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그룹 2인자 ‘비자금 장부’ 폭로···또 ‘총수 사법리스크’ 먹구름

이호진 전 태광 회장, 출소한지 2년 7개월만여만 2인자와 법정공방

횡령·배임 등 의혹이 제기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1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그룹 2인자 간의 다툼이 격화되고 있다. 폭로전으로 비화했다. 2인자는 이 전 회장 범죄 사실을 경찰에 진술했고, 이 전 회장 측은 2인자를 내치고 감찰을 통해 알아낸 비위 사실을 검찰에 고발했다.

태광그룹에선 무슨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양측 주장을 들어봤다.

2인자 A씨는 누구인가


동아그룹 계열 건설사의 대표이사였던 A씨는 2014년 5월 이 전 회장이 직접 태광그룹으로 스카우트해 그룹 경영기획실장에 앉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룹내에선 ‘회장 최측근’으로 통했다. 400억원 규모의 횡령 혐의로 실형을 산 이 전 회장의 공백기 동안 그룹을 이끌었다. 2019년 공정거래위원회가 검찰에 고발한 태광그룹 ‘김치·와인 강매 사건’의 모든 책임을 지고 잠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장본인이다. 총수 일가의 비리를 스스로 뒤집어 쓴 충성스런 집사였다. 잠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던 그는 2022년, 이 전 회장의 경영 복귀와 함께 경영협의회 의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지난해 8월, 태광그룹은 돌연 A씨에 대한 내부감사에 돌입했고 결국 그는 해임됐다. A씨가 억울함을 주장하던 즈음, 경찰은 “이 전 회장의 비리 혐의를 인지했다”며 수사에 돌입했다. 이 전 회장 측도 맞불을 놨다. 태광그룹은 이 전 회장의 비리 혐의 전부가 A씨가 저지른 일이라고 반박하기 시작했다. 같은 범죄 사실을 두고, 양측은 서로 “네가 한 짓”이라고 다투는 중이다.

민중의소리가 입수한 비자금 장부로 추정되는 문서 ⓒ민중의소리

비자금 조성, 그리고 장부


경찰이 수사 중인 이 전 회장의 혐의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그룹 내 임원을 다른 계열사 임원으로 겸직시킨 뒤 급여를 현금으로 회수해 수십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다. 계열사인 태광CC를 통해 이 전 회장 개인 소유의 골프연습장 공사비를 대납하게 한 혐의도 받는다. 계열사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한 혐의도 있다.

A씨는 민중의소리에 ‘비자금 장부’라며 A4 용지 여러장을 건넸다. 장부에는 2017년 4월부터 2018년 3월까지 1년 치 자금 사용내역이 적혔다.

이 전 회장과 관련한 고소·고발·수사·재판과 연관된 기관명이 연이어 등장한다. 2017년 10월 27일에는 ‘국회(도서상품)’라는 내용으로 500만원이 사용됐다. 당시는 이 전 회장이 농지전용 문제로 국정감사에 출석요구를 받던 시기다. 이 전 회장은 관련 의혹에 대해 대부분 인정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불출석했다. 이 전 회장의 출석과 관련 500만원 상당의 도서상품권이 국회에 전달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외에도 2017년 5월 ‘방배경찰서(3건) 600만원’, 12월 8일 ‘서울지능(3명) 1,600만원’, 12월 28일 ‘춘천법원 500만원’ 등 진위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지출도 있었다.

이 전 회장 일가 관련 제사·추모 등 대소사 지출 내역이 눈에 띈다. 2017년 4월 30일 ‘큰사모님 추모’에 235만원을 지출했다고 적혔다. 이 전 회장 모친인 고 이선애 전 태광산업 상무가 별세일(5월 7일) 즈음이다. 같은해 5월 11일에는 ‘부회장 제사’라는 명목으로 161만원이 사용됐는데 이 역시 이 전 회장 큰아버지 고 이식신 부회장 기일(2003년 5월 17일)과 때를 같이 한다. ‘11월 10일 선대 회장님 추모 236만원’ 도 이 전 회장의 부친인 고 이임용 선대회장 별세 직후다.

장부 상단엔 ‘24,000,000x4’라고 적혀 있다. 태광그룹이 2대 주주인 롯데홈쇼핑(옛 우리홈쇼핑)의 태광 측 사외이사 4명의 급여를 회수해 모은 것이라는 게 A씨 설명이다.

이 시기 롯데홈쇼핑에는 당시 (주)티브로드 경영지원실장과 흥국생명(주)자산운용사업 본부장, 흥국화재 경영지원 실장, 흥국생명(주) 대표이사 사장 등이 태광 측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태광그룹 계열회사 임원들을 롯데홈쇼핑 사외이사로 겸직시킨 뒤 그 급여를 현금으로 회수해 조성한 비자금을 축적했다고 A씨는 설명했다.

