사 요청이 있을 경우 검토하게 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은 방관하는 자세다. 중학교 학폭 처리는 교육지원청 담당이라는 것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D중학교 학폭 처리에 대해 공식적으로 보고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중학교 학폭 처리에 대한 장학은 관할 교육지원청이 진행하고, 감사 필요성도 교육지원청이 결정한다”면서 “간혹 중대하거나 심각한 사안은 본청(교육청)이 감사를 진행하기도 한다”고 했다.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르면, 교육감은 관할 구역 내 학폭에 대해 해당 학교에 경과 및 결과 보고를 요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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