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격노가 또 화제다.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의 격노를 전하는 녹취 파일의 존재가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 보통 나라의 리더가 격노를 하면 ‘아, 뭔가 큰 일이 났구나’ 싶은 게 정상인데, 이 님은 하도 격노를 자주하다보니 ‘어젯밤에 끓여 드신 라면이 짰나?’ 하는 생각밖에 안 든다.
워낙 격노를 많이 했다기에 도대체 어떤 케이스에서 분노 게이지 버튼이 눌러졌는지 찾아봤다. 지난해 초 나경원 전 의원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환경 대사에서 해임할 때 이 분은 격노했다. 당 대표 선거 때 안철수 의원이 윤핵관을 거론하자 이 분은 또 격노했다.
총선 후 ‘김건희 특검’ 가능성이 거론된 언론 보도에 또 격노했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결과에 또 격노했다. 김기현 당시 당 대표가 원래 지역구에 출마를 고집하자 또 격노했다. 찾다가 지치겠다. 집어치우자.
이에 대해 신동욱 국민의힘 22대 국회의원 당선인이 “대통령은 격노하면 안 되냐?”고 반론을 했단다. 이분은 또 어디에서 튀어나오신 빠가사리 종류의 두뇌 소유자이신가? 누가 안 된댔냐? 적당히 해야 할 것 아니냔 말이다. 적당히!
국가 리더가 건건이 “나 열 받았어!”라고 떠들고, 그게 비서들 입을 통해 건건이 언론에 흘러간다. 이게 정상이냐?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냐고?
이젠 효과도 없다
야구에서는 파워, 스피드, 콘택트, 핸들링, 강한 어깨 등 다섯 가지를 갖춘 선수를 ‘파이브 툴 플레이어’라고 부른다. 다방면에 두루 능통한 사람을 칭하는 육각형 인간과도 뜻이 맞닿아 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파이브 툴은커녕 툴 자체가 없다. 혹시라도 뭐 하나 잘 하는 게 있을까 싶어 굳이 찾아봤더니 격노를 잘 한다. 응원가만 좋은 야구선수들을 ‘응원가 원 툴 플레이어’라고 비웃는데, 윤 대통령을 격노 원 툴 대통령이라고 불러 마땅한 이유다.
문제는 이런 격노 원 툴이 별 효과도 없다는 데 있다. 경제학에서는 모든 재화의 한계효용이 체감한다고 가르친다. 쉽게 말하면 같은 재화를 반복적으로 소비할수록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뜻이다. 배가 고플 때 짜장면을 먹으면 만족도는 10이지만, 두 번째 그릇의 만족도는 7쯤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대통령의 격노도 마찬가지다. 그게 처음 한 두 번은 이슈도 되고 효과도 있다. 그런데 이걸 저렇게 시도 때도 없이 반복하면 한계효용이 당연히 체감한다. 나라의 리더가 격노했다는데 지나가는 개가 짖었나 싶은 기분이 든다. 지난주 슬로우뉴스가 독자들에게 보낸 편지의 제목은 ‘이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윤석열의 격노’였다.
격노의 한계효용이 체감하면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를 극복할 더 자극적인 분노 표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격노 말고 격분, 광분 이런 걸 해야 한다. 이것도 안 되면 지랄발광까지 나와야 한다. 조만간 ‘윤 대통령, 무슨 사건에 지랄발광’ 뭐 이런 뉴스가 나올 판이다. 나라 꼬라지 참 잘 돌아간다.
분노의 다섯 가지 이유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격노는 사건의 책임을 회피하는 역할을 한다.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믿으니 괜히 아랫사람에게 분풀이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한 두 번이지, 이쯤 되면 심리학적인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 미국 듀크 대학교 심리학과 마크 리어리(Mark R. Leary) 석좌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격노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섯 가지 특징이 있다.
①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고 느낄 때. 그런데 이건 윤 대통령의 케이스가 아닌 듯싶다. 대통령이 불공정한 대우를 받을 일이 뭐가 있나? 혜택만 무더기로 받았지. 지금도 김건희 여사 보호한답시고 권력을 엄청 남용하고 있지 않나?
②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이건 정확히 윤 대통령의 이야기다. “내가 대통령인데, 나를 존중하지 않고 자꾸 뭔 특검을 한다냐!”라는 심리다. 대통령이 국민의 명령을 받는 종복임을 까맣게 잊고 있다. 그러니 자신이 누리는 지위와 권력이 무한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착각한다.
③ 자존감에 상처가 난 경우. 이것도 대통령의 케이스다. 리어리 교수는 “자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대단하고 특별한 존재라고 과하게 부풀리는 사람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꼬집는다. 이렇게 자기를 부풀리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감히 나한테!”다. 윤 대통령이 매번 거부권을 행사하는 심리이기도 하다. ‘감히 나에게 특검을?’ 이런 생각이 있으니 격노부터 하는 것이다.
④ 소외감.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느낌도 격노 버튼을 누른다. 어이쿠, 이건 제대로 알고 계신다. 집권 3년차 역대 대통령 최저 지지율 기록은 아무나 세우는 게 아니다. 그래요, 당신은 소외되고 있어요~.
⑤ 상호성 부재. 이 대목이 중요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 그런데 살다보면 이 조화를 깨고 남의 등에 칼을 꽂는 사람이 등장한다. 이런 사람을 보면 열을 받는다. 그리고 이때 나타나는 분노는 당연한 거다.
그런데 지금 이 대목은 윤석열 대통령이 격노를 해야 할 대목이 아니라 그를 보는 국민들이 분노해야 할 대목이다. 조화로운 사회 속에서 그 가족만 명품 백을 받아 드시고 온갖 특혜는 다 독점하는 꼴을 보라. 이게 바로 사회적 조화를 깨는 일 아닌가?
이 말은, 대통령이 시도 때도 없이 격노를 한다는데 정작 분통이 터지는 사람은 우리 국민들이라는 뜻이다. 나 또한 평온한 하루를 보내다가 ‘윤 대통령 격노’ 뉴스가 뜨면 분노 게이지가 치솟는다. 안 그래도 나이가 들면서 우울해지는 날이 많은데,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서 정신 건강이 더 피폐해진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보고 “아무 것도 하지 마라”라고 요구하는 우리의 처지가 슬프다. 하지만 온 국민이 대통령 때문에 격노로 밤잠을 설치는 나라가 더 이상 지속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통령은 제발 그놈의 격노 좀 그만하고 최대한 뉴스에서 사라져 주길 간곡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