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들어 사헬과 서아프리카 지역은 이슬람 극단주의의 본거지로 부상했다. IS 등이 무슬림 인구가 많고 정치·경제가 불안정한 이 지역을 근거지로 삼아 테러·무장 병력을 전략적으로 육성했기 때문이다. 이후 곳곳에서 테러가 급증하면서 이를 빌미로 미국·프랑스 등이 군사적 개입에 나섰다. 주로 현지 정부와 협업하는 방식으로 대테러 작전을 수행했는데, 10여 년이 지난 현재 이 같은 협력 관계가 곳곳에서 와해되고 있다. 미국과 서방을 거부하고 중국, 러시아와의 협력으로 돌아선 나라가 속출했다. 이를 설명한 포린폴리시 기사를 소개한다.
미국 정부 대표단이 지난 25일 약 1천 명의 미군 철수를 논의하기 위해 니제르의 수도 니아메이를 찾았다. 이로써 이슬람 폭력의 세계적 진원지로 여겨지는 지역에서 유지되던 최대 규모의 미군 병력이 사라지게 됐다.
조 바이든 정권의 상당한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난 7월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군부의 요청으로 미군이 철수하게 됐다. 그동안 미국은 니제르에 있는 두 미군 기지를 유지하고 니제르에 민간 정권을 다시 세우기 위해 워싱턴 D.C.와 니아메이에서 여러 차례 니제르 군부와 부딪쳐 왔다.
사하라 사막 남쪽에 있는 희귀 자원이 풍부한 사헬 지역 전역에서 일어난 여러 쿠데타로 서방의 반테러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러시아 민병대가 발을 들일 수 있게 된 가운데 지난해 말 프랑스군도 니제르에서 철수했다.
러시아군 교관 수십 명이 지난 4월 니제르에 도착했는데, 이는 프랑스군 철수 이후 러시아의 바그너그룹 용병이 진출한 2022년 말리와 2023~2024년 부르키나파소에서 본 패턴과 같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5일 니제르의 동쪽 이웃나라 차드에서도 정부가 미군 주둔에 문제제기를 해 미 특수부대가 철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 국무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는 5월 6일 1차 투표와 필요시 6월 22일 결선 투표를 하는 차드의 대선이 끝날 때까지만 지속될 일시적인 조치라고 했다.
니제르에서의 미군 철수는 군사 정권이 서방 군대를 축출하고 러시아군을 받아들이는 이 지역의 전반적인 추세의 일부라 여겨지고 있다. 미국 안보 컨설팅업체 수판그룹의 연구 책임자 콜린 클라크는 ‘러시아가 진출하면 테러 문제가 악화되고, 러시아가 원하는 것을 모두 추출한 후 집으로 돌아가면 이곳은 악몽 같은 모습’일까 봐 우려된다고 했다.
바이든 정권 관계자는 아프리카 지도자들이 경쟁하는 강대국 중에서 선택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이런 움직임은 러시아와 중국이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아프리카에서 강대국의 경쟁이 어떻게 미국의 안보 지원 노력을 복잡하게 만드는지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군이 니제르에 가져온 장비에는 대공포대도 있다. 현지 무장 단체는 하늘에서 공격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은 미국의 드론 작전을 겨냥한 것이라 이해되고 있다.
미 정부에서 여러 아프리카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카메론 허드슨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니제르의 두 미군기지가 사라지는 것이 실질적인 영향과 상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니제르에서 미군의 역할은 2017년 미군 특수부대원 4명과 나이지리아 군인 4명이 매복 공격으로 사망한 이후 축소됐다. 미국이 니제르에서 펼치는 전투 작전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고, 미국은 유인 항공기와 드론을 이용한 감시 비행과 신호 정보 수집 활동만 하게 됐다. 게다가 작년 쿠데타 이후 미국의 모든 대테러 작전이 중단됐고, 9월에서야 군대 보호 목적으로만 정보, 감시, 정찰 비행이 재개됐다.
허드슨 연구원은 ‘미군 철수의 더 큰 영향은 미국의 평판, 미국의 외교 관계가 러시아로 대체된다는 모양새에 있다. 그것이 실제적인 영향보다 미국에게 훨씬 큰 타격을 준다’고 했다.
미국은 아직 니제르 철수 일정을 발표하지 않았다. 패트릭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은 사헬지역 다른 곳에 병력을 재배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답변을 거부했지만 미국이 지역 파트너와 계속 협력해 ‘테러 위협을 해결하기 위한 옵션을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1월 월스트리트저널은 니제르 쿠데타 이후 미국이 사헬지역 감시 비행을 위해 베냉, 가나, 코트디부아르와 같은 해안 국가에 있는 비행장을 이용하려 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미군이 니제르에 군대를 처음 파견된 것은 2013년 알카에다와 연계된 단체를 감시할 드론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10년 동안 알카에다와 연계된 자마트 누스라트 알 이슬람 월 무슬림(JNIM)과 IS의 분파인 사하라광역이슬람국가(ISGS)을 비롯한 이슬람주의 민병대는 취약한 통치, 불평등, 지역의 여러 문제에 힘입어 꾸준히 성장해 왔다.
