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21세기판 갈릴레오 재판 벌이는 서울신대

창조과학을 비판하는 등 성결교단의 창조론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위에 회부된 서울신대 박영식 교수 ⓒ박영식 교수 페이스북


지구의 나이는 얼마나 될까? 과학자들은 운석 등을 분석해 45억~46억 년 정도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은 상식처럼 여겨지는 이런 주장은 중세시대까지만 해도 상상하기조차 힘든 주장이었다. 당시만 해도 지구의 나이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17세기 아일랜드 가톨릭 대주교였던 제임스 어셔는 지구 나이를 측정하는 시도를 한다. 그런데 지질학 등의 방법이 아니라 성서를 바탕으로 계산했다. 성서에 등장하는 예수의 탄생 시점부터 예수의 족보, 구약시대의 여러 역사와 족보 등을 따져 시간을 계산했고, 계산을 거듭한 끝에 기원전 4004년 10월 21일 일요일 아침에 하나님이 지구를 창조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런 그의 주장은 지구의 역사가 60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이른바 ‘젊은 지구창조론’의 효시로 보기도 한다.

‘젊은 지구창조론’이란 그럴싸한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 이런 주장은 지구가 공 모양이 아니라 평평하다는 이른바 ‘평평 지구론’만큼이나 어이없는 주장이다. 이런 어이없는 주장은 성서에는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다는 ‘성서무오설’과 성서의 모든 기록, 글자 하나하나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고, 인간은 그저 기록하기만 했다는 ‘축자영감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성서무오설’에 따르면 지구의 나이는 6000년에 불과할 뿐 아니라 인간과 공룡은 함께 공존했고, 생물의 진화도 부정된다.

지구 나이가 6000년에 불과하다는 창조과학의 주장을 담은 PPT 자료 ⓒ인터넷


이런 어처구니없는 유사과학 또는 사이비 과학, 유사신학 또는 사이비 신학이 21세기에도 버젓이 ‘창조과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개신교 신자들을 중심으로 유통되고 있다. 이들은 성서의 내용이 완벽한 과학적 사실이며 과학을 통해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서울신학대학에선 지구 나이 6000년 등의 믿기 힘든 주장을 펼치는 창조과학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수를 징계하려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지난 4월 6일 서울신대 법인 이사회는 박영식 교수의 창조신학이 성결교단의 창조론을 반영하지 않는다면서 교원징계위원회에 회부했고, 징계의결요구서를 통해 최소 정직에서 최고 파면에 이르는 중징계를 주문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20년이다. 당시 서울신대 신학전문대학원에 창조과학 관련 강의가 개설되자 박 교수는 “사이비 종교가 판을 치는 시대에 사이비 신학이 기승부리지 말라는 법이 없다”며 SNS를 통해 비판했다. 그러자 서울신대 소속 교단인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고, 서울신대는 ‘신학검증위원회’를 꾸려 박 교수를 조사해 왔다. 그리고, 검증위는 “박 교수가 그의 책 ‘창조의 신학’과 기타 논문, 강의 등에서 창조과학을 사이비 과학으로 깎아내리고, ‘유신 진화론’을 옹호했다”며 징계를 요구한 것이다.

이런 서울신대의 주장에 대해 박 교수는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을 통해 “창조과학이 과학이고자 하는 한, 과학계로부터 검증을 받아야 하지만 널리 알려져 있듯이 창조과학은 과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유사 과학(pseudo-science)일 뿐입니다. 또한 창조과학은 19세기 이후의 탄탄하게 발전해 온 성서학의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신학적 공론장에서 전혀 소통될 수 없는 비(非)신학이며 반(反)신학입니다. 과학계와 신학계에서 전혀 인정도 받지 못하고 학문적 근거로 인용될 수도 없는 내용을 성결교단의 교육기관인 서울신학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에서 가르쳤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더 나아가 최근에 또다시 창조과학을 신학대학원 신앙수련회에서 설교하도록 했다는 점은 매우 염려스러운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솔직하게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박 교수를 향한 징계시도에 대해 여러 신학자와 서울신대 출신 졸업생들도 서울신대가 박 교수 징계를 추진하는 것이 지동설을 주장하다 종교재판에 회부됐던 갈릴레오와 유사하다고 비판하며 징계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프랑스 화가 조셉-니콜라스 로베르-플뢰리가 19세기에 그린 갈릴레오 종교재판 장면 ⓒ프랑스 르브르박물관


세계 신학계의 주된 흐름은 ‘성서무오설’을 넘어 과학과 역사, 철학과 문학 등 다양한 비평을 통해 성서를 해석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런 비평과 해석은 성서를 보다 풍부하게 이해하는 데 여러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기독교계, 특히 개신교계에선 ‘성경무오설’과 ‘축자영감설’을 부인하고는 것 자체를 이단시하는 주장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말도 되지 않는 창조과학의 주장을 믿는 걸 신앙의 척도로 여기는 이들도 많다. 지난 2018년 4월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개신교인 가운데 50.9%가 ‘성경무오설’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주장에 동의한 개신교인은 20.1%에 불과했다.

성서는 하나님의 창조를 문학적이고 은유적인 여러 표현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고백과 신앙을 담은 것이다. 이런 신앙적 고백이 담긴 성서를 바탕으로 세상 창조의 과학적 사실을 증명하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창조론·창조신앙과 창조과학은 같은 말이 아니다. 창조과학을 따르지 않고, 창조과학을 비판했다고 해서 창조론·창조신앙을 따르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

서울신대의 박영식 교수 징계위 회부가 21세기판 갈릴레오 재판이라고 비판받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천동설과 교회의 권위, 기독교 신앙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지동설을 주장하는 것이 기독교를 부정하는 것이라 여긴 중세 기독교와 서울신대의 모습은 닮아 있다. 그리고, 이런 부분은 우리 개신교의 현실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더욱이 목회자들을 양성하는 신학대학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더욱 우려스럽다. 이렇게 성경과 기독교에 대한 어떠한 의문이나 회의도 허용하지 않은 채 오로지 “믿습니다”만을 강조하는 현실이 우리나라 개신교를 병들게 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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