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정책으로 혼란 키운 정부의 ‘해외직구 금지’

실효성 문제·소비자 피해 우려에 여당 내 비판 이어져…정부, ‘선별 금지’로 급선회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6일 인천 중구 인천공항본부세관에서 열린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4.05.16. ⓒ뉴시스

정부가 ‘해외직구 금지’ 조치로 논란을 키우고 있다. 미인증 제품의 국내 유입을 막겠다는 건데, 현실성이 떨어진다.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부는 해외직구 금지 대상을 선별해 적용하겠다며 입장을 바꿨다. 오락가락 정책이 혼란을 키우는 양상이다.

정부는 지난 16일 ‘해외직구 급증에 따른 소비자 안전 강화 및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통해, 안전 미인증 제품에 대한 해외직구 금지 조치를 발표했다.

대상 품목은 80개다. 13세 이하 어린이가 사용하는 유모차와 완구 등 어린이 제품 34개 품목은 국가인증통합마크(KC) 인증이 없는 경우 해외직구를 금지한다. 화재와 감전 등 안전사고 발생 우려가 큰 전기 온수매트 등 전기·생활용품 34개 품목도 KC 인증을 받지 않으면 해외직구가 금지한다. 가습기용 소독제 등 생활화학제품 12개 품목은 신고·승인을 받아야 해외직구가 가능하다.

해외직구 제품에 인증 의무를 부여해 안전을 강화한다는 취지다. 현재 해외직구 제품은 별도 인증 없이 국내로 들어온다. 국내 유통업체가 해외에서 어린이 제품과 전기생활 용품을 매입해 판매할 때는 KC 인증을 받아야 하지만, 해외 판매자가 국내 소비자가 직접 거래하는 경우 KC 인증 의무가 없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가 확산하면서, 정식 수입 절차를 거치지 않은 해외직구가 급증하고 있다.

중국 이커머스 확산은 국내 제조업에 대한 위협이 되는 측면이 있다. KC 인증에는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이 소요된다. 중국의 값싼 제품이 KC 인증도 받지 않고 유통되면서, 국내 제조업체의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는 형국이다.

미국의 대규모 할인 행사 블랙프라이데이를 앞둔 지난해 11월 22일 인천 중구 인천세관 특송물류센터에 해외 직구 물품들이 쌓여 있다. 2023.11.22. ⓒ뉴시스

실효성 지적에 소비자 선택권 침해 논란까지
‘전면금지 → 대상선별’ 입장 선회로 혼란 키워

대책 마련이 요구되는 상황이긴 하나, 정부의 해외직구 금지 조치는 섣부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효성 문제가 제기된다. 현재로서는 해외 판매자에게 KC 인증을 강제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린이제품법과 전기생활용품안전법 개정이 필요하다. 정부는 연내 법 개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법 개정 전까지는 중국 이커머스에 입점한 중국 판매자가 자발적으로 비용을 부담해 KC 인증을 받으리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법을 개정해도 관리·감독 측면에서의 한계가 있다. 통관 과정에서 KC 미인증 제품을 걸러내기에는 현재 관세청 인력으로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자상거래를 통해 국내로 수입된 제품의 통관 건수는 약 4,133만 건으로, 하루 평균 46만 건에 달한다. 중국에서 온 전자상거래 물품 건수는 2022년 5,215만 4천 건에서 지난해 8,881만 5천 건으로 70% 이상 늘었다.

정부가 과도한 조치로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비판 여론이 높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총선 참패로 사퇴한 후 첫 현안 메시지로 해외직구 금지를 언급했다. 그는 지난 18일 페이스북에서 “개인 해외직구 시 KC 인증 의무화 규제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므로 재고돼야 한다”면서 “해외직구는 이미 연간 6조 7천억 원을 넘을 정도로 국민들이 애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권 유력 인사들의 정부 비판이 이어졌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값싼 제품을해외직구 할 수 있는 소비자 선택권을 박탈하면 국내 소비자들이 그만큼 피해를 본다”며 “더구나 고물가 시대에 해외직구 금지는 소비자 피해를 가중시킬 것”이라고 했다. 또한 “유해성을 입증하는 것과 KC 인증을 획득한 것은 다를 수 있다”면서 “안전을 내세워 포괄적, 일방적으로 해외직구를 금지하는 것은 무식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오락가락하는 행태를 보인다. 비판 목소리가 커지자, 해외직구 금지 조치를 번복하기에 이르렀다. 국무총리실은 17일 설명자료를 내고, 미인증 제품에 대한 해외직구 금지를 당장 시행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해 “산업부와 환경부 등 품목 소관 부처가 해외직구 제품에 대한 위해성 검사를 집중적으로 실시한 뒤, 6월 중 실제로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의 반입을 차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80개 품목의 미인증 제품 해외직구를 전면 금지하겠다더니, 하루 만에 금지 대상을 위해성 확인 제품으로 축소한 것이다.

정부가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정책을 섣불리 추진하면서 국민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9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무대책, 무계획 정책을 발표했다가 아니면 말고 식으로 접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의대 증원 논란에 이어 해외 직구 금지에 이르기까지, 설익은 정책을 마구잡이로 던지는 ‘정책 돌직구’는 국민 불편과 혼란만 가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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