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동안 공개 행보를 하지 않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방한한 외국 정상 영부인과의 일정도 비공개로 소화했다. 김 여사는 23일 공식 방한한 클라우스 베르네르 요하니스 루마니아 대통령의 배우자와 일정을 함께 했다. 그러나 양측 합의에 따라 비공개로 하기로 했다는 것이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정상 외교에 당연히 공개되는 영상과 사진도 없다. 물론 우리측 요청을 루마니아가 받아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대통령 배우자가 있지만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사정을 무어라 설명했을지, 상대국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별로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지난해 12월 갑작스러운 독일, 덴마크 순방 취소 이후 또 이런 일을 겪는다.
일각에서는 김 여사의 이번 행보를 공식 활동을 재개하기 위한 사전포석으로 보기도 한다. 김 여사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복귀한다면, 단언컨대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김 여사가 지난해 12월 자취를 감춘 직접적 이유는 명품백 수수 사건이었다. 윤 대통령은 방송 인터뷰에서 “박절하지 못해서”라고 항변했지만 명품백 수수와 김 여사의 부적절한 언행에 국민 다수가 분노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지만 소환조차 되지 않았고, 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역시 의혹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그래서 집권당에 압도적 참패를 안긴 총선 결과에 김 여사의 ‘지분’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윤 대통령이 기자들과의 자유로운 질의응답을 피하는 핵심 이유 중 하나가 김 여사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라는 시각도 있다.
대통령 배우자가 자취를 감추거나 비공개로 활동하는 것은 국격과 국민 자존심을 훼손하는 일이며 국익에도 도움이 안 된다. 그러나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오는 것도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없다. 그렇다면 해법은 하나뿐이다. 의혹을 투명하게 밝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것이다. 공정한 법 적용은 정치인 윤석열을 가능케 한 핵심 이미지인데 부인 문제에서 계속 꺾인다면 국정동력 자체가 바닥날 수 있다. 야당은 이번 총선 과정에서 관련 의혹을 낱낱이 밝히겠다고 약속했고, 압도적 다수 의석을 얻었다. 이제는 현 정권에서든, 다음 정권에서든 김 여사 관련 의혹을 밝힐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여당 안에서도 수긍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결자해지해야 한다. 김 여사 관련 의혹 규명은 보수층, 진보층 모두에서 공감이 높다는 여론조사도 많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말했으나 지키지 않아 총선 참패를 부른 “국민은 늘 옳다”는 경구를 되새겨보길 권한다. 그래야 더 큰 정치적 실패를 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