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시늉뿐인 협치에 속을 국민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에 초대해 취임 후 720일 만에 첫 회담을 가졌지만 아무런 합의가 없었다. 2시간 넘게 진행된 회담 끝에 확인된 것은 국정기조를 바꾸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몽니뿐이다. 대통령실은 '소통의 시작'이라며 애써 의미를 부여했지만 이재명 대표의 여러 제안을 모두 거절한 사실 자체를 다르게 해석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이날 이 대표는 R&D예산 복원과 민생회복지원금, 이를 위한 추경 편성, 비판언론 중징계 문제, 이태원참사특별법, 채상병특검법, 김건희 여사 등 가족과 주변인 의혹, 외교안보기조 전환 등 다양한 주문을 쏟아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정부의 공식입장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요구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야당 대표를 불러 협치의 모양새만 만들자는 계산이었는지, 어떤 제안도 수용하지 않겠다는 기존 태도를 반복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의 도움 없이는 국정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4.10총선 결과로 빚어진 여소야대 국회에 더해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20~30%에 머무르며 핵심 지지층 내에서도 이탈이 가속화되는 상황이다. 이런 조건에서 야당 대표와 만나 국정운영의 동반자임을 인정하고 협력하려는 모습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총선 민심은 ‘야당 대표와 만나라’거나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라’를 넘어서 ‘국정기조를 바꾸라’는 구체적인 주문이었다. 무릇 대화와 협력관계라는 것은 상대방의 여러 제안 중 일부라도 전향적으로 검토하려는 자세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이런 안일한 상황인식이라면 남은 임기 3년 내내 여야 대치 국면이 이어질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총선 전이라면 강 대 강 대치가 지속된다고 예측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레임덕에 빠진 대통령이 야당과 다수 국민, 심지어 여권 내 이탈자들까지 합세한 거대한 힘에 질식될 위험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정국이 경색되고 갈등이 가파르게 고조될수록 국민들의 고통이 커지겠지만 그에 대한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도 커진다. 시늉뿐인 협치에 속을 국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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