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판과 무능의 집약판, 윤석열 정부의 의대증원

윤석열 정부는 어쩌다 중대한 의대개혁 과제를 ‘총선용’으로 전락시켰나

정근영 전 분당차병원 전공의 대표와 사직 전공의들이 지난 7일 경기 과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앞에서 의대 증원 2000명 결정 관련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아 직무를 유기한 혐의 등으로 조규홍 복지부 장관과 박민수 2차관, 이주호 교육부 장관과 오석환 차관 등 5명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 전 손피켓을 들고있다. 2024.05.07 ⓒ민중의소리

“2천명 결정된 회의록 공개하라” - 사직 전공의 측
“고소고발과 소송 난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

윤석열 정부의 어설픈 의대정원 증원 추진과 의사·전공의 단체의 명분 없는 반발이 장기화되면서, 환자들의 불편과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 그러면 필수의료·지역의료 강화를 위한 생산적인 논의라도 이루어져야 하지만, 다툼의 양상은 ‘2천명 의대정원 증원과 관련한 회의록이 있느냐 없느냐’로 치닫고 있다. 정근영 전 분당차병원 전공의 대표 등은 지난 7일 “정부가 의대증원 관련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았다”면서 복지부·교육부 장차관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고, 박민수 차관은 8일 긴급 브리핑을 열고 유감을 표했다. 그러는 동안 공공의료 확충 등에 관한 논의는 아예 모습을 감췄다.

어쩌다 의료개혁 양상이 이렇게 흘러가게 된 것일까.

잘못된 출발, 잘못된 대응


지역응급의료센터로 30분 이내 도달이 불가능하거나, 권역응급의료센터로 1시간 이내 도달이 불가능한 인구의 지역 내 분율. ⓒ보건복지부 공식 블로그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7년부터 5년간 ‘치료할 의사가 없어 재이송 중 사망한 환자’는 3752명에 이른다. 돈이 되는 분야와 수도권으로만 의사가 집중되는 현상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는 게 중론이다. 또 베이비부머 세대의 의사들의 은퇴가 시작되면, 총 의사 수가 빠르게 감소하면서 폭증하는 필수의료·지역의료 수요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이런 이유로 문재인 정부에서도 필수의료·지역의료 강화 대책으로 공공의대 설립과 함께 의대정원 증원 안을 발표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의대 증원 안은 ‘1년에 400명 규모’로 ‘1년에 2000명 규모’였던 윤석열 정부에 비하면 5분의1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의사·전공의 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정책을 접어야 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었는데도, 정부가 정책 추진을 중단했음에도, 의사·전공의 단체는 파업을 강행하면서 사실상 정부의 항복까지 받아냈다.

선례가 있기 때문에, 의사·전공의 단체의 반발은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충분한 공론화 과정, 이해당사자들과의 협의 등을 거치지 않고 의대정원 증원 이슈를 꺼냈다. 정부는 의료현안협의체 등에서 여러 차례 논의했다고 했지만, 가장 예민한 의대정원 증원 규모를 공개적인 사회적 합의·토론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밀실에서 정한 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발표했다. 이에 시민사회의 우려와 비판대로, 중대한 의료개혁 과제가 “총선을 앞둔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윤석열 정부는 의대 증원 안을 발표하기 전에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등을 내놓으면서 그동안 의사단체가 요구했던 수가 인상을 약속했는데, 적당히 당근을 주면 의사들이 정부를 따라줄 것이라고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또 문재인 정부 때처럼 코로나 팬데믹도 아니니, 노조 억누르듯 하면 될 것이라고 예상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을 떠나는 식으로 정부 정책에 반발하자, 정부는 노조파업에 대한 혐오 감정을 일으켜 대응할 때처럼 전공의파업도 같은 방식으로 대했다.

안일한 접근은 전공의의 집단 사직과 의료공백 사태 장기화로 이어졌다. 지난 2월 집단 사직한 전공의들이 오는 20일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수련 기간 미달’로 내년 전문의 시험을 볼 자격을 잃기 때문에, 이대로라면 1~2천명 증원은커녕 매년 배출되던 3천명의 신규 전문의까지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의료공백은 환자들의 불편과 피해로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는 한국췌장암환우회가 30~80대 췌장암 환자 189명을 대상으로 지난 4월 24일부터 28일까지 진행한 설문조사를 발표한 바 있는데, 이 발표에 따르면 정상진료를 받고 있다고 답한 췌장암 환자는 10명 중 3~4명에 불과했다. 10명 중 6~7명은 의료공백에 따른 각종 불편과 피해를 견디고 있다고 답한 것이다.

절차적·내용적으로도 결함 많아 명분도 부족


병원 자료사진 ⓒ뉴시스

필수의료·지역의료 강화 정책이 절차적·내용적으로 철저하기라도 했다면 명분이라도 있지만, 이조차도 구멍이 많아 의대증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야당이나 시민사회의 지원도 못 받는 상황이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의대정원을 증원하는 것은 찬성하지만, 지금처럼 늘리면 상당수는 미용·성형으로 빠지거나 수도권에서 비급여 진료를 할 가능성이 크고, 지역의료나 필수의료 분야로 유입은 미미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의대 지역인재전형을 확대하여 비수도권에서 교육·수련을 받은 의사 수를 늘리면 지역으로 유입되는 의사도 많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지금도 비수도권 의대 졸업생의 절반은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실정이다.

문재인 정부 때 추진했다가 무산된 지역의사제를 의사·전공의 단체 입맛에 맞게 변형한 ‘계약형 필수의사제도’ 또한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전 정책국장은 “계약형 필수의사제도는 지금 하고 있는 공중보건장학제도와 다르지 않다”면서 “2022년 지원자가 1명 있었다. 이미 실패하고 있는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정부가 의사들과 타협하면서 사립의대 증원 수는 자율로 놔두고 국립대 의대 증원 수를 대폭 축소한 점 또한 문제가 되고 있다. 사립의대는 ‘무늬만 지역의대’인 경우가 많아, 증원해도 정부의 의도와는 반대 효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6일 한 토론회에서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자문위원장은 아산병원(울산대)처럼 수도권에 수련병원이 있는 ‘무늬만 지역의대’인 경우가 “64% 이상”이라며, 사립의대 증원은 지역의료 강화 대책이 아니라고 말했다.

부산대는 지난 7일 교무회의에서 의대증원 학칙 개정을 부결 처리했는데, 이 또한 정부의 정책 추진이 절차적으로도 흠이 있음을 보여주는 한 예다.

전 정책국장은 “진짜 지역의료·필수의료를 살리는 정책이 나왔다면, 지금과 같은 비판은 듣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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