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장정일 칼럼] 대구라는 불구덩이

청산되지 않은 과거는 현재를 억압하기 위해 되돌아온다. 대구시가 세우려는 박정희 동상 이야기다. 이 논란의 핵심에는 홍준표 대구시장이 있는데, 그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자서전이랄 수 있는 『홍검사 당신 지금 실수하는 거요』(아침나라,1996)에 잘 나와 있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4파전을 벌이던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때, 그는 부부의 표가 갈려서는 안 된다면서 전라도 부안 출신 아내에게 ‘표 단일화’를 강요했다. 그는 안정이 우선임을 내세워 김영삼으로 단일화를 꾀했는데, 정치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아내였지만 이때만은 김대중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종필을 찍기로 했다나 어쨌다나…. 부부니까 표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그의 괴상한 민주주의관은 전라도 출신 아내의 ‘한’을 짓밟았고, 동대구역과 대구도서관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겠다는 작금의 미친 짓으로 연결된다.

홍준표의 망동은 대구ㆍ경북을 기반으로 한 ‘국민의 힘’ 정치인들의 삐뚤어진 역사의식과 10명 중의 7명이 박정희 동상 건립을 찬동한다는 대구 시민의 잘못된 애향심이 뒷배지만, 모든 원인을 ‘국민의 힘’과 대구 시민에게 돌릴 것만은 아니다. 2012년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개관한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은 1997년 15대 대선 후보 김대중(새정치국민회의)의 국민통합 공약에 의해 탄생했으며, 2014년 민주당 대구시장 김부겸 후보는 ‘박정희 컨벤션센터’ 설립을 공약했었다(그러고서도 김부겸은 ‘민주당 후보‘라는 것을 감추어야만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1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경북 구미 상모사곡동 박정희 대통령 생가 기념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박 전 대통령 동상 앞에서 절을 올리고 있다. 2018.11.14 ⓒ뉴시스


한때 노무현의 ‘입’(대통령비서실 홍보기획비서관)이요, 문재인의 ‘복심’(전 민주연구원 원장)이었다던 양정철은 『세상을 바꾸는 언어』(메디치미디어,2018)에서 박정희의 “과(過)는 과대로 극복하면 되지, 역사 속 인물로서 우표 발행과 동상 설립까지 반대하는 것은 야박하다고 생각한다.”(122쪽)라고 번듯이 썼다. 이 책 표지 앞날개에는 그의 동료가 써준 프로필이 있는데, 거기에 적혀 있는 “노무현을 만났다. 노무현으로 살았다.”라는 구절은 개소리다.

제16대 대통령에 막 취임한 노무현은 박정희 기념관 건립 사업 보고를 받고 “특정인을 기리는 기념관은 그 인물을 존경하는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모금해서 건립하는 게 순리”라면서 국고 보조 예산 200억원 집행을 재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마다 기념관을 건립하기 보다는 행정 수도 이전으로 청와대가 옮겨갈 경우 현재 청와대 본관 등에 역대 대통령들의 관련 자료를 모아서 종합기념관을 건립하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2003년 3월 15일 오전 7시에 방영된 SBS 뉴스 「박정희 기념관 국고지원 재검토」 참조). 대구시가 박정희 동상 두 개를 세우는 데 드는 14억5천만 원은 시민 성금이 아닌 전액 대구시 예산이다. 노무현은 양정철과 달리 저 동상을 반대하는 것을 야박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보수층과 대구·경북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민주당 정치인들의 박정희에 대한 계산된 전향이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표를 가져다주었는지 대해서는 어떤 유의미한 통계도 나온 바 없다. 오히려 자칭 ‘진보라는 것’들이 선거 국면에서 박정희의 공만 기막히게 발췌하여 예찬하는 데, 그동안 보수 정당만 찍었던 유권자들이 이제와 지지 정당을 바꾸어야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보다 더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이 있다면, 민주당의 정치공학자들이 박정희 기념관이나 동상 건립에 유화적이거나 적극적일 때마다 대구의 양심적 시민과 시민운동의 자리가 점차 사라진다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민주당에게 유리한 정치공학일까? 이것은 북한이 미사일을 쏠 때마다 남한의 통일운동가와 진보 진영이 위축되는 사태와 같다. 민주당의 정치공학자들은 자신들의 출세를 위해 대구의 시민운동과 양심적 시민을 불구덩이와 같은 환난에 밀어 넣는 파렴치한 일을 멈춰야 한다.

