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기를 당한 슈퍼맨이 다시 돌아왔다. 2023년 초연을 가졌던 이 작품은 2024년 제45회 서울연극제 공식 선정작이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 창작 주체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6월 1일부터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전국적으로 쏟아지던 2023년, 지구를 구했던 세계적 영웅 슈퍼맨이 전세사기를 당했다는 설정으로 시작된 연극 ‘부동산 오브 슈퍼맨’은 관객들의 호응을 얻기에 충분했다.
이 작품은 전세 사기를 당한 슈퍼맨이 금융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허구의 사실을 실제처럼 보이게 하는 다큐멘터리의 한 형식인 모규멘터리(mokumentary)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사회성 짙은 풍자와 해학을 곁들인 블랙코미디이다. 2024년 돌아온 ‘부동산 오브 슈퍼맨 2024’ 역시 그 부분에서 변한 것은 없다. 오히려 더 강력해졌다.
더 강력해진 이야기
은퇴한 슈퍼맨은 지구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연극배우가 된다. 대리운전, 배달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겸하던 슈퍼맨은 모은 돈에 전세자금 대출을 끌어모아 신축빌라에 입성한다. 계약 만료가 다가오던 어느 날, 슈퍼맨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집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설상가상 전 주인이 등기부등본을 조작해 대출을 받았던 사실이 밝혀지고 집은 온갖 압류와 가압류가 걸리게 된다. 이 빌라에 전세를 들어온 슈퍼맨과 이웃은 한순간에 전세사기 피해자가 되어 전 재산을 모두 잃을 상황에 처하게 된다.
초연과 이전 시즌은 전체적인 이야기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시즌이 더 강력하다고 느끼는 것은 변화된 몇 가지 지점 때문이다. 첫 번째가 관찰자에서 당사자로 시점의 전환이다. 극 중 슈퍼맨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찍던 감독 봉준우는 ‘내가 피해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라 여겼던 비겁함을 고백한다. 그리고 카메라를 내려놓고 슈퍼맨의 이야기, 즉 피해자들의 상황 속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무대와 객석은 곧바로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 회의 장소로 변신한다. 이제 관객들도 전세사기 피해자 중 한 사람이 된다. 전세사기 피해를 관찰자로 바라보던 관객의 시선이 피해자의 시각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연극은 사회적 재난과 참사를 관찰자의 시선으로 소비하는 시대 상황을 극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사회적 참사에 대한 공감과 연대가 왜 필요한지를 역설한다.
현실은 무엇이 바뀌었을까?
이번 공연에서는 슈퍼맨이 자신의 부동산을 지키고 금융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등장했던 플랫폼 부분을 없앴다. 극의 마지막 빌라의 신과 싸우는 마블 영웅들의 장면도 사라졌다. 대신 ‘전세사기’가 개인 간 사기 사건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유일한 전세 제도의 문제점과 부동산 신화 창출을 위해 대출을 권장하는 정책이 만들어낸 사회적 재난임에 집중한다.
극은 마지막에 다다르면 전세사기의 피해자 슈퍼맨의 절규 위로 익숙한 노래가 흐른다. 변진섭의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를 부르며 하나둘씩 모여드는 등장인물들은 눈물 반, 절규 반으로 노래 부른다. 2024년 설 연휴 윤석렬 대통령이 대통령실 합창단과 함께 노래 부른 홍보물의 패러디가 예술의 경지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 패러디는 힘없는 국민들의 절규이자 답가이다. ‘국민들이 사회적 재난과 참사로 넘어질 때 그 순간이 바로 정부의 사랑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정확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실질적인 대책이다.
연극 ‘부동산 오브 슈퍼맨 2024’의 연출 김수정은 실제 전세사기 피해 당사자이다. 김수정 연출은 “이 공연을 본 누구도 전세사기를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슈퍼맨이라는 영웅의 욕망과 좌절을 통해 동시대 관객들과 연대하고 싶다.”라고 밝힌 바 있다. 2024년 돌아온 이 연극은 여전히 날카로운 질문과 날선 풍자, 신랄한 패러디로 관객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직설적이지만 무겁지 않고 웃기지만 가볍지 않은 통렬한 블랙코미디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