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을 도출하는 공론화 과정이 막바지에 다다랐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위원회는 이번 주말 두차례 시민대표단 숙의토론회와 설문조사를 끝으로 공론화 과정을 마친다. 토론회 뒤 취합된 시민대표단의 의견은 국회 연금특위에 전달돼 연금개혁안을 마련하는 바탕이 된다.
공론화위는 오는 20일과 21일 두 차례에 걸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500명의 시민대표단이 참여하는 숙의토론회를 진행한다. 지난 13일, 14일에 이은 숙의토론회다. 21일 마지막 숙의토론회 후에는 시민대표단을 대상으로 소득대체율 및 보험료율 등 연금개혁의 7가지 의제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다.
설문조사 결과 등 시민대표단 숙의토론회 주요결과는 오는 22일 오후 공론화위의 종합 브리핑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공론화 결과는 국회 연금특위에 전달된다. 이를 바탕으로 연금특위는 21대 국회가 종료되는 5월 안에 연금개혁안을 처리하겠다는 계획이다.
앞서 공론화위는 지난 13일, 14일 시민대표단 숙의토론을 진행했다. 첫번째 숙의토론에서는 연금개혁의 필요성을 주제로 진행됐으며, 두번째 토론에서는 소득대체율·연금보험료율 등 모수개혁안을 두고 토론을 벌였다.
20일 진행된 숙의토론회에서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관계 등 구조개혁안을 주제로 토론회가 진행된다. 21일에는 연금개혁의 모든 의제를 포함한 종합 토론을 벌인다.
숙의토론회에서 다뤄지는 의제는 앞서 지난 3월 초 의제숙의단이 합의해 도출했다. 의제숙의단은 노동자, 사용자 등 국민연금의 이해관계자 3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연금개혁 7개 의제인 ▲소득대체율 및 보험료율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관계 조정 ▲의무가입연령 및 수급개시연령 ▲퇴직연금제도 개선 방안 ▲국민연금과 직역연금의 형평성 제고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방안 ▲공적연금 세대 간 형평성 제고 방안 등에 대한 대안을 정리했다.
이중 퇴직연금제도와 관련해서는 이해관계자들의 별도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 등으로 '이번 공론화 의제로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 이에 이번 시민대표단 숙의토론회의 의제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공론화위는 시민대표단 설문조사에서는 중도인출(중간정산) 개선방안에 한정해 부가질문으로 퇴직급여제도와 관련한 질문을 포함할 예정이다.
국민연금공단(자료사진) ⓒ뉴시스
'더 내고 더 받기' vs '더 내고 그대로 받기'로 압축된 모수개혁
연금개혁 의제에서 가장 큰 쟁점은 '내는 돈(보험료율)'과 '받는 돈(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모수개혁이다.
의제숙의단은 모수개혁과 관련,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40%에서 50%로 늘리는 '더 내고 더 받는' 1안, 보험료율을 12%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40%로 유지하는 '더 내고 그대로 받는' 2안을 제시했다. 1안은 국민연금의 소득보장 강화를 주장하는 측이 지지하는 안이며, 2안은 재정안정을 주장하는 측이 지지하고 있다.
당초 전문가들이 제안한 초안에서 2안은 보험료율을 15%까지 인상하는 것을 주장했으나 의제숙의단 합의 과정에서 12% 인상으로 조정됐다. 특히 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하는 사용자 측이 부담 증가를 우려해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가지 안 모두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만큼 기금 소진 속도를 예상보다 늦을 수 있다. 현행 국민연금 제도(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할 때는 2055년 기금이 소진될 것으로 전망됐는데 '더 내고 더 받는' 1안은 6년(2061년), '더 내고 그대로 받는' 2안을 선택하면 7년(2062년) 연장된다.
1안의 경우 받는 돈이 늘어나면서도 기금 소진 시점이 1년만 차이나는 이유는 소득대체율 인상 효과가 30~40년 뒤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하게 된다면 현재 수급자에게 바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보험료를 납부하는 가입자에게 적용된다. 소득대체율 50%가 내년부터 적용된다면 이전까지 가입한 기간은 기존 소득대체율이, 내년부터 앞으로 가입기간은 소득대체율 50%이 적용된다. 온전히 소득대체율 50%를 적용받는 것은 내년부터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신규 가입자인 2007년생부터다.
