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한 번 확인된 사실이 있다. 사람들은 웬만해선 안 바뀐다는 것이다. 사람들과 뒷풀이라도 하게 되면 ‘이바구’를 털면서 자신들의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풀고 싶은 감정을 터는 것이 뒷풀이의 진수인데 자신의 생각과 반하면 정색을 하고 분위기가 싸해진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와 종교이야기를 하면 아무리 논리적이든 사실 확인을 근거로 하든 누구든 상관없이 자신만의 생각이 있기에 죽자고 싸운다는 것이다.
사실 누구든 삶은 고단하다. 매일 무엇을 선택해야 되고 그 선택이 자신의 기대와 맞닿으면 며칠이나 몇 주 동안은 기분은 좋지만 또 다시 실망하고 다시는 안 본다고 하면서 다시 보게 되는 것이 삶의 일이다. 삶이 고단한 이유는 무엇을 하든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가 많아서라는 것이다. 어느 한 편의 입장에 서게 되면 다른 입장과는 대립할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면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혀 죄를 짓게 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력감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은 누군가와 밤샘을 하더라도 일을 내고 싶기도 하다가 또 어떨 때면 이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다 놓고 싶은 것이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요절을 내고 싶은 충동이 드는 사람이 있더라도 어쩔 수 없이 그들과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기에 정치가 필요하고 대화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어떤 사안에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럽고 투명하게 사회를 만드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의 주장을 밝히는 일에 자신의 입장과 다르면 불쾌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랜시스 베이컨이 말한 네 개의 우상 민의가 확인된 총선 후에도 여전히 우상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지 새로운 서사가 시작되길 바란다
이에 대해 경험주의자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우리들 모두 각자의 우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 한다. 베이컨이 지적한 우상은 4가지로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이다. 종족의 우상은 인간이라는 종족이 갖고 있는 우상으로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이 실제보다 크게 보인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동굴의 우상은 개인 경험의 우상으로 자신의 교육과 지식, 경험이라는 편협한 범위를 말하는 것으로 무엇을 문제제기 하면 저 사람은 사회에 불만이 많다고 단정하는 독선적 오류를 말하는 것이다. 시장의 우상은 인터넷 공간이나 누구에게 들은 말을 사실로 단정하고 이 말에 현혹되거나 믿어버리는 커뮤니케이션의 오류를 말한다. 극장의 우상은 권위있는 사람들의 주장을 아무런 비판없이 믿는 것으로 예를 들면 보수적인 사람들은 조중동이 말하면 진실이라고 믿는 미디어의 우상을 말한다.
지난번 민주당에서 국회의장 추천을 위한 선출을 앞두고 여론조사나 대부분의 사람들과의 의사에 반하여 다수의 22대 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자들은 가장 낮은 지지율을 보였던 후보를 선출하였다. 선거 때에는 채상병 관련 특검을 발의하겠다고 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21대 국회 마지막에도 여전히 일사불란하게 정권의 사수대로서 자신들의 무력을 과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자신의 선의를 몰라준다고 오히려 사람들을 나무란다. 선거 때만 되면 민의를 받들겠다고 했던 사람들이 국회의원 배지나 권력을 가지면 이미 그것은 선거 때 이야기라고 야바위를 털면서 기득권화한 모습을 다시 보며 되풀이되는 정치인에 대한 실망에 뒷맛이 씁쓸한 것은 나만의 감정이 아닐 터이다. 사실 사람들의 생각은 각자 자유이지만 자신이 민의를 대표하겠다고 공언한 사람으로 대의권력을 위임받았다고 한다면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적어도 자신의 주장이 베이컨이 말하는 우상 중 어느 것에 의해 왜곡되었는지 살펴보고 타인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할 때조차도 주장의 근거가 어느 것에 왜곡되었는지를 살펴본다면 덜 후회스러울 것이다. 실제 인간의 지성은 순수한 것 같지만 다들 각자의 우상에 빠져있고 우상에 한번 빠지면 모든 것을 그에 맞추어 만들어가는 성향이 있기에 늘 깨어있지 않으면 그 사람이 인격이나 과거의 업적과는 상관없이 오류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하나의 패러다임에 빠진 생각은 그리 쉽사리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압도적 다수의 힘으로 윤석열 정권을 심판한 총선이 끝났고 지난 회기를 끝으로 적어도 상식과 공정함, 사람들의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주는 새로운 정치 서사를 기대하는 22대 국회가 시작되었다. 여전히 윤 대통령은 자신의 아집에 사로잡혀 민의를 배신하기로 공언을 하고 있어 22대 또한 치열한 대립과 공방의 장이 펼쳐질 전망이다. 우리 삶이 이야기로 비유되듯이 새로운 서사가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다. 마치 오지 않을 것 같은 내일이 불현듯 다가오는 밝은 날을 보면서 확인하듯이 우리의 정치 공동체도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내길 바란다. 적어도 새로운 우리의 서사는 지난 회기보다는 괜찮은 평가를 받고 어느 정도 이만하면 되었다는 희망을 유지한 채 이 정도면 견딜 수 있는 삶이 되길 바란다. 사실 세상이 바뀌고 사람이 바뀐다는 가상이 아니라 새로운 서사를 꿈꾸는 이들이 성장하여 그 서사가 당연한 것이라 여길 때 우리의 변화가 시작되는 것임을 확인하는 세상이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