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전환 국제 추세 전면 역행하는 전력 계획

전력 수요 예측치 대폭 상향, 구체적인 근거 빠져…재생에너지는 목표치 동결, 추가 수요는 신규 원전으로 충당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당시인 2021년 12월 29일 오후 경북 울진군 신한울원자력 발전소 3,4호기 부지에서 원전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1.12.29 ⓒ뉴스1

전력 수급 중장기 계획이 나왔다. 전력 수요 예측치가 2년전 계획보다 원전 7기 규모만큼 늘었다. 구체적인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은 소극적이다. 추가적인 전력 수요는 신규 원전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국제적인 재생에너지 전환 추세에 역행해 산업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3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총괄위원회는 지난달 31일 11차 전기본 실무안을 마련해, 정부에 전달했다. 산업부가 위원회의 실무안을 바탕으로 후속 절차를 거쳐 11차 전기본을 확정하게 된다.

전기본은 향후 15년간의 전력 수요를 전망하고, 필요한 전력을 어떤 발전원으로 공급할지 제시하는 계획이다. 2년마다 수립하며, 이번 11차 전기본 계획기간은 오는 2038년까지다.

위원회가 산출한 2038년 최대 전력 수요 예측치는 129.3GW다. 

전력 수요 예측의 적정성 논란이 제기된다. 지난 10차 전기본에서는 전력 수요가 연평균 1.5%씩 증가해, 2036년 예측치가 118GW였다. 해당 증가 추세를 적용하면, 2038년 전력 수요는 2년간 3.6GW 늘어난 121.6GW 수준이다. 11차 전기본에서는 11.3GW 급증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수요 예측 격차가 7.7GW에 달한다. 원전 7기의 연간 발전량에 맞먹는 규모다.

위원회가 전력 수요 예측치를 늘린 구체적인 근거는 공개되지 않았다.

실무안을 보면, 먼저 경제성장, 기후, 산업, 인구 전망 등을 반영하는 계량 모형을 통해 전력 수요 증가 추세를 예측했다. 이후 계량 모형으로 예측한 추세를 넘어서는 추가 수요를 잡았다. 추가 수요에는 반도체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투자 급증이 예상되는 반도체 산업의 수요,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늘어날 데이터센터의 수요가 포함됐다는 게 위원회 설명이다. 실무안에 언급된 추가 수요 근거는 반도체와 데이터센터가 전부다. 예측치에 대한 적정성 평가가 불가능하다. 가령, 앞서 정부는 2050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발생하는 전력 수요가 10GW로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번 11차 전기본에는 얼마나 반영됐는지 알 수 없다.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투자 계획도 제시되지 않았다.

전력 수요 산출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불과 2년 만에 전력 수요를 대폭 늘렸는데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며 “반도체 클러스터와 데이터센터 구축을 언급하기는 했으나 전력 수요 산출 적정성을 따져보기에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재생에너지 전환 의지 안 보여…OECD 최하위 수준 유지될 듯

전력 수요를 어떤 발전원으로 충당할지에 대한 계획을 보면, 재생에너지 전환에 소극적이다. 이번 11차 전기본에서 제시한 2030년 신재생에너지 비중 목표치는 21.6%로, 기존 10차 전기본과 동일하다.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에 따르면, 한국의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가운데 36위다. 2023년 기준 재생에너지 비중은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실무안에는 위기감이 보이지 않는다. 위원회는 태양광과 풍력 설비 용량이 2022년 23GW에서 2030년 72GW로 확대돼,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합의한 재생에너지 3배 확대 목표를 달성할 전망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기후단체는 면피에 급급하다는 비판을 쏟아낸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OECD 최하위 수준인 상태에서 3배 목표를 겨우 달성한다는 건 내세울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위원회가 COP28 합의 의미를 축소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생에너지 3배 확대 목표는 국제사회의 평균치를 제시한 것이다. 선진국 수준인 한국의 국제적인 위상과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목표치를 초과 달성해야 본래 취지에 걸맞다는 설명이다.

녹색연합은 “이미 영국은 2022년 재생에너지 비중이 40%였고, 독일은 2023년 50%를 넘어섰다는 점은 이번 11차 전기본의 재생에너지 목표가 어떤 수준인지를 말해준다”고 꼬집었다. 그린피스는 “주요 국가가 기후 위기 대응과 에너지 수급 안전성 확보를 위해 재생에너지 목표를 높이고,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전폭적인 투자를 실행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고 짚었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 ⓒ산업통상자원부

신규 원전 건설 권고…RE100 리스크 나 몰라라

실무안에는 기존 계획에 더해 원전을 추가로 건설하는 방안이 담겼다. 위원회는 늘어난 전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1.4GW 규모 대형 원전 3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를 건설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10차 전기본 이후 2년 만에 원전 4기를 추가하는 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2038년 가동되는 원전은 기존 10차 전기본의 26기에서 30기로 늘어난다. 2038년 원전 비중은 35.6%로, 모든 에너지원 가운데 여전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계획했다.

원전을 둘러싼 지속된 안전성 경고가 다시 터져 나왔다. 환경운동연합은 “이미 26개의 원전이 가동하고 있어 사고 위험과 대책 없는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 문제가 있다”며 “모든 노후 원전을 수명연장해 가동하고 신규 원전을 더 늘린다면 위험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력망 측면에서 원전의 추가 건설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규 원전이 수도권에 들어설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기존 원전이 밀집된 동해안 지역이 거론된다. 문제는 해안가에 위치한 원전에서 전력이 부족한 수도권까지 전력을 끌어오려면 수백km의 송전선로를 깔아야 한다는 것이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동해안 석탄발전소 6기가 수도권으로 통하는 송전선 부족으로 가동률을 30% 이내로 제한된 사례를 짚었다. 전력망에 대한 고려 없이 무작정 원전을 세웠다가는 이들 석탄발전소처럼 좌초자산이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석 전문위원은 “이미 국내 수도권은 세계 최고 수준의 높은 전력밀도, 즉 송전선로가 더 이상 들어서기 어려울 정도로 밀집돼 있어 송전선로 간 간섭 현상과 대형 정전 위험을 안고 있다”며 “이는 단순한 지역 민원을 넘어서는 물리적 한계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고 경고했다.

실무안에는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포괄하는 무탄소에너지(CFE)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위원회는 무탄소 비중이 2023년 39.1%에서 2038년 70% 수준에 이를 것이라며 “본격적인 무탄소에너지 시대에 접어들 것”이라고 했다.

CFE는 재생에너지 100%(RE100) 전환 추세에 대응해 정부가 개발한 개념이다. 재생에너지만으로 전력 수요를 충당할 수 없으니, 원전도 재생에너지에 포함하자는 것이다. RE100을 주관하는 클라이밋 그룹은 원전을 재생에너지로 인정하지 않는다.

정부가 왜곡된 에너지 정책을 수정하지 않을 경우, 산업적인 측면에서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RE100 참여 기업은 자사의 재생에너지 전환을 추진할 뿐 아니라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사에도 RE100 충족을 요구하고 있다. RE100을 충족하지 못하면 거래처를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정부가 원전 확대 기조를 유지하면, 한국에서 재생에너지 조달이 제한되는 기업들이 고객사와 원활한 거래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돼, 해외 이전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솔루션은 “RE100에 가입한 반도체와 자동차 등 분야 기업이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더 많은 재생에너지를 필요로 하게 된다”면서 “11차 전기본의 부족한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국가 주요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억제한다”고 지적했다. 양연호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도 “산업 경쟁력 차원에서라도 정부는 이번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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