기금 소진 후 보험료만으로 급여를 지급하는 완전부과식으로 국민연금이 운영될 경우 부담해야 하는 보험료율인 '부과방식 비용률' 차이는 크다. 1안은 받는 돈이 늘어난 만큼 부과방식 비용률이 2078년(최고 시점) 기준 43.2%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같은 해 2안은 35.1%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 급여액도 차이를 보인다. 현재 2025년 신규 수급자 평균 가입기간 19년을 기준으로 급여액은 약 69만원이다. 2안대로 소득대체율을 40%로 유지한다면 현재 20~30대가 수급자가 되는 2060년 신규 수급자 평균 가입기간 26년을 기준으로 급여액은 66만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30대의 가입기간이 더 길면서도 급여액이 낮아지는 이유는 지난 2007년 2차 연금개혁 당시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까지 점진적으로 낮아지도록 계획했기 때문이다. 올해 소득대체율은 42%로, 매년 0.5%씩 낮아져 2028년 40%에서 고정될 예정이다.
만일 1안대로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릴 경우, 2060년 평균 가입기간을 30년까지 늘린다고 가정하면 급여액은 95만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1안을 지지하는 소득보장론 측은 노인빈곤해소를 위해 소득대체율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14일 숙의토론회에서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금의 청년이 26년만 가입하고 나중에 받을 연금을 계산하면 66만원에 불과하다. 노후 최소 생활비(124만원)의 절반"이라고 지적하면서 "여기에 기초연금을 조금 얹어서 노후 최소생활비를 확보하자는 것"이라며 주장했다.
2안을 지지하는 '재정안정론' 측에서는 소득대체율 인상이 미래세대에 부담을 줄 것이라고 반대한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숙의토론회에서 "1안은 2안에 비해 재정적인 지속가능성을 악화시키는 개악"이라며 "울트라 초고령사회로 가는 한국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둔 개혁 방안과 거꾸로 가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연금은 적립 기금을 유지하는 방안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소득보장론 측은 국고 지원을 늘려 국가가 재정 부담을 덜어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 교수는 "소득 상위 20%가 종합소득세의 90%를 납부하고, 40대 이상이 80% 이상을 부담한다"면서 "고소득자와 중장년이 세금을 더 내므로 국민연금에 조세가 투입되면 세대별·계층별 차등이 저절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반면 석 교수는 "국고도 결국 국민 부담이고 (세금을 더 낼 수 있는) 고소득층도 한정돼 있다"며 "생산 가능 인구가 감소하는 초고령 사회에서 국고 지원을 전제로 연금을 설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반박했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이 18일 국회 앞에서 '안심하고 은퇴할 권리, 국민연금 강화하라'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관계...수급대상 유지 vs 축소
오는 20일 진행될 시민대표단 숙의토론회에서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관계를 의제로 진행된다. 특히 기초연금의 수급대상 조정이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대표단에 제안된 두가지 대안 모두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현행대로 구분해서 운용하는 것을 전제한다. 다만 기초연금 수급대상에 대해 차이를 보인다. 1안은 수급대상을 현행 유지하면서 지급을 높이는 방안을 향후 고민하는 안이며, 2안은 수급범위를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차등급여하는 안이다.
당초 전문가들이 제안한 초안에서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기능과 구조를 통합·개편하는 안이 제시되기도 했으나, 의제숙의단 과정에서 제외됐다. 제외된 안 모두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약화하거나 배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초연금은 65세 이상의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세금으로 마련한 재원으로 매달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노후 소득 보장제도의 하나다. 지난 2014년 박근혜 정부에서 월 10만원이던 기초노령연금을 확대 개편한 것이다. 당초 모든 노인에게 보편 지급하기로 했으나, 추진 과정에서 재정 부담을 이유로 소득에 따라 수급대상을 제한했다.
기초연금 시행 당시에는 월 최대 20만원을 지급했는데, 이후 2018년 9월부터 월 25만원으로 오르는 등 금액이 단계적으로 계속 불어나 2021년부터는 월 최대 30만원 이상으로 늘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기초연금을 40만원까지 인상하는 것을 국정과제로 삼고 있다.
1안 대로 수급대상을 현행대로 유지할 경우, 뒤따라오는 문제는 '기초연금-국민연금 가입 기간 연계 감액' 문제다. 현재는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길수록 기초연금액이 줄어들도록 설계됐다.
기초연금법에 따르면 국민연금을 받는 노인의 기초연금액은 국민연금 수령액과 A값(국민연금 전체 가입자 평균소득의 3년간 평균액)를 고려해 산정한다. 대체로 기초연금 기준연금액의 150%(1.5배) 이상의 국민연금을 받으면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 따라 기초연금이 줄어든다. 지난해 기준 기초연금 기준연금액 월 32만3천원의 1.5배를 국민연금으로 받게 되면 기초연금이 깎인다는 이야기다. 통상적으로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11년 이하면 기초연금 전액을 받지만, 가입 기간이 12년을 넘으면 1년마다 기초연금이 약 1만원씩 줄어든다.
