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열 번째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가 현실화한 21일, 야6당과 시민사회는 국회에 집결해 정부 규탄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국민 다수가 찬성 의사를 밝힌 ‘채상병 특검법’을 끝내 거부한 윤 대통령의 “반헌법적 권한 남용”을 비판하며, 결국 윤 대통령 스스로가 채상병 순직 사건 은폐 의혹에 무관하지 않음을 시인한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새로운미래,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등 야6당과 시민사회로 구성된 ‘거부권을 거부하는 전국비상행동’은 이날 오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거부한다”고 외쳤다. 야6당의 지도부는 물론, 21대 현역 의원들과 22대 당선인들도 한데 모였다.
참가자들은 “21대 국회는 채상병 특검법을 재의결해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국민의힘을 향해 “대통령실이 아닌 국민을 바라보고 채 상병 특검법 재의결에 찬성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날씨도 더운데 속에서 열불이 난다. 윤석열 정권이 끝내 국민과 맞서는 길을 선택했다”며 “이 정권은 말로는 사과한다고 하면서도 국민의 명령을 거역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국민과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국민이 준 마지막 기회를 가차 없이 걷어찬 윤석열 정권 확실하게 심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후보 시절 ‘대장동 특검’으로 공세를 펼치며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라던 윤 대통령의 말을 되받으며 “윤 대통령은 채해병 특검을 거부했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범인이라는 것을 스스로 자백한 건가”라고 물었다. 그는 “국민이, 야당이 힘을 합쳐서 윤석열 정권의 독주와 오만을 심판하고, 채해병 특검법을 반드시 재의결하겠다”며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역사와 국민을 두려워하라”고 강조했다.
정의당 장혜영 원내대표 직무대행은 “채상병 특검법의 요체는 국가폭력에 대한 의혹”이라며 “채상병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윤 대통령과 정부 인사 그 누구도 이러한 의혹의 엄중함을 인정하고,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인 적이 없다”고 꼬집었다. 장 원내대표 대행은 “채상병 특검에 대한 거부는 시민에 대한 거부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거부”라고 말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윤 대통령은 검찰 독재에 더하여 행정독재로 가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며 “사적 이해관계가 있으면 직무수행을 회피해야 한다. 초급 공무원도 아는 내용을 최고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버젓이 깔아뭉갠다”고 비판했다. 조 대표는 “정당이 아니라 시민으로, 국민의 한 사람으로 끝까지 가겠다”고 했다.
진보당 윤희숙 상임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거부권이 가족 방탄이라면, 채상병 특검법 거부권은 셀프 면죄부”라며 “국민의힘 의원들은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찬성, 반대 입장을 국민들 앞에 똑똑히 밝히라. 이번이 헌법 기관이자 국민의 대의 기구로 자신이 할 일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밝혔다. 윤 상임대표는 여당에 “재의결마저 부결시킨다면 윤 대통령과 함께 몰락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원내대표도 “이제 다시 국회의 시간”이라며 “(특검법 재의결은) 국회가 해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다. 곧 다가올 채상병 1주기에 채상병 영정 앞에 부끄럽지 않은 마음으로 설 수 있도록 반드시 그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 최성 비상대책위원 또한 “채상병 특검법 거부권 행사는 법치주의의 정면 부정”이라며 “윤 대통령은 민심을 두려워하고, 채상병 특검법을 뒤늦게라도 수용해 국민적 의혹이 한 점 없도록 철저한 진실규명에 앞장서라”고 요구했다.
시민사회는 임기 종료 전 오는 28일 마지막 본회의를 앞둔 21대 국회에 “단호한 특검법 재의결”을 촉구했다. 참여연대 한상희 공동대표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 행사를 가로막고 우리가 주인임을, 우리가 주권의 주체임을 선언해야 할 때”라며 “그 최전선에 국회가 자리하고 있다. 국회는 보수·진보를 따지고 여야를 따지며 좌고우면할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조영선 회장은 “국회는 국민의 대표자로서 헌법을 준수하지 않는 대통령의 전횡을 견제할 의무가 있다”고 압박했고, 전국민중행동 박석운 공동대표는 오는 25일 야당과 시민사회가 함께 여는 정부 규탄 대규모 장외집회를 언급하며 “제2의 촛불 항쟁”을 예견했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22대 당선인들에게 채상병 순직 사건 은폐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 추진을 당부했다. 임 소장은 “여당이 반대한다고 미루고 있을 때가 아니”라며 “22대 국회는 채상병 수사외압의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자들이 국회에 출석해 진실을 말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앞서 정부는 이날 오전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 국무회의에서 ‘채상병 특검법’의 국회 통과 절차와 특검법 자체의 내용을 문제 삼으며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 같은 날 오후, 윤 대통령은 결국 채상병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 2일 특검법이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된 지 19일 만으로, 윤 대통령 취임 뒤 열 번째 거부권 행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