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늦게나마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축하합니다. 집권 여당이 제1당이 되는 게 일반적인 총선에서 민주당은 야당인데도 제1당이 되었고, 역대 총선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을 만드는 과정에서 시민사회·소수정당과 연대하고, 당원 민주주의로 공천 혁신을 이루는 등 민주당이 잘해서 승리한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총선 승리의 핵심 요인은 윤석열 대통령의 실정입니다. 정권 심판 구호가 모든 이슈를 뒤덮었습니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어떤 정책을 내걸었는지, 민주당 지역구 후보가 무엇을 공약했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선거였습니다.
의석수를 보면 여당 참패·야권 압승이지만, 득표율을 보면 민주당 압승은 소선거구제의 효과입니다. 중앙선관위 자료에 따르면 전국 254개 지역구에서 민주당은 50.5%, 국민의힘은 45.1%를 득표했습니다. 비례대표 정당 투표에서 더불어민주연합(26.7%)과 조국혁신당(24.3%)의 득표율을 합쳐도 51%입니다. 집권 초기 두 달을 제외하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40%를 넘은 적이 거의 없었는데,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했습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불만이 민주당에 대한 지지로 연결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윤석열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정치라곤 기초의회 의원도 해본 적 없고, 대통령 후보 시절에 많은 허점이 드러난 검찰총장 출신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문재인 정부에서 집값이 두 배로 뛰었기 때문입니다. 민생에 실패한 정부가 심판받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요.
문재인 정부 시기의 민주당은 또 어땠습니까? 21대 총선에서 180석을 몰아주었는데 무엇을 했습니까? 21대 총선 직후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고,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에게도 노동기본권을 부여하며, 일하다 죽지 않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자는 ‘전태일3법’이 국회에 청원되었을 때 민주당은 당론도 없었고,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개정했지만, 누더기로 만들어 통과시켰습니다. 그래 놓고 정권이 바뀌자 ‘노란봉투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에 했더라면 아무 문제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렇게 개혁 입법을 만들어 민심에 부응했다면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요?
이번 총선에서 상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는 문재인 정부 초기 ‘민주당 20년 집권론’을 말했습니다. 한국 사회를 제대로 개혁하려면 20년 동안 국민들이 민주당을 밀어줘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후 나온 첫 마디는 ‘졌잘싸’였습니다. 촛불 항쟁의 성과로 집권해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해 정말 죄송하고 잘못했다는 반성이 아니라 0.7% 차이로 ‘졌잘싸’했다는 건데, 민주당이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문재인 정부 시절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3년은 너무 길다’는 구호로 돌풍을 일으킨 조국 대표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사람으로서 왜 정권을 넘겨줬는지 반성문을 쓴 적이 없습니다. 3년이 길어서 단축하겠다면 그 이후에 올 정치가 어떤 것인지 전망을 제시해야 하며, 전망은 과거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집값이 폭등해서 청년들이 결혼을 못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반성문 없이 주거권이 보장되는 ‘사회권 선진국’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은 공허합니다.
윤석열 실망이 저절로 민주당 지지 되지 않아 교육 분야에선 학교인권조례에서 학교인권법 제정으로 나아가고 자사고·외고 문제도 해결해야
이제 총선 승리 이후 기쁨의 시간도 끝나고 차분해질 시간입니다. 제가 교사이기 때문에 ‘민주당에 보내는 공개편지’에서 교육 현안과 관련한 법률 두 가지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이 두 가지는 민주당이 문재인 정부 시기의 무능을 극복하고 대안 정당으로 거듭나는 상징적 법률이 될 것입니다.
첫째는 당장 벌어지고 있는 학생인권조례 문제입니다. 지금 지방 의회에서는 국회와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4월 24일에는 충남도 의회가, 이틀 뒤인 26일에는 서울시 의회가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조희연 교육감은 72시간 동안 농성을 하며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김지철 충남 교육감,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모두 시행을 거부하고 지방의회에 재의를 요구하였지만, 두 의회 모두 국민의힘이 2/3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재의결되면 학생인권조례는 폐지될 것입니다.
서울은 2012년, 충남은 2020년에 학생인권조례가 시도의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모두 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할 때입니다. 그러나 지난 2022년 3월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하면서 6월 지방자치 선거에서도 시도의회가 국민의힘으로 넘어간 결과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게 되었습니다. 근본 원인은 민주당의 대선 패배, 지방선거 패배에 있습니다.
현재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고 있는 지역은 경기·광주·서울·전북·충남·제주·인천, 총 7개 지역입니다. 10개 시·도는 학생인권조례를 가져본 적도 없습니다.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자는 사람들은 교권 침해의 원인이다,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등 근거 없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이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한 바 있으니 제가 따로 반박하지는 않겠습니다.
언제까지 학생인권조례를 시도의회에 맡겨두겠습니까? 서울 학생과 대구 학생이 왜 다른 조례 밑에서 살아야 합니까? 다음 달에 개원할 22대 국회에서는 학생 인권 법률을 만들어 대한민국 모든 학생이 같은 조건에서 교육받도록 하길 바랍니다. 21대 국회에 교사 출신 강민정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학생인권법이 제출되었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22대 국회에서는 민주당이 당론으로 추진하길 바랍니다.
둘째는 지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성찰 속에서 자사고·외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사고·외고 폐지를 공약했으나 보수세력의 눈치를 보느라 시행을 2025년으로 미뤄놓고 임기를 마쳤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부도 처리했습니다.
자사고·외고는 대통령 시행령으로 설립된 학교인데, 설립 승인과 재지정은 시도교육감 권한으로 되어 있습니다. 김승환 전 전북교육감과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자신의 공약대로 자사고 재지정을 취소했으나 사립재단의 반발, 보수세력의 여론몰이로 재판까지 가서 결국 실패했습니다. 시도교육감들이 만들자고 한 학교가 아니고 중앙정부가 만들어 놓고선 그 폐해의 해결은 시도교육감들에게 떠넘겨서 발생한 일입니다. 학생인권조례를 시도의회가 아니라 국회가 만들어야 하듯이, 전국의 중학생과 초등학생을 학원으로 밀어 넣는 자사고·외고 문제를 국회에서 법률로 해결해야 합니다.
22대 국회가 학생인권법을 제정하거나 자사고·외고 폐지 법률안을 만들어도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것입니다. 국회의 입법권으로 바뀌는 것이 없다 하더라도 민주당은 민심을 얻을 것이며, 국민들은 다시 민주당에 정권을 맡겨보자는 생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민주당이 이전과 다르게 정말 변하고 있다고 느껴야 행정부도 다시 맡겨보자는 생각이 확산될 것입니다. 국민의 신뢰를 쌓는 것, 그것보다 중요한 정치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윤석열 대통령이 워낙 많은 것들을 잘못해서 22대 국회에서 해야 할 특검이 한 두 개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에 회초리를 든다고 국민들이 민주당을 신뢰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2년 전 대선에서 패배하고도 ‘졌잘싸’ 했던 민주당이 진정으로 성찰하고 거듭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육계에서는 그 출발점이 현안인 학생인권조례와 문재인 정부가 비겁해서 실패한 자사고·외고 문제입니다. 22대 국회에서 민주당의 건투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