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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김윤아식 사랑 이야기, 정규 5집 [관능소설]

정규 5집 (관능소설) ⓒ지니뮤직

뜨거운 음반이다. 욕심 많은 음반이다. 김윤아다운 음반이다. 밴드 자우림의 프론트우먼이자 솔로로 활동하는 김윤아의 다섯 번째 솔로 음반 [관능소설]은 사랑에 대한 욕망을 토해내면서, 사랑이 존재하는 현실의 양태까지 아우른다. 김윤아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넘친다. 사실 사랑에 대해서라면 누구든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수많은 예술가들이 오래도록 사랑을 이야기 하지 않았을까.

그 가운데 하나일 음반에서 김윤아가 사랑에 대한 욕망을 표출할 때, 그의 목소리는 감정과잉이라 할 만큼 극적인 톤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순간 노래는 옛 성인가요들의 손을 잡으며 신파에 가까워진다. 듣다보면 윤시내가 생각나고, 임희숙이 떠오를 정도다. 김윤아의 [관능소설]에 담긴 10곡의 노래 전부가 심장을 꺼내 노래하진 않지만, 전반부에서 김윤아가 연기하듯 노래할 때 김윤아는 사랑에 목숨을 건 사람처럼 걸어온다. 사랑을 말하는 예술작품에서 흔하게 반복하는 모습이다. 사랑은 한 사람을 완전히 사로잡아 정신을 잃게 만들어버리는 최면처럼 재현되는 일이 흔하다. 그래야 진정한 사랑 같다. 삶을 뒤흔들고 넋을 놓게 만들지 않는 사랑 이야기는 어색할 정도다.

그래서인지 이번 음반에서 김윤아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얼마나 많은 장르를 동원했으며, 얼마나 뛰어난 음악가와 원숙하게 협업했는지 보다 분출하는 태도를 취했다는 사실이 더 흥미롭다. 중견 이상의 음악가는 소리를 더하기보다 덜어내는데 치중하는 경향이 있고, 그래야 더 예술적이거나 거장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김윤아가 노래하는 톤이 과해서 부담스럽다 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MV 김윤아(KIMYUNA) - 관능소설(Tales of Sensuality) 장밋빛인생(La Vie Rosée) Title MV

그럼에도 전반부의 김윤아는 익숙한 경향을 역행한다. 심지어 김윤아의 곡은 같은 메시지의 곡들보다 비감하고 극적이다. 자칫하면 클리셰의 연속이 될 노래의 유사함을 구별하는 힘은 곡의 완성도에서 비롯하고, 보컬의 몰입도는 종지부를 찍는다. ‘카멜리아’, ‘종언’, ‘행복을 바라는 게 잘못인가요’로 이어지는 음반의 초반 3곡은 김윤아가 얼마나 뛰어난 보컬리스트이며, 선 굵게 연행하는 주인공인지, 지금까지 노래해온 시간이 얼마나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김윤아는 ‘체취’에서 [관능소설]이라는 음반 타이틀에 걸맞는 육감적인 열망을 고백하고, ‘장밋빛 인생’에서는 탱고를 활용해 농염함의 농도를 끌어올린다.

전반부의 곡들이 흥건했다면 후반부의 곡들은 담백하다. 이 또한 사랑의 양면 같은 실체다. 누구도 욕망만으로 사랑할 수 없고, 그런 사랑은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현실의 사랑은 보잘 것 없기도 하며, 정확하게 확인하기 어려울 때도 많다. 백현진, 이승열, 이하이 같은 빼어난 보컬들과 호흡을 맞추는 김윤아는 목소리의 열기를 덜어내고 어디에든 있을 사랑을 노래한다. 그렇게 해서 음반은 균형을 맞춘다. 만약 전반부의 파토스를 후반부까지 이어갔다면 음반을 끝까지 집중해서 듣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후반부의 곡들로 인해 김윤아의 사랑 이야기는 관습에서 벗어나 실제와 가까워지며 보통의 관능에 안착한다. 음반의 전반부에 낭만주의자이자 스타일리스트인 김윤아가 있다면, 후반부에는 리얼리스트 김윤아가 있다.

특히 “내 어깨엔 낡아빠진 통증이 매달려 있고 / 내 머리에는 흔해빠진 고민이 매달려 있고 / 주르륵 주르륵 주르륵 수도물 흐르는 소리 / 마음에 가득 찬 응어리들은 이제 닦여지지 않네”(‘해피엔딩’)라고 노래하는 모습은 음반의 어떤 노래로도 대체할 수 없다. 이 또한 김윤아의 고백일 뿐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감당하는 가사노동의 실제이며, 예술가의 삶이다. 이 음반을 김윤아의 다른 음반과 구별하는 순간은 바로 이 가사가 흐르는 순간이다.

MV] 김윤아(KIMYUNA) - 관능소설(Tales of Sensuality) 종언(An End) Title MV

이렇게 열 곡의 노래에 빼곡하게 담은 사랑과 사람의 초상을 지켜보면 내가 했던 사랑, 지금 하고 있는 사랑이 어떤 모습인지 비쳐보게 된다. 이 음반 앞에서 누구도 자신이 사랑할 때 어떤 사람인지 숨기지 못한다.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 돌아보는 일 또한 피할 수 없다. 지금 달아오르거나 실패한 사람에게 김윤아의 노래는 아물지 않은 통증으로 아릴 것이다.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에게는 그 때 자신이 얼마나 뜨거웠고 얼마나 무모했는지 되새기는 거울이 될 것이다. 돌아보면 왜 그랬을까 싶은 시간을 통과하지 않고 자신이 된 사람은 없다. 예술은 현재를 마주하게 하고, 욕망과 부끄러움에 거리를 만들어준다. 자신을 용서하는 드문 기회이며,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게 하는 관용이기도 하다. 이 음반을 곰곰이 듣고 나면 더 잘 사랑할 수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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