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야당에 협치를 말하는 파렴치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서울 강북구 국립4·19민주묘지를 찾아 기념탑에서 참배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2024.04.19. ⓒ뉴시스

선거가 야당 압승으로 끝나자 예상대로 보수언론 등은 협치를 노래하며,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법안에 대한 야당 주도의 재의결을 입법 폭주라고 비난한다. 성격이 모나서 그런지 오래전부터 협치, 상생이란 말이 좋지 않았다. ‘무엇을 위한’이 빠진 채 도덕 교과서의 “친구랑 싸우면 나쁜 어린이”라는 식의 때론 무의미한 때론 속이 빤히 보이는 말이라고 여겨졌다.

4년 전 21대 총선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야당 압승의 출구조사 결과에 당시 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워워’ 하며 자제를 시키던 모습이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야당과 국회는 내내 자제하며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였다. 자신을 지지해준 국민에게는 답답함을 안겼고, 언론에게도 “국회가 효율이 낮다”는 조롱을 들었다. 대선에 지고 나서 뒤늦게 ‘검수완박’에 나선 것은 못나고 처량했다. 여전히 민주당에는 ‘전 정부 때 뭐하고’ ‘지난 국회 때 뭐하고’라는 꼬리표가 어김없이 따라붙는다.

지난 2년간 협치의 모습은 어떤가. 여당이 장악한 상임위는 개혁법안이 제출돼도 어디 가서 낮잠을 자는지 찾아 헤맬 만큼 의사일정이 진척되지 않았고, 어찌어찌 통과돼도 ‘상원’ 법사위가 장판교의 장비처럼 떡 버텼다. 거길 또 어떻게 넘어도 본회의 의사일정에 여당이 반대하고, 마침내 본회의에서 통과돼도 법안이 원효대교도 넘기 전에 용산에서는 거부권 행사 의사가 표명됐다. 하나같이 짧으면 몇 년, 길면 십수 년 이해당사자와 약자들의 염원이 담긴 법안이 누더기가 된 채 거북이걸음이었다. 용산에서 다시 국회로 돌아올 때는 깡총깡총 토끼같이 빨랐고.

협치의 핵심은 여야가 아니다. 특히 총선에서 정권 심판의 압도적 민의가 명확하게 표시된 이후는 더욱 그렇다. 협치라면 윤 대통령과 국회 간에 필요하다. 이 역시 방향 없이 주고받는다면 거래일 뿐이다. 거래야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으니 특별히 권장할 일도 아니다. 국민의 뜻을 받드는 방향에서 대통령과 국회가 협치해야 한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설 때 전임 정부 죽이기는 어지간히 하고 정리될 줄 알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나 주변의 개인비리랄 것이 없는 데다 정권의 ‘주요 목표’는 사라진 권력이 아니라 미래의 경쟁자이니. 그러나 예상이 어긋났다. 아직도 잊을 만하면 압수수색과 수사, 그리고 여전한 재판 소식이 전 정권과 현 야당 모두에서 이어진다. 가히 행정권력의 역량이 총동원돼 양측에 난사됐다고 할 수 있다.

뿐인가. 여당 안에서도 이준석이 축출되고, 안철수와 나경원이 역적으로 몰리고, 김기현도 낙향하여 위리안치됐다. 지금은 한동훈이 역심을 품고 사병을 양성했다는 서슬 퍼런 풍문이 한창이다. 대통령과 여당 안에서도 협치는커녕 살풍경이다. 누가 누구에게 협치를, 상생을 말한단 말인가.

야당에 협치를 말하려거든, 그전에 화자들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하지 않은가. 천하의 둘도 없는 범죄자 이재명이 야당사 전무후무한 비명횡사 공천으로 당을 무너뜨렸다고 한 것이 한 달도 안 됐다. 이어서 돌풍을 일으키며 국민 상당수의 지지를 받아 12석 야당의 당수가 된 조국 대표는 지난 5년, 한국의 부패기득권의 상징이자 국기문란사범으로 취급됐다. 왜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이들에게 투표했는가. 과연 오늘 같은 민심의 폭발이 아니라면 협치와 상생이 거론이나 됐겠으며, 그 대상이 이재명과 조국이었겠는가. 총선 결과를 보고서야 황급히 협치를 무슨 주술처럼 외는 것은 너무 파렴치하지 않은가.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