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연착륙을 위해 금융당국의 사업성 평가 기준을 강화해 구조조정 속도를 높이기로 했다. 이를 통해 정상 사업장에는 자금 공급을 원활하게 하고, 부실 사업장은 재구조화와 경·공매를 통해 부실을 빨리 정리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엔 PF 사업장 자금 공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금융사의 자산건전성 평가 기준을 완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PF 사업장에 신규자금을 투입할 경우 해당 자금에 대한 자산 안전성 평가 기준을 완화해 줌으로써 금융사가 쌓아둬야 할 충당금을 낮춰주는 것이 핵심이다. 충당금이란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쌓아두는 일종의 안전장치인 만큼 자칫 부동산 PF로 촉발된 위기가 금융권으로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13일 관계기관 합동으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부동산 PF의 질서있는 연착륙을 위한 향후 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먼저 금융당국은 PF 사업성 평가기준을 개편한다. 현재 평가기준은 브릿지론과 본PF에 공통으로 적용되면서 사업성의 위험을 제대로 판별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 당국은 브릿지론‧본PF로 구별해 사업장 평가를 진행하고 각 사업장 특성에 맞는 핵심 위험요인을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양호·보통·악화우려’ 3단계였던 평가 등급을 ‘양호·보통·유의·부실우려’ 4단계로 세분화한다. 기존 ‘악화우려’ 중 사업성 저하로 사업추진이 곤란한 사업장을 ‘부실우려’ 등급으로 분류해 적극적인 사후관리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유의’ 등급 사업장은 재구조화 및 자율매각을 추진하고, ‘부실우려’ 등급 사업장은 상각이나 경·공매를 통해 매각을 추진하도록 한다.
평가대상도 확대한다. 기존 부동산 PF 대출 이외에 위험 특성이 유사한 토지담보대출 및 채무보증 약정을 추가하고, 평가 기관에 타 부처 관리·감독을 받는 ‘새마을금고’를 포함한다.
이에 따라 2023년 말 기준 부동산 PF 사업성 평가 규모는 230조원 수준으로 늘어났다. 그간 금융당국이 밝혀온 부동산 PF 대출 잔액(135조6천억원) 대비 100조원가량 증가한 수치다.
주택 아파트 부동산 (자료사진) ⓒ민중의소리
사업성 충분한 PF 사업장엔 금융공급, 부족한 곳은 재구조화·정리 유도
금융당국은 사업성 평가 기준 개편에 따라 ‘사업성이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확실하게 금융을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앞선 지난 3월 금융당국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주택금융공사 PF 사업자보증을 25조원에서 30조원으로 추가 확대한 바 있다. 주택 PF 사업장뿐 아니라 비주택 PF 사업장에 대한 건설공제조합의 PF 사업자 보증 프로그램(4조원)도 신설했다.
공사비용 등 추가적인 자금이 필요한 본PF 단계 사업장 지원도 확대한다. 건설사 워크아웃으로 어려움을 겪는 정상 PF 사업장에 대해 주금공·HUG가 증액 공사비 추가보증을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워크아웃 건설사 사업장 외에도 추가 자금공급이 보다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추가보증을 제공한다. 또한, PF 정상화 펀드 재원을 활용한 정상 PF 사업장 추가자금 공급도 추진한다.
반면 '사업성이 부족하다‘고 판단된 PF 사업장에 대해서는 시행사·시공사·금융회사 등 PF 시장참여자가 스스로 재구조화·정리를 해나갈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민간·공공이 함께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우선 금융회사 스스로 재구조화와 정리를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2회 이상 만기연장이 이루어지는 PF 사업장에 대해서는 PF 대주단협약상 만기연장을 위한 대주단 동의요건을 기존 2/3 이상 동의에서 3/4 이상 동의로 변경한다. 또 만기연장시 연체이자는 원칙적으로 상환토록 한다.
재구조화·정리에 필요한 자금은 민간과 공공이 함께 지원한다. 상대적으로 자금여력이 충분한 은행과 보험업권이 1조원 규모로 공동대출(신디케이트론)을 조성해 민간수요를 보강하고, 향후 지원 현황 및 시장 상황 등에 따라 필요시 최대 5조원까지 규모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신디케이트론으로 확보한 자금은 사업성이 떨어지는 사업장의 재구조화를 위한 경락자금대출, 부실채권 매입지원 등에 쓰이거나, 사업성은 있지만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겪는 사업장의 자금 지원 등에 투입될 예정이다.
또 지난 3월에 발표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PF 사업장 토지매입(최대 3조원), 캠코 펀드의 경·공매를 통한 자산취득 허용과 취득세 한시 감면 등을 진행한다.
부동산 등 부실채권의 원활한 정리를 지원하기 위해 캠코 펀드에 우선매수권 도입을 추진한다. 캠코 펀드에 PF 채권을 매도한 금융회사에 추후 PF 채권 처분 시 재매입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으로, 매도자·매수자 간 가격 협상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이와 별도로 캠코는 올해 중 새마을금고와 저축은행업권에서 4천억원의 부실 채권을 추가 인수하기로 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PF 향후 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PF 시장 자금 공급 위한 인센티브 확대... 부동산 PF 대출 ‘충당금’ 낮춰준다는 금융당국
PF 시장에 대한 자금 공급 촉진을 위해 인센티브도 확대된다.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금융사에 대한 각종 규제를 완화해 민간 금융사가 PF 시장에 자금 공급과 재구조화·정리에 적극 나서도록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먼저 PF에 신규 자금을 투입하는 금융회사 임직원에 대해선 지원 과정에서 손실이 발행하더라도 면책을 해주기로 했다. 책임 문제로 인해 PF 사업장 재구조화 추진에 소극적인 부분을 개선하기 위한 취지다.
특히 사업성이 있는 PF 사업장에 신규 자금을 투입할 경우 해당 자금에 대해선 별도로 자산 건전성 분류를 ‘정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한다.
금융사는 보유 여신에 대한 자산건전성을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5단계로 분류해 이에 따라 대출금의 일정부분을 충당금으로 적립해야 한다. 부동산 PF 채권은 ‘고정’ 여신으로 분류돼 20%의 충당금을 쌓아야 하지만 ‘정상’ 여신으로 분류되면 0.85%의 충당금만 쌓으면 된다.
하지만 자칫 부동산 PF 위기가 금융권으로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임재만 세종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금융기관 입장에서 굳이 대손충당금을 쌓으면서까지 어려운 부동산 PF 시장에 자금을 투입하려 하지 않을 것인 만큼 정부가 이런 대책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럼 해당 대출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임 교수는 “PF 시장 자금 공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취지지만, 결국 부동산 PF 시장을 살리려고 위험을 금융권에 전가하는 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금융당국은 ▲PF대출에 대한 유가증권 보유 한도 완화 ▲영업구역 내 신용공여 한도 규제 완화(저축은행) ▲재구조화 목적 공동대출 취급 기준 완화(상호금융) ▲PF 정상화 지원 등에 대한 K-ICS(위험계수) 합리화 ▲부동산 PF 대출 전후 유동성 관리 목적의 환매조건부채권(RP) 매도 인정(보험) ▲주거용 PF 대출 순자본비율(NCR) 위험값 완화(금융투자) 등 업권별 규제 완화를 추진한다.
이번 PF 사업성 평가 기준 개편 등은 금융업권 의견수렴 과정 등을 거쳐 오는 6월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