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2000명은 과학적, 최소한”이라더니, 느닷없이 50% 세일?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의대 정원 증원 등 의료개혁과 관련 대국민담화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4.4.1 ⓒ뉴스1

정부가 의료대란 사태를 해소할 목적으로 내년도 의대 증원 규모를 최대 50%까지 낮출 수 있는 방안을 도출했다. 대학 총장들의 건의를 수용하는 모양새를 띄었지만, 사실상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먼저 주문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전공의와 의대생 등 의료계를 설득할 지도 불투명하지만, 대통령이 대국민담화까지 하며 정당성을 강조한 ‘2000명’이 별다른 논의나 설명도 없이 절반까지 줄 수 있게 돼 혼선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연 뒤 브리핑을 통해 “대학별 교육 여건을 고려해 금년에 의대 정원이 확대된 32개 대학 중 희망하는 경우 증원된 인원의 50% 이상, 100% 범위 안에서 2025학년도에 한해 신입생을 자율적으로 모집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2000명 기준으로 내년 의대 증원 숫자를 배정받은 각 대학은 절반까지 줄여서 모집할 수 있다. 이론상으로는 내년 대학정원이 1000명 늘어나는데 그칠 수 있으나 증원 숫자대로 모집하겠다는 대학도 있고, 감축규모 결정도 자율이어서 대체로 1500~1700명 증원이 이뤄질 것이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 방안으로 병원에서 이탈해 업무를 거부하고 있는 전공의들이나 휴학계를 내고 수업을 듣지 않고 있는 의대생들을 복귀시키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다. 의료계는 여전히 증원 1년 유예, 증원 규모 원점 재검토 등을 요구하고 있다.

증원을 최대 50%까지 줄일 수 있다는 방안보다 더 큰 문제는 결정 과정이다. 동아일보는 20일 이번 방안을 대학 총장들이 아닌 이주호 부총리가 먼저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17일 일부 국립대 총장을 만난 이 부총리가 자율감축 방안을 제안했고, 당시 참석자를 중심으로 총장 6명이 건의서를 작성해 18일 교육부에 전달했다. 또한 이번 자율감축안을 당연히 대통령실도 보고를 받고 동의를 표한 것으로 보도됐다.

문제는 이전까지 정부가 2000명 증원안을 과학적으로 산출된 안이라고 강조하면서 의료계의 격렬한 반발까지 불사하며 추진했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51분간 TV로 생중계된 대국민담화를 통해 “의대 증원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하여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이고,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한 논의를 거쳤다”고 거듭 강조했다. 16일 국무회의에서도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바 있다.

그런데 증원규모를 상당폭 줄이는 방안에 대해 아무런 공개 논의도 없이 ‘총장 건의 수용’이라는 형식으로 입장을 바꿨다. 그간 민주당 등 야권과 시민사회는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고 증원 규모도 2000명을 고집하지 말고 논의할 것을 촉구해왔다. 그러나 대통령실과 정부는 이런 제안에 응하지 않은 채 기존 입장을 고수해왔다.

19일 한 총리는 “정부는 국립대 총장들의 건의를 전향적으로 수용해 의대생을 적극 보호하고, 의대 교육이 정상화돼 의료 현장의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하나의 실마리를 마련하고자 결단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왜 사태가 이렇게 악화할 때까지 2000명을 고집한 것인지, 아무런 공개적 논의 없이 입장을 바꾼 것인지 설득력이 부족하다.

결과적으로 2000명 증원에서 별다른 근거 없이 후퇴한 셈이어서 당연히 의료계에서는 “2000명이 과학적이고 최소한이라는 주장이 허물어졌다”는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의료계가 더 버틸 동력이 될 수도 있다.

당장 내년 입시를 준비하는 교육현장의 혼란도 불가피하게 됐다. 정부는 2025년도 의대증원은 2000명이라고 주장하지만 수험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서는 이 역시 믿기 어렵게 됐다.

아울러 다음 주로 예정된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회담에서 의료개혁 문제가 다뤄질지도 관심사다. 현재로서는 대통령실과 정부가 주도한 의대증원이 벽에 막힌 채 의료시스템 붕괴까지 부르는 형국이어서 정치권은 물론 의료계와 시민사회가 함께 하는 논의를 열고, 의료계도 이에 참여하며 사태를 전환시키는 방안이 절실하다. 이미 사회적 협의를 제안한 이 대표를 만나 윤 대통령이 절충안을 내놓을 것인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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