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나(행여) 또 돌아올까 싶어서. 옛날 세상 돌아올까 싶어서 겁이 나는 거라. 아직까지 남북이 안 갈려 있는교. 갈려 있는데 겁이 안 날 턱이 있나. 겁이 나는데.”
전국을 돌아다니며 한국전쟁 시기를 전후해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을 취재한 구자환 감독이 얼마 전에 출간한 책 ‘빨갱이 무덤’에 나오는 구절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7월 경남 의령 지역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로 남편을 잃은 안옥순 할머니는 자신의 남편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빨갱이’로 몰려 죽어갔다고 증언하며 겁이 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하는 레드콤플렉스를 없애고 싶었다”
남북이 분단되기 전에 돌아가신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을 빨갱이로 몰아세우고, 민간인 학살의 주범인 이승만을 찬양하는 영화가 버젓이 상영돼 수구보수 세력들에 의해 인기 작품으로 만들어지고, 수구보수 세력의 입에선 여전히 ‘빨갱이’라는 소리가 쉽게 흘러나오고 있다. 그들은 이승만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을 세운 건국의 영웅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건국은 항일운동가를 포함한 수많은 이들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한 역사를 지우기 위한 야비한 변명이다. 구자환 감독의 책 ‘빨갱이 무덤’은 이런 그들의 주장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다. 구 감독은 이책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목을 ‘빨갱이 무덤’으로 지은 이유는 “당신들이 빨갱이라고 죽인 사람들이 누구인지 봐라”고 항의를 하기 위해서다. 다른 하나는 한국 사회에 만연하는 레드콤플렉스를 없애고 싶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에 가려진 학살의 진실 온 국토를 무덤으로 만들어 버린 잔인한 그들만의 ‘건국’
사실 민간인 학살과 관련한 취재와 인터뷰 등을 하면서 놀랄 때가 많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새롭게 알게 되는 진실이 많고, 상상 그 이상의 끔찍한 이야기들은 귀를 의심하게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끔찍하고, 잔인한 사건들이 이 땅의 곳곳에서 자행됐다는 사실이다. 수 많은 민간인들이, 좌익 사범이라는 낙인이 찍힌 수많은 이들이 아무런 법적 절차도 없이 속절없이 학살됐고, 아직도 이 땅 곳곳에 유골이 파묻혀있다.
지난 2003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가 출간한 책 ‘다 죽여라, 다 쓸어버려라’ 첫 장의 제목은 ‘온 국토가 무덤’이다. 이 책은 경기도부터 제주에 이르기까지 당시 확인된 남한 민간인 학살 피해 지역을 지도로 만들어 소개하고 있다. 지도는 학살이 전국에서 벌어졌음을 보여줬고, 실제로 거의 모든 시와 군에서 크고 작은 학살이 자행됐다.
‘온 국토가 무덤’이 될 정도로, 광범위한 학살이 벌어졌지만, 학살의 진실을 제대로 아는 이들은 드물다. 왜 알려지지 않은 것일까? 그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족들은 이 사실을 외부, 심지어는 자식들에게도 알리지 못한 채 숨죽여 살아야 했다. 또다시 ‘빨갱이’로 몰릴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1960년 4·19혁명 직후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유해를 발굴하려는 유족들의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1961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회 회장과 간부들을 군사 법정에 세우고, 용공 분자로 몰아 사형 등 중형을 선고했다.
그래서 유족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침묵이 이어지며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시신은 계속 차가운 땅속에 있게 됐고, 진실도 함께 묻혀 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올해로 70년이 넘었고, 학살의 비극을 증언해줄 유족들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기 전에 기록해야 한다며 구 감독은 20년째 학살의 진실을 추적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기자로 일하며 여러 투쟁 현장을 영상에 담아오던 그는 운명처럼 민간인 학살 현장을 만났다. 지난 2004년 경남 마산 진전면 여양리에서 진행된 유골 발굴 현장을 취재하게 된 것이다. 2002년 9월 태풍 루사로 인해 흙이 무너지며 50여 년 동안 땅속에 묻혀있던 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 피해자 유해가 드러났다. 2년 뒤 발굴을 통해 수습된 유골은 125구에 이르렀다.
