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과 서울에서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됐다. 학생인권조례를 만들 때 시민사회가 들인 노력과 시간을 생각하면 폐지되는 것은 너무나 순식간이었다. 그간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인용하는 근거는 많았지만, 폐지 논의를 순식간에 급물살을 타게 한 것은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사망 사건이다. 이 사건을 교사의 교권과 학생의 인권이 대치되는 것처럼 만든 것이 핵심이었다. 지난해 다른 칼럼(1)에서 자세히 다루었는데, 현재 한국의 교사들에 대한 노동권과 인권 침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그에 대한 책임은 교사(공무원)들의 사용자인 국가에 있다. 국가가 교사의 노동권과 인권을 강화해야 하는 현실에서, 엉뚱하게도 학생인권을 조금이라도 보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근거를 마련해 둔 조례를 없애는 상황이다.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교사들의 인권이 향상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인권은 제로섬게임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교사와 학생 그리고 양육자까지 모두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교육의 목적 자체를 다시 세워야 한다. 획일적인 기준에 의해 서열화한 대학을 보내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공교육에선 학생도 교사도 양육자도 행복할 수 없다. 학교는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주체적인 시민이 될 수 있는 연습을 하는 곳이어야 한다. 타인에게도 나와 동등한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다른 사람을 존중할 수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는 곳이어야 한다. 학교는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곳이어야 한다. 학교가 그런 곳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고 지금과 같은 모습이 유지되기 바라는 사람들 혹은 과거의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경기, 충남 등의 도서관에 성평등, 성교육 책이 사라지고 있다. 지난 정권 때부터 시작된 일이다. 2020년 성평등, 성교육을 반대한다는 사람들은 여성가족부가 선정한 '나다움 어린이책 목록'을 공격했다. 나다움 어린이책 목록에 속해있는 책들은 한국과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성평등 성교육 그림책들이었다. 그러나 공격하는 이들은 나다움 어린이책들이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성적인 호기심을 키우며 성관계를 빨리하게 만든다고 주장했으며 동성애를 조장하는 책들이라고 주장했다. 여성가족부는 공개 하루 만에 나다움 어린이책 목록을 삭제했다. 이들은 이렇게 쉽게 승리의 경험을 쌓았다. 그 후 대통령과 수많은 지자체에서 지자체장이 바뀌며 이들은 더 큰 힘을 얻었다. 이전 정권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차별, 억압, 폭력을 지지했다면 이번 정권은 적극적으로 차별, 억압, 폭력을 옹호한다. 이제 이들은 전국의 도서관에 성평등, 성교육 도서들이 도서검색대에서 검색되지 않게 만들거나 아예 책장에서 책을 빼라고 요구했다. 평등, 인권, 자유와 같은 가치에 입각해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저 민원을 없애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한국 사회의 공무원들 그리고 지자체장들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들은 이렇게 또 손쉽게 승리의 경험을 쌓았고, 최근에는 간행물윤리위원회에 성평등 성교육 책들을 유해도서로 지정하라고 압박했다.
성평등, 성교육은 결국 동의와 관계로 요약할 수 있다. 동의는 이제 더 이상 '응, 아니' 혹은 '좋아, 싫어'와 같은 단답형 대답을 뜻하지 않는다. 대화를 통한 적극적인 합의를 만들어 가는 것을 동의라고 한다.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 돼야 한다. 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첫째 자신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자신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그런지 탐구가 필요하다.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아야 한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그런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신체, 젠더, 섹슈얼리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듣고 배우며 자신을 탐구하고 자신의 그것들을 인정하고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신체, 젠더, 섹슈얼리티 그리고 생각과 감정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건강한 자기애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다른 사람들을 자기 자신처럼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나의 신체, 젠더, 섹슈얼리티가 중요한 만큼 다른 사람의 그것도 동일하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실천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 신체와 삶이 자신의 그것처럼 존중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과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자기 자신과 그리고 다른 사람과 존중을 기반으로 한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성(평등)교육이다. 상상해 보라.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최소한 필요한 것이 지금 도서관에서 사라진 성평등, 성교육 도서다. 그리고 모두의 인권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청소년 스스로가 자신의 삶과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주체가 되도록 돕는 학생인권조례다. 모든 사람이 자신과 타인 그리고 사회구조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 모두와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며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대해 목소리 내며 평등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은 잘못된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며 모두가 포함되는 사회를 가로막는 이들의 파티에 휘둘릴 때가 아니다. 국가와 지자체는 모든 시민들이 평등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깨닫고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