민중의소리가 입수한 비자금 장부로 추정되는 문서 ⓒ민중의소리

<민중의소리>는 이들 임원과 접촉해 비자금 조성 사실 등을 문의했으나 “퇴사한 지 오래돼 관여하고 싶지 않다”, “아는 게 없다”며 사실 확인을 거부했다.

태광그룹측은 장부 자체가 날조된 문서라는 입장이다. 태광그룹 관계자는 “A씨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했다. 태광그룹은 한 발 더 나아갔다. 그룹은 입장문을 통해 “이 전 회장이 받는 혐의는 대부분 그룹 경영을 총괄했던 A씨가 저지른 일들”이라고 주장했다.

태광그룹 주장이 사실이라면 A씨가 그룹계열사 임원들을 롯데쇼핑 이사로 임명하고, 임금을 돈을 현금으로 회수한 뒤, 회수한 돈을 이 회장과 관련한 소송·집안 대소사에 썼다는 주장이 된다. 태광그룹은 지난달 9일, A씨를 이같은 혐의로 서울서부지검에 고발했다.

<민중의소리>와 만난 A씨는 “태광 측이 말하는 시기(2015년 7월~2017년 12월) 롯데홈쇼핑의 태광 측 이사진은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임원 인사의 경우 이 전 회장의 최종 승인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도 했다.

개인 골프연습장 공사도 법인카드 사적 사용도
... 태광 “다 전 경영진 그룹 경영 때 벌어진 일”


태광 측은 이 전 회장이 태광CC를 통해 본인 소유의 골프연습장 공사비를 대납하게 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A씨가 자신의 비리를 숨기기 위해 이 전 회장에게 책임을 떠넘긴 것”이라고 했다.

A씨가 2015년 태광CC 클럽하우스 증축 공사를 진행하면서 공사비를 부풀려 지인 업체에 일감을 몰아주는 과정에서 이 전 회장 개인 소유의 골프연습장을 공사 대상에 포함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A씨는 “회장 개인 명의의 골프연습장이다. 나중에 문제가 될 일을 내가 왜 하느냐”고 반박했다. 그는 “이 전 회장 개인 소유의 골프 연습장에서 정비를 해야 한다고 보고가 올라왔고, 그걸 이 전 회장에게 보고했다. 개인 소유의 골프연습장인 만큼 사비로 공사해야 했기 때문이다”라며 “(보고 했더니)‘그럼 저쪽(태광CC) 돈으로 좀 해줘요’라고 했다. 그래서 공사가 진행됐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시기를 언급하기도 했다. A씨는 “(당시 상황을)기억한다. 2016년에 한 번, 2022년도에 한 번 이렇게 두 번 공사를 했고, 8억원 정도 들었다”고 말했다.

또 태광CC 클럽하우스 증축 공사를 ‘지인 업체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태광 측의 주장에 대해선 “솔직히 그런 건 실무진이 처리하는 업무다. 부장이나 상무들이 하는 일”이라며 “공사를 맡은 업체가 어딘지 난 알지도 못한다, 나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해 다 꾸며낸 것”이라고 강변했다.

이 전 회장이 계열사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한 혐의도 모두 A씨의 소행이라는 태광 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A씨는 “사용 내역을 확인하면 쉽게 확인될 일이 아닌가. 내역은 경찰이 갖고 있다. 정말 내가 법인카드를 썼다고 생각됐다면 경찰이 날 가만뒀겠느냐”며 “내가 장충마트 근방(이 전 회장의 자택 인근)에서 뭘 사 먹고 그랬겠냐”고 반문했다.

앞서 경찰은 작년 10월 말 이 전 회장의 배임 및 횡령 혐의를 조사 하던 중 A씨를 참고인으로 소환해 조사한 바 있다. 당시 A씨는 참고인 진술 과정에서 이 전 회장의 모든 혐의에 대해 진술했다. 참고인 진술에는 이 전 회장의 법인카드 사적 사용 혐의도 포함됐었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A씨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은 없었다.

롯데홈쇼핑 자료사진 ⓒ뉴스1


태광그룹 1인자와 2인자 사이는 왜 틀어졌나


그룹 총수와 2인자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한 건 작년 7월 말 열린 롯데홈쇼핑(옛 우리홈쇼핑) 사옥 매입 이사회 직후부터인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태광산업이 2대 주주(45%)로 있는 롯데홈쇼핑은 그동안 임대로 사용 중이던 롯데그룹 소유의 빌딩(2,039억원 규모)을 매입하는 내용의 이사회를 열었는데, 태광 측 이사진(4명)을 포함한 이사 9명 전원이 찬성해 통과됐다.이 결정은 이 전 회장에게 보고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된 이 전 회장이 격노했고, 경영을 총괄하던 A씨에 대한 신임을 거둬들였다는 것이다. 