이승만 정권은 일제강점기 전향한 사회주의자들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이란 단체를 모방해 1949년 4월 ‘국민보도연맹’을 만들었다. 1948년 12월 시행된 국가보안법에 따라 ‘좌익 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전향시켜 이들을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만든 조직이었다. 하지만, 이들을 지역별로 모아 사상교육을 하다가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인민군에 부역하거나 동조할 수 있다면서 학살했다. 마산 진전면 여양리에서도 1950년 7월 하순 학살이 벌어졌고 수백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 유골 가운데 일부가 2002년 태풍으로 인해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레드 툼’, 해원’, ‘태안’ 3편의 영화로 담아낸 한국전쟁 당시 학살의 진실
이후 그는 기자로 활동하면서 틈틈이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구례, 청원, 경산, 대전 등 4곳을 시작으로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집단 학살지를 국가 차원에서 발굴하기로 하는 등 더디지만 유해 발굴 작업이 이어졌다. 경남에서도 이후 학살과 관련한 조사와 유해 발굴이 시작됐고, 구 감독은 조사위원으로 참여해 경남 각지를 돌며 유족들의 증언을 들었고, 이를 영상으로 담았다.
2014년 민간인 학살을 다룬 그의 첫 영화인 ‘레드 툼(Red Tomb)’이 공개됐다. 영화엔 2004년 유골을 발굴했던 마산 여양리를 포함해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중심으로 경남 지역의 여러 민간인 학살 사건이 담겼다. 이어진 2017년 작 ‘해원’에선 한국전쟁 당시 정부에 의해 전국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과 이 학살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근원을 추적했다. 2020년 작 영화 ‘태안’에선 다시 지역 사건으로 돌아왔지만, 같은 마을 사람들이 좌우로 나뉘어 서로 죽고 죽였던 비극과 그 비극의 뒤에 숨어있는 권력의 문제를 해부했다.
이번에 낸 책 ‘빨갱이 무덤’ 경남 지역의 여러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담고 있다. 이 책 뒷면에 부록으로 실린 ‘한국전쟁 전후 경남 지역 주요 민간인 학살지 및 매장지’는 134곳이 넘는다. 각각의 학살지와 매장지엔 수십에서 수백 명이 학살당하거나 묻혔다. 이외에도 파악되지 않은 사건을 더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수도 있다. 이 책만 보더라도 ‘온 국토가 무덤’이라던 말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나 자신의 여정에 대한 기록이자 한국전쟁 초기 국민보도연맹에 가입되어 학살되었던 사람들에 관한 작은 기록이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고, 외면하는 현실은 그들을 과거의 공포를 여전히 오늘에도 이어갈 수밖에 없도록 내몰고 있다. ‘온 국토가 무덤’이지만, 발굴은 더디다. 구 감독은 과거 민중의소리와 인터뷰에서 “발굴과 함께 위령 시설을 공원처럼 짓고 그곳에 학살 관련 영상, 사진, 자료를 전시해 학살의 진실을 기록해야 과거의 비극을 마무리할 수 있을 거”라고 강조했다. 이번에 출간한 책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그는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킬링필드’는 알아도 우리 땅에서 수십만 명에서 수백만 명이 죽어간 학살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 책 서문에서 또다시 이렇게 강조했다.
“이 책은 나 자신의 여정에 대한 기록이자, 한국전쟁 초기 국민보도연맹에 가입되어 학살되었던 사람들에 관한 작은 기록이다. 일부 한국전쟁 전 민간인 학살 사건도 기록됐다. 경남 지역 학살 매장지 부록을 만들면서 참으로 빈약한 기록임을 다시금 느꼈다. 많은 유족과 목격자가 남아 있을 때 좀 더 열심히 찾지 못했음을 후회해야 했다. 개인의 능력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변명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일부 지역은 당시 유족이나 목격자를 만나지 못해 영화에서도 이 책에서도 담지 못했다. 또 일부는 당시의 기록이 빈약하고 훼손되어서 싣지 못했다. 그 아쉬움이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