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듣고 콘서트를 보다가 질문이 솟구칠 때가 있다. 왜 이 음악은 더 알려지지 못할까. 혹은 왜 이 음악은 인기를 끌까 싶어서다. 음악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히트곡 제조법’이나 ‘스타 되는 법’ 같은 책을 쓸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아직도 다수가 왜 특정 음악을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는지 완벽하게 파악하진 못했다. 민희진, 박진영, 방시혁, 양현석, 이수만 같은 유명 프로듀서조차 히트곡의 공식을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했을 거다.
그래도 누구든 동의할 수 있을 기준이 몇 가지 있지 않을까.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음악은 우선 노래가 있어야 한다. 연주음악 만으로 인기를 끄는 경우는 드물다. 대중이 음악이라고 인식하는 건 대개 노래다. 물론 노래가 없어도 얼마든지 음악이 될 수 있지만, 음악 마니아가 아닌 대중이 연주로만 채워진 음악에 열렬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적다. 노래 곡에서 연주자가 기가 막힌 연주를 선보여도 보컬보다 주목받는 경우 또한 희귀하다. 연주의 비중이 높은 재즈가 차트의 상위권에 좀처럼 오르지 못하는 이유다. 노래는 음악 듣는 사람에게 가장 친숙하고 깊게 다가가는 말 걸기 방식이다. 노래 속에서 가수는 음악의 주연배우이자 해설자로 듣는 사람을 음악으로 이끌어 사로잡는다.
노래가 히트하려면 가수가 노래를 잘해야 한다. 노래를 잘한다는 건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텐데 무엇보다 가사가 잘 들려야 한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국인들은 가사가 잘 들리게 노래하는 보컬을 좋아한다. 또렷하고 카랑카랑하며 선명한 목소리가 지닌 대중적인 힘이 인기의 중요한 근거이다. 그런 목소리로 부른 노래를 노래방에서든 어디서든 싱얼롱 할 수 있을 때 히트곡이 될 수 있다. 이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는지 없는지가 히트곡이 되느냐 되지 못하느냐를 가른다. 개성 있는 인디 음악인들의 노래가 아무리 평론가의 호평을 받아도 대중적으로 히트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좀처럼 따라 부르기 어렵거나 싱얼롱 하기 친절한 곡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상용 음악에 더 적합한 곡은 광범위한 인기를 얻는데 한계가 있다. 듀오 어떤날의 음악이 항상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최상위권에 계속 꼽힐 만큼 높은 예술성을 갖추었더라도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하는 이유다.
그런데 음악을 고르고 좋아하는 과정에서 듣는 사람의 세대/계급/학력 같은 정체성이 음악 취향과 안목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음악은 모든 사람에게 어떠한 계단이나 장벽 없이 통할 수 있는 텍스트가 아니다. 듣는 사람의 정체성과 성격이 음악을 향해 문을 열거나 닫는다. 새로운 사운드, 새로운 언어가 쉽게 통하는 사람이 있고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문제는 후자가 더 많다는 사실이다. 음악 마니아들은 새로운 사운드의 매력에 쉽게 빠져들고, 새로운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찾아다니지만 세상에 마니아는 늘 소수다. 공부하듯 음악을 듣고, 열린 마음으로 음악을 듣는 이는 적다. 나이를 먹을수록 귀는 문을 걸어 잠근다.
그러다보니 대중적으로 히트하는 음악은 새로운 사운드를 쓰지 않는 보수적인 음악이거나, 새로운 사운드를 쓰더라도 대중적으로 통할 수 있는 외피를 두르고 다가가는 음악이다. 1980년대 조용필의 음악이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음악이 둘 다를 다 해냈기 때문이다. 조용필의 음악은 전통적인 한국 가요의 맥을 잇거나, ‘고추잠자리’에서처럼 프로그레시브한 사운드를 간명한 가사와 선명한 멜로디에 버무린 노래 속에 담아냄으로써 국민가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음악평론가나 마니아가 선호하지 않고 호평하지 않는 음악이 히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중적으로 히트하는 음악 중에는 음악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곡도 있지만, 음악 마니아와 평론가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곡도 항상 존재한다. 대체 왜 이런 곡이 히트하나 싶을 때도 무수히 많다. 대중은 시대의 변화를 발 빠르게 수용하지 않으면서, 시대의 변화를 외면하지 않는 복잡하고 모순적이며 불균등한 존재다.
그런데 이 같은 분석은 지금의 대중음악 시장과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진 않는다. 지금 대중음악 차트에 오른 곡들은 대부분 10대~30대들이 좋아하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이따금 임영웅 같은 장노년층의 지지를 받는 곡들도 차트 상위권에 등장하지만, 지금 차트 상위권에 오른 노래들은 대개 보컬이 잘 들리거나 보수적인 스타일의 음악이 아니다. 물론 이 중에도 대전제에 부합하는 곡이 있지만, 대전제의 기준은 다분히 장노년층에게 더 유효한 기준이다. 지금의 히트곡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
히트곡을 관통하는 기준의 변화는 1990년대 이후의 한국 대중음악계와 그 후의 대중음악계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동안 음악 테크놀로지가 변하고, 장르가 변하고, 시장의 범위와 크기가 변하기도 했을 뿐 아니라 음악을 선택하는 감각도 바뀌었다. 1990년대 이후 세대는 앞서의 기준만으로 음악을 고르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음악을 주도하는 장르가 바뀌었고, 시대의 감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 기준을 이해하지 못하는 장노년 세대들은 요즘 노래가 노래냐고 투덜거리기도 하는데, 요즘 노래 중에 좋은 노래가 없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음악을 선별하는 기준과 지금의 젊은 세대가 음악을 선별하는 기준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리고 예전에도 음악을 선택할 때 음악 외의 매력과 유행이 작동했다. 한 사람이 대중예술인에게 빠져들고, 음악에 빨려들 때는 외모와 스타일, 화술과 분위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매력 자본이 비논리적으로 불균등하게 영향을 미쳤다. 음악이 인기를 끌기 위해서는 음악이 좋아야 하고, 대중적이어야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 이유와 비결을 찾아내기 위해, 그 매력을 갖추기 위해 지금도 많은 이들이 고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