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마지막 취소표를 둘러싼 권리 투쟁, ‘두산인문극장 2024:권리’ 연극 ‘더 라스트 리턴’

두산인문극장 2024 '더 라스트 리턴' 공연사진 ⓒ두산아트센터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공연장은 비지정석으로 진행되는 공연이 많다. 이번 공연 ‘더 라스트 리턴’ 역시 비지정석이다. 시야가 잘 확보되는 공연장이라 어느 좌석에서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객석 맨 앞자리의 유혹은 늘 강하다. 1시간 정도 일찍 가면 입장 대기줄 맨 앞에 설 수 있지만 그날따라 늦게 도착했고 객석 오른쪽 가장자리에 앉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편의점에 들르지 말걸’, ‘집에서 좀 일찍 출발할걸’. 마음속으로는 온갖 후회와 자책을 늘어놓으면서 말이다.

연극 ‘더 라스트 리턴’은 ‘두산인문극장 2024: 권리’ 첫 번째 작품이다. 이 연극은 아일랜드 극작가 소냐 켈리의 작품으로, 2019년 새해 베를린에서 ‘리처드 3세’ 공연을 보러 갔다가 매진되어 취소표를 기다린 작가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작품이다. 이번 한국 공연은 연극 ‘편입생’, ‘세컨드 찬스’를 연출한 윤혜숙이 한국 초연을 연출했다. 이제 마지막 취소표를 두고 벌이는 등장인물들의 궁금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취소표 대기줄에 선 사람들


무대는 공연장 로비에서 시작된다. 오늘은 연일 매진되고 있는 오펜하이머의 ‘힌덴부르크로 돌아가다’라는 연극 마지막 공연 날이다. 공연장 밖은 천둥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방금 공연장에 도착한 ‘우산 든 여자’는 곧장 매표소로 향한다. 매표소 직원이 오늘 밤 공연은 매진되었으며 공연 10분 전 취소표가 나올 수도 있으니 기다리면 된다고 안내한다. 매진이란 말에 절망에 빠진 여자는 공연 취소표가 나올 수도 있다는 말에 다시 희망을 갖게 된다.

두산인문극장 2024 '더 라스트 리턴' 공연사진 ⓒ두산아트센터

공연장 로비에는 이미 ‘신문 보는 남자’가 대기하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남자의 뒤에는 사람 없는 가방 하나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남자는 전립선 질병 때문에 이 공연을 한 번도 끝까지 보지 못했다. 여자 역시 이 연극을 오늘 반드시 봐야 한다. 이 연극을 본 부하 직원만 차별하는 상사의 눈 밖에 나 지 않기 위해서다. 여자는 현장에 있지도 않으면서 대기줄을 점유하고 있는 가방 주인의 존재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다.

이것이 시작에 불과하다. 천둥 번개가 계속되고 폭우가 점점 더 심해지는 가운데 공연장 로비에는 ‘분홍 두건 여자’와 ‘군인’까지 나타난다. 이들은 모두 자신만의 절박한 사연들을 안고 이 연극을 보기 위해 마지막 취소표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 같은 악천후라면 취소표가 쏟아지지 않을까? 하지만 이 공연은 너무나 유명해서 누구나 보고 싶어 하는 작품이다. 취소표가 나올 것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마지막 티켓은 누가 가져갈까?


이제 사람들은 대기줄 순서를 두고 머리를 돌리기 시작한다. 가능하면 더 앞자리가 유리하다. 지금의 자리보다 한 자리만 더 앞에 설 수 있다면, 아니 내가 대기줄 1번에 설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취소표 대기줄에 있는 사람들은 대기줄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자신이 마지막 취소표를 가져가야 할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며 권리 투쟁을 시작한다.

등장인물들의 권리 투쟁은 도대체 이 연극이 어디까지 가려고 이러나 싶을 정도로 극한 상황으로 치닫는다. 무대 처음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이어지는 황당한 상황과 등장인물들의 어처구니없는 논리와 행동은 끊임없이 관객을 웃게 만든다. 이 웃음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공감이기도 했다가, 실소로 바뀌기도 한다. 그리고 이 웃음은 순간순간 날카로운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 자리 하나 지키는 것이 이렇게 힘들어야 할 일일까?
-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 이 상황은 누가 만든 걸까?