‘잘 살게 해주면 그만’이라며 박정희 두둔하는 보수·우익
푸틴, 시진핑에는 독재라고 비판
민주당 정치공학자들도 파렴치 멈춰야


대구·경북 지역의 독립 언론 ‘뉴스민’에 김동춘 성공회대 명예교수(좋은세상연구소 대표)가 박정희 동상 건립에 관해 쓴 「동대구역에 박정희 동상을 세운다고?」(2024.5.13.)에 썼듯이 “지금 대구·경북은 실업, 빈곤, 자살 등 모든 경제 사회 지표에서 한국에서 가장 뒤떨어진 지역이다.” 대다수 대구 시민이 박정희 동상 건립에 찬성하는 것은 대구의 위신 추락이나 지역 경제 불황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대구만의 특색이 아닌, 거국적이고 세계적인 현상이다. 국가가 영광을 잃어가거나 경제발전이 답보되면 과거의 독재자가 예외 없이 재림한다. 구 러시아(소비에트)가 15개국으로 쪼개지면서 러시아 민족의 영광이 사라지고, 서민들 살기가 힘들어지자 러시아에서는 스탈린의 인기가 치솟았다. 2012년 러시아에서 실시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스탈린(49%), 레닌(37%), 표트르 대제(37%), 푸슈킨(29%), 마르크스(4%) 순이었다.

저 조사에서, 2,000만 명의 동족을 죽이고 전 국토를 창살 없는 감옥으로 만든 스탈린은 러시아를 강대하게 만들고 번영시킨 위대한 지도자였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잃어버린 러시아의 비전(유라시아주의)과 경제 성장을 성취시켜주는 구세주로 떠오르면서 스탈린의 인기를 양도받았다. 그런데도 박정희를 숭앙하는 이들치고 푸틴을 칭찬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참으로 코믹하다. 말이 난 김에 보태자면, 한국의 좌파는 물론이지만, 특히 보수·우익 가운데 시진핑을 독재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알고 보면 박정희는 일찍 죽은 푸틴이자 시진핑이요, 반대로 푸틴과 시진핑은 살아 있는 박정희가 아닌가. ‘잘 살게만 해주면 그만’이라는 보수·우익은 일관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대구시의회 본회의장 입구에서 '대구시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에 관한 조례안'에 반발하는 박정희우상화사업반대 범시민운동본부 관계자와 시의회 청원경찰 등이 충돌하고 있다. 2024.5.2 ⓒ뉴스1

박정희를 추앙하는 사람들은 박정희 시대를 ‘국민총화’의 시대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강준만이 잘 정리해놓은 『한국 현대사 산책 – 1970년대편』(인물과사상사,2002) 전 3권을 보면, 국민총화의 시대 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다. 박정희가 통치했던 18년이 그렇게 보였던 것은, 고문과 도살과 감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 정권 치하의 한국은 사실상 ‘고문(拷問) 공화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2권 204쪽), “법을 집행하는 기관들은 인권침해를 아예 상습화, 생활화하였고, 고문을 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는 듯이 그것마저 상습화, 생활화하였다.”(3권 207쪽) 박정희가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처럼 4만 명을 살상한 것은 아니라고 편들 사람도 있겠지만, 한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다. 이승만은 단 한 사람(김주열)의 죽음으로 무너졌고, 그보다 악독했던 살인마 전두환도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된 두 사람(박종철ㆍ이한열)의 죽음으로 무너졌다. 수백 명은 족히 죽였을 박정희는 운이 좋았을 따름이다(결국은 그 운도 충복의 손에 죽는 것으로 끝났다).

한국 사회 곳곳에는 아직도 박정희의 희생자들이 있다. 그런데도 박정희 동상(흉상)은 흔전만전이다. 서울 영등포 문래공원, 철원 군탄 공원,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본관 서쪽, 경북 청도군의 새마을운동 발상지, 경기 성남 새마을중앙연수원 내부, 구미의 박정희 대통령 생가(역사기념관)와 ‘박정희 등굣길’, 구미초등학교 운동장에 박정희 동상(흉상)이 있다. 저 흉물들은 박정희에게 생명을 빼앗긴 희생자와 그 가족을 향해 “너희는 국민총화를 훼방 놓은 ‘비국민’”이라고 눈을 부라린다. 양정철의 말처럼 박정희는 “역사 속 인물”이 아니다. 독재자의 백골은 진토 되었어도 좌우의 정치공학자들은 그의 넋이 필요하다. 2024년 현재, 대구는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1980년 광주와 (‘쪼끔’은) 사태가 유사한 불구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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