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권센터가 12일 군기훈련(얼차려)을 받다가 쓰러져 숨진 훈련병 사망사건과 관련해, 얼차려를 지시한 중대장이 의료인에게 사고 당시 상황을 축소해서 진술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훈련병이 병원으로 이송할 당시 중대장이 함께 움직였는데, 당시 의무기록에는 가혹한 얼차려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군인권센터는 이날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가족과 함께 확보한 고인의 의무기록을 공개하며, 사건 경위와 추가로 확인된 초동조치 과정에서의 문제점 등을 지적했다.
군인권센터는 “가혹행위 결과로 후송되는 과정에서 구급차의 선탑자(군 차량 운행 시, 운전병 옆에 간부가 탑승해 관리·감독 하는 것)가 가해자인 중대장이었다는 점이 새롭게 파악됐다”며 “중대장은 얼차려 현장에 있던 최상급자로서, A훈련병이 쓰러진 뒤 사건 발생 전후 상황을 군의관, 속초의료원 등 의료인과 주변 간부들에게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속초의료원에서는 A훈련병 곁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군인권센터는 지난 2014년 일명 ‘윤 일병 사망사건’을 상기시켰다. 이 사건 때에도 가해자들이 구타를 당하다 쓰러진 윤 일병을 구급차에 싣고 의료원으로 후송했는데, ‘냉동만두를 먹다가 기도가 막혀서 쓰러졌다’고 거짓말을 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당초 군 당국 역시 윤 일병이 선임들에게 폭행당한 뒤 냉동식품을 먹다 기도가 막혀 질식사했다고 발표했으나, 유가족과 군인권센터의 추적으로 가혹행위가 이뤄진 진상이 드러났다.
군인권센터는 “가혹행위 가해자가 구급차 선탑자 역할을 수행하거나 환자 인솔을 맡을 경우 자기방어 기제로 인해 사건 발생 전후의 상황을 사실대로 얘기하지 않거나, 축소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렇게 되면 의료인의 판단에 혼선을 주거나 정확한 판단을 지연시키는 위험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부대 관계자가 A훈련병의 부모님에게 처음 연락한 내용과 A훈련병에 대한 의무기록에 기재된 내용을 보면, A훈련병이 쓰러진 당시 상황이 상당히 축소된 채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A훈련병의 어머니에게 처음 연락을 취한 부대 관계자는 소대장이었다. 소대장은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해 ‘완전군장 매고 연병장 4~5바퀴를 도는데 3바퀴를 도는 도중에 신체적으로 힘들었는지 반응이 와서 후송 중’이라고 설명했다고 군인권센터는 전했다. 소대장은 얼차려 현장에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상황을 전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병교육대 의무실에서 처음으로 이송된 속초의료원 간호기록지에는 “군대에서 뛰던 중 쓰러지면서 환자 화긴 후 열 40도 이상이어서 군 앰뷸런스 타고 내원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나마 자세한 사항이 기재된 건 강릉아산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이후다. 당시 입원기록에는 “부대 진술상 4시 반경부터 야외 활동 50분가량 했다고 진술, 완전군장 중이었다고 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심지어 A훈련병을 처음으로 진료한 신교대 의무실의 의무기록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는 ‘군보건의료인은 환자 진료 시 진료기록을 작성해야 한다’는 군보건의료법을 위반한 것이다.
군인권센터는 “현장 상황을 최초로 전달한 사람은 ‘완전군장을 매고 연병장을 돌다가 쓰러졌다’ 정도로만 상황을 축소해 설명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경찰은 최초로 사건 발생 당시 상황을 12사단 신교대 군의관, 간부, 속초의료원 의사 등에게 진술한 사람이 중대장이 맞는지, 맞다면 중대장이 완전군장 하 50분 동안 선착순 달리기, 팔굽혀펴기, 구보 등 가혹한 얼차려를 강제했다는 사실관계를 정확히 진술했는지 면밀히 수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신교대 의무실 의무기록이 부존재한 데 대해서도 “수사를 통해 초기 상황을 면밀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군인권센터는 의무기록과 함께 군사경찰이 유가족에게 설명한 내용을 종합해 A훈련병이 쓰러지고 병원으로 이송되던 당시의 상황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군인권센터는 “얼차려 현장에는 중대장, 부중대장, 조교 3명이 있었고, A훈련병이 쓰러지자 어디선가 의무병이 달려와 맥박을 체크했는데 이를 본 중대장이 ‘일어나, 너 때문에 애들이 못 가고 있잖아’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며 “계속 A훈련병이 일어나지 못하자 조교 중 한 명이 열사병 키트로 추정되는 것을 처치했으나 차도가 없었고, 결국 부축해 신교대 의무실로 데려갔다”고 설명했다.
또한 “속초의료원에 도착한 뒤 중대장이 A훈련병 어머니에게 전화로 말한 바에 따르면, A훈련병이 후송 중 의식을 찾았을 때 했던 말은 ‘본인 이름, 몸에서 불편한 점, 그리고 죄송하다는 말이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군인권센터는 “그간 제기된 의혹들이 확보된 의무기록과 군사경찰이 유가족에게 설명한 내용을 통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가해자 중대장을 환자 수송 선탑자로 지정하고, 신교대 의무실 의무기록이 부존재하는 등 부대 측의 초동 조치 문제점도 확인된다”며 “이미 확보된 사실관계만으로도 중대장, 부중대장 등 가해자들은 A훈련병을 사망에 이르게 한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로, 즉시 구속수사해야 한다. 강원경찰청은 언론플레이를 중단하고 강제수사부터 돌입하라”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