수판그룹의 연구 책임자 클라크는 기후 변화도 이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며 ‘특히 사헬은 우리가 세계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문제의 축소판’이라고 말했다. 미 국방부 산하기관인 아프리카전략연구센터에 따르면 최근 몇 년 동안 정치적 폭력과 민간인에 대한 공격이 급증했고, 지난해 이슬람주의자 폭력으로 11,6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한다.
JNIM과 ISGS는 부르키나파소와 말리에서 광범위한 영토를 장악하고 있다. 아프리카전략연구센터의 연구 책임자 조셉 시글은 초국가적 테러단체와의 연계가 이들의 활동에 ‘이념적 가면’을 제공했을 수 있지만, 이는 대부분 수사적 표현에 불과하다며. JNIM과 ISGS와 같은 단체가 거의 전적으로 자율적인, 그러니까 스스로 생겨났고 스스로 지속될 단체라고 설명했다.
미국 당국과 전문가는 JNIM과 ISGS와 같은 단체가 사헬 지역에 집중돼 있기는 하지만 미국에 즉각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네덜란드에 있는 클린겐데일 연구소의 앤드루 레보비치 연구원은 ‘사헬의 무장 단체가 미국 본토를 공격할 의사나 능력이 있다는 징후는 없다. 그들이 이 지역에서 서방 표적을 공격하고 서양인을 납치했지만, 지금까지는 이런 공격을 지역 외부에서도 하는 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바이든은 취임 당시 9·11 사태 이후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 전역에서 벌인 무제한적인 대테러 작전, 즉 ‘영원한 전쟁’에 중점을 둔 정책을 바꾸겠고 선언한 바 있다. 바이든 정권의 한 고위급 소식통은 니제르에서의 미군 철수가 최선책은 아니지만, 니제르의 미군기지가 과거의 반테러정책의 잔재라는 인식이 있다고 했다.
부르키나파소, 기니, 말리에 이어 일어난 니제르의 군사 쿠데타 이후 미국은 민간 통치를 복원하고 미군의 주둔을 유지하기 위해 상당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말리의 카미사 카마라 전 외무장관은 ‘미국은 민주 정권의 수립을 위해 군사 정부에 압박을 가하고 미국이 군사 파트너십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이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미국이 사헬 지역을 등한시하고 위기 상황에서 무력하다는 비난도 있다. 트럼프 정부에서 사헬 지역 특사로 활동한 J. 피터 팜은 ‘최근 사헬 지역과 서아프리카에서 일어난 군사 쿠데타가 해당 국가 국민으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안보가 형식적인 민주주의의 외형보다 중요하다. 선거에 대한 설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미국의 이익에도 해를 끼칠 수 있다’고 했다.
미 국무부의 몰리 피 아프리카 담당 국무부 차관과 미국 아프리카 사령부의 마이클 랭리 장군이 민간 통치로의 이행을 논의하기 위해 3월 니제르를 방문한 후 미국과 니제르 간의 긴장이 고조됐다. 월스트리트저널에 의하면 당시 미국은 이란이 매장량이 엄청난 우라늄의 채굴권을 얻기 위해 니제르와 협상 중이라는 정보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방문 직후 니제르 군사 정권의 대변인 아마두 압드라마네 대령은 미국 관리들이 방문 기간 동안 외교 의례를 따르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미국과의 군사 협력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압드라마네는 텔레비전 성명을 통해 ‘우리는 주권 국가인 니제르의 국민이 스스로 테러와의 전쟁에 진정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파트너와 파트너십 유형을 선택할 권리를 부정하는 미국 대표단의 의도를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또한 니제르 정부는 니제르 정부와 국민에 대한 미국 대표단 수장의 보복 위협을 동반한 무례한 태도를 강력히 비난한다’고 했다.
그러나 바이든 정권의 고위급 소식통은 미국이 니제르의 군사 지도자에게 민주적 통치로 복귀하도록 촉구하는 데 너무 강압적이었다는 주장에 반발했다. 그는 ‘우리는 니제르 정부와 계속 협력하여 니제르 국민에게 안정과 안보를 가져올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우리는 꽤 유연하게 대처했다고 생각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민주적 통치로의 복귀를 향한 진전의 조짐이 보이지 않고, 대략적인 정권 전환 일정도 나오지 않고 있어 우리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지 의문이 생겼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