이 전 회장의 격노는 롯데그룹과 이 전 회장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태광그룹과 롯데그룹은 2006년 우리홈쇼핑 인수를 두고 경쟁한 바 있다. 당시 인수전에서 롯데가 승리했고, 태광은 2대 주주로 밀려났다. 이후 태광그룹은 롯데홈쇼핑의 주요 경영안건이 나올 때마다 반대의견을 냈다. 2022년 롯데건설 PF 부실을 롯데홈쇼핑이 지원하려 했을 때도 태광은 반대했다. 결국 지원액을 5천억원에서 1천억원으로 낮추고, 지원 방식도 대여로 변경한 후에야 이사회를 통과했다.

롯데에 대한 이 전 회장의 반감이 큰 상황에서 태광 측 이사진들이 2천억원 규모의 롯데홈쇼핑 사업매입을 아무런 보고 없이 결정했다는 게 태광 측의 설명이다. 태광 측은 이 같은 이사진의 결정이 A씨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보고 있다. 이유를 알 순 없지만, 김 전 의장의 판단하에 이사진이 롯데에 유리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에 분노한 이 전 회장이 8월 초 내부감사를 지시했고, 같은 달 24일 감사에서 김 전 의장의 비위 사실이 확인돼 김 전 의장을 해임했다고 태광 측은 설명했다.

다만 의문이 남는다. 롯데홈쇼핑 사옥매입 안건을 통과시키도록 지시한 A씨는 해임된 반면 이사회에서 찬성표를 던진 태광 측 임원들은 대부분이 현직에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찬성표를 던진 태광 측 이사진은 태광산업 인사실장과 태광산업 재무실장, 태광산업 석유화학사업부 경영기획실장, 흥국화재해상보험(주) 자산운용본부장 등 4명이다. 이들 중 태광산업 석유화학사업부 경영기획실장을 지냈던 1명만이 작년 말 일신상의 이유로 퇴직했고 나머지는 현직으로 태광에서 재직 중이다. 

이에 대해 태광 측은 “회사 내에서 보기엔 (이들 임원은)A씨의 지시를 따른 것이지 회사에 피해를 주기 위해서 한 행동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A씨는 해임 된 후 사실상 폭로전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해임 한 달 뒤쯤인 10월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 전 회장의 비리 혐의를 진술했다. 경찰은 해임된 김 전 의장을 참고인으로 소환했고, 이에 응한 김 전 의장이 이 전 회장의 혐의를 모두 진술한 것이다. 경찰은 작년 10월 말 이 전 회장의 자택과 태광그룹 미래경영협의회 사무실, 골프장 태광 CC 등을 압수수색 했다.

그러자 이 전 회장 측은 작년 11월 A씨를 150억원 규모의 부당대출 청탁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며 맞불을 놨다. 내부 감사를 통해 A씨가 자신의 측근인 저축은행장을 통해 150억원 규모의 부당 대출을 지시한 사실을 확인했다는 게 태광 측의 주장이다. 또 이 과정에서 A씨가 대출을 성사시키기 위해 자신의 측근을 태광그룹 계열 저축은행인 예가람저축은행과 고려저축은행의 공동행장에 앉혔다고도 했다.

A씨는 부인했다. 태광이 고발하고 나서야 해당 대출의 존재를 알았다는 것이 A씨 주장이다. A씨는 “태광이 나를 해임하기 위해 감사를 하는 과정에서 행장이 내가 추천했다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이런 일을 벌인 것 같다”며 “관련해서 이미 수사를 받았다. 결과 나오는 것을 보면 알 것”이라고 했다.

앞서 태광의 고발을 접수한 서울서부지검 형사4부는 올해 1월 A씨와 태광그룹 저축은행 계열사 대표이사 등의 주거지와 사무실을 압수수색 했다.

이 전 회장 측의 대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달 7일 경찰이 이 전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태광 측은 이틀 뒤인 9일 이 전 회장의 모든 혐의를 A씨가 그룹을 경영하면서 저지른 비리라며 A씨를 또 검찰에 고발했다. 해당 사건은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로 넘어간 상황이다. 이 전 회장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은 지난 22일 기각됐다.

두 사람에 대한 수사는 현재 각각 경찰과 검찰에서 각각 진행 중이다.

이 전 회장의 배임 및 횡령 혐의를 수사 중인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단 반부패범죄수사대 관계자는 “구체적인 수사 진행상황에 대해선 공개할 수 없다”면서도 “이 전 회장에 대한 구속 필요성과 법원의 기각 사유를 다시 분석 중이다. 구속영장 재청구 가능성도 열어놓고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A씨의 부당대출 청탁 혐의를 수사 중인 서울서부지방검찰청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건이라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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