국민연금 평균 가입기간이 점차 늘어나는 만큼 기초연금 전액을 받지 못하는 수급자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기초연금이 시작된 2014년 기초연금이 삭감된 수급자는 전체 수급자 중 3.3%(14만3천665명) 수준이었으나, 지난 2022년에는 6.4%(38만명)으로 두배 가까이 늘었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 가입을 꺼리게 만든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국민연금공단의 '국민연금 공표통계' 자료를 보면,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국민연금 자발적 가입자 수는 85만8,829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2022년 12월 말(86만6,314명)보다 7,485명이 줄었다. 자발적 가입자는 '임의가입자'와 '임의계속가입자'로 구분되는데 '임의계속가입자'는 의무가입 상한 연령(만 60세 미만)이 지났지만, 계속 보험료를 내며 만 65세 미만까지 가입하겠다고 신청한 사람을 말한다. '임의가입자'는 의무가입 연령이지만 전업주부 등 소득이 없지만, 본인 희망으로 가입한 사람을 뜻한다.
이를 두고 임의가입 대상이 되는 18∼59세 인구가 줄고 있는 상황과 함께 임의계속가입 대상인 60세 이상 노인들이 힘들게 국민연금에 가입기간을 늘리면 오히려 기초연금액이 깎이는 점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에 '기초연금-국민연금 가입 기간 연계 감액'을 폐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는 지난 2018년 국민연금 가입 유인 저해, 제도 복잡성 등의 문제를 지적하며 해당 제도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정부에 권고한 바 있다.
기초연금 수급대상을 축소하는 2안은 기초연금액 인상을 위한 사전 작업으로 보인다. 이미 윤석열 정부가 목표로 하는 '기초연금 40만원' 달성을 위한 방안으로 제안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기초연금 적정성 평가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노인 소득 하위 70%(선정기준액)에게 주는 기초연금을 기준 중위소득의 100%로 축소하되, 액수는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늘리는 모수 개혁안을 제시했다.
현재 기초연금 수급대상을 가르는 노인 소득 하위 70%를 선정하는 기준액은 2023년 기준 202만원(1인 가구)이다. 전체 국내 가구의 소득의 중간지점인 중위소득은 같은 해 기준 207만7,892원(1인 가구)다.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는 기준 자체를 높이는 셈이다.
다만 수급대상을 축소하는 만큼 기초연금이 애초에 목표로 했던 보편적인 노인에 대한 소득보장제도라는 성격이 훼손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기초연금은 보험료 없이 국가 재정으로 충당해 지급된다. 기초연금은 보험료를 내지 않고 자격요건만 갖추면 받을 수 있는 만큼 노인 빈곤의 사각지대를 해소에 일정 부분 역할을 하고 있다.
의무가입연령과 수령연령 상향도 중요한 의제다. 이에 대해 의제숙의단은 의무가입 상한연령을 만 64세로, 수급개시 연령은 만 65세로 상향하는 단일 안으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의무가입연령과 수령연령의 상향은 그대로 연금개혁안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애초 전문가 초안에서는 현행을 그대로 유지하는 안과 상한연령을 만 64세로, 수급개시 연령은 만 68세까지 상향하는 안을 제안했으나, 의제숙의단 과정에서 제외됐다.
이 밖에 국민연금과 공무원 연금 등 직역연금의 형평성 제고에 대해서는 현행 유지와 정부와 당사자가 참여하는 대화기구 구성 등이 제안됐다.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 방안에 대해서는 ▲직업훈련 및 교육 크레딧 ▲저소득 지역가입자 보험료 부담 완화 등이 다수 의견으로 제시됐다.
공적연금 세대 간 형평성 제고 방안으로는 ▲증세(소득세, 법인세)를 통한 재정 투입 ▲청년주택, 공공어린이집 및 노인시설 등에 대한 국민연금 기금 투자 ▲국가의 국민연금 지급에 대한 의무를 국민연금법에 명시 등이 나왔다.
숙의토론 후 발표되는 공론화 결과를 국회 연금특위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국회가 이에 대한 입장을 미리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론화 결과를 어느 정도 수준으로 개혁안에 반영할지는 국회 논의 과정에 달렸다. 정부 또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했을 뿐 공론화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다. 재정안정론 측에서는 2안의 보험료률 12% 인상도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시민대표단 의견 외에 다른 대안이 국회 논의 과정에 끼여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5월 말 임기가 종료되는 21대 국회에서 연금개혁안을 처리하지 못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 22대 총선에서 기존 국회 연금특위 위원 중 7명이 국회 재입성에 실패하면서 동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여야 간사인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과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마저 재선에 실패한 상태다. 만일 22대 국회로 넘어가게 된다면 활동 시한이 끝난 연금특위 구성부터 다시 논의를 진행해야 하는 만큼 시간이 더 밀릴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