연극 취소표라는 한정된 자원은 극의 말미에 갈수록 한정된 모든 유무형의 것들로 확장된다. 한정된 취업 자리, 바늘구멍 같은 합격의 기회, 희박한 성공의 가능성 등. 드디어 공연 10분 전, 공연 취소표가 떴다. 누가 마지막 취소표를 가져가게 될까?

‘더 라스트 리턴’에 없는 것, 두 가지


극 중 등장인물들은 이름이 없다. 이들은 매표소 직원, 신문 보는 남자, 우산 든 여자, 분홍 두건 여자, 군인으로 지칭된다. 100분 동안 펼쳐지는 막장 코미디극을 보고 있노라면 익명의 등장인물들은 어느새 우리 사회 구성원의 모습으로 대체된다. 이름을 갖지 않음으로써 등장인물들은 우리 자신이 되기도 하고 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누군가가 되기도 된다.

두산인문극장 2024 '더 라스트 리턴' 공연사진 ⓒ두산아트센터

두 번째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시스템이다. 공연장 측은 취소표가 나오면 표를 구할 수 있다는 기준만 제시할 뿐 나머지는 대기자가 알아서 하라는 무책임으로 일관한다. 외국인 관객을 위한 안내시스템 역시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엉터리다. 이 안내 시스템은 치명적인 오류를 만들고 결말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 놀라운 것은 시스템은 없지만 처벌은 있다. 혼란이나 소동을 일으키면 가차 없이 제거한다는 것이다. 연극 ‘더 라스트 리턴’은 의도적으로 제거한 장치를 통해 ‘권리’란 무엇이며,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이번 한국 초연에는 중창단 역할이 추가되어 유럽가를 공연 중에 합창하는 독특한 구성을 만들어 냈다. 신문 보는 역에 배우 정승길, 우산 든 여자 역에 배우 최희진, 매표소 직원 역에 배우 강혜련, 군인 역에 배우 우범진이 무대에 오른다. 아쉽게도 마지막 티켓을 놓고 벌이는 이들의 치열한 사투를 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전 회차 매진이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다시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다. 만약 취소표가 나온다면 대기줄에 기꺼이 설 것이다. 생존을 위해, 쥐꼬리만한 권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사는 우리에게 취소표 대기줄 쯤이야.

두산아트센터는 관객들의 관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공연 전체 기간 접근성 안내사항을 제공한다. 공연 중 대사 및 소리 정보, 그림 기호가 표시되는 한글자막 해설을 진행하며, 관람 전 극장 로비에서 접근성 매니저가 관객들 대상으로 공연과 관련한 정보를 감각 경험으로 제공한다. 그리고 극장 내에 휠체어 입장과 휠체어가 필요한 관객에게 휠체어 추가 제공이 가능하며, 공연 기본 안내 및 소통을 문자로 지원하는 문자 소통 서비스, 종로 5가 지하철역에서 공연장까지 이동 지원하는 안내 보행을 진행한다.


두산인문극장 2024 ‘더 라스트 리턴’

공연날짜 : 2024년 4월 30일(화)~5월 18일(토)
공연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공연시간 : 화~금 20시/토, 일 15시/월 공연없음
러닝타임 : 100분
관람연령 : 13세 이상(2011년생 포함 이전 출생자 관람 가능)
작: 소냐 켈리(Sonya Kelly)
창작진 : 번역 신혜빈/연출 윤혜숙/조연출 김성령/무대디자인 유소양/조명디자인 성미림/음악감독 박소연/의상디자인 김미나/분장·소품디자인: 장경숙
출연진 : 강혜련 우범진 이송아 이유주 정대진 정승길 조두리 최서희 최은영 최희진
티켓예매 : 두산아트센터, 인터파크 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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