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14일)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더불어민주당에서 돈 주자는 13조원(민생회복지원금)의 10분의 1만 있어도 (동해안 시추를) 우선 시작할 것 아니냐”고 말했단다. 나는 이 기사를 읽고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나서 새인줄 알았다”거나 “친구 결혼식에 합의금 얼마 내야 적당하냐?”고 물었다던 빡대가리들이 연상돼서 죽는 줄 알았다.
이게 진정 한 나라 광역단체장의 수준이란 말인가? 문과 출신인 나는 과학적 지식이 부족해서 동해안 석유 시추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판단을 못한다(물론 지난주 칼럼에서 밝혔듯이 이걸 윤석열 대통령이 폼 잡고 발표한 건 매우 웃기다고 생각한다). 또 나는 정치적 견해에 따라 민주당에서 주장하는 민생회복지원금을 반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물론 나는 찬성하는 쪽이다).
그런데 이 두 개를 이렇게 비논리적으로 갖다 붙이는 신기술을 국민의힘 소속 도지사가 펼칠 줄은 정말 몰랐다. 이 정도면 뇌를 보호하기 위해 형성된 두개골이 필요 없는 수준 아닌가?
승수효과
도대체 이런 멍청한 논리를 반론하기 위해 경제학까지 동원돼야 할까도 싶었지만, 이런 생각 자체가 경제학을 괜히 숭고한 무엇인 양 올려치는 태도 같기도 해서 그냥 하기로 했다. 경제학에는 승수효과라는 경제 용어가 있다. 100원을 투자했을 때, 그 경제적 효과가 100원에 그치지 않고 500원, 1,000원으로 불어나는 경우를 말한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프랑수아 케네(Francois Quesnay, 1694~1774)가 처음 도입한 개념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예를 들어 정부가 복지정책을 통해 1억 원을 국민들에게 골고루 나눠줬다고 가정해보자. 1억 원을 받은 국민들은 이 돈을 쓸 것이다. 물론 다 쓰지 않을 수 있다. 20% 정도를 저축하고 80%를 쓴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정부가 지출한 1억 원 중 8,000만 원이 소비 시장으로 나온다.
누군가가 8,000만 원어치 물건을 샀다는 이야기는, 또 다른 누군가가 이 거래에서 8,000만 원의 소득을 새로 얻었다는 이야기다. 8,000만 원을 새로 번 사람들도 이 중 80%인 6,400만 원 정도를 소비할 것이다.
그러면 새롭게 6,400만 원의 소득이 생긴다. 이 사람들도 6,400만 원의 80%를 다시 소비에 사용한다. 이런 식으로 계속 계산하다보면 정부가 복지정책으로 지출한 1억 원은 총 5억 원에 이르는 소비를 유발한다. 초기 정부지출 1억 원이 다섯 배에 이르는 승수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승수효과가 커지기 위해서는 정부의 첫 지출이 한 번 지출로 끝나지 않고 다음 지출로 쉽게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주장하는 민생회복지원금은 다음 지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돈이다. 왜냐하면 이 돈은 저축이 불가능한 지역화폐 형태로 지급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철우 경북도지사. ⓒ뉴시스
하지만 동해안 시추에 드는 돈이 그런가? 시추공 한 개 박는데 1,000억 원 이상이 투입된다. 최소 5개는 뚫어야 하기에 5,000억 원 이상의 정부 예산이 필요하단다. 만약 석유가 안 나오면 이 돈은 그냥 날리는 돈이다. 시추와 관련된 회사들만 돈 벌어 가고 끝이기 때문에 승수효과가 거의 없다. 이게 민생회복지원금과 비교가 될 대상이냐?
그래서 판단을 하려면 우리가 5,000억 원 이상을 날릴 각오를 하고 모험을 할 것인가? 아니면 안 그래도 확률도 낮아 보이는데 그냥 포기할 것인가? 이 두 가지를 비교해야 한다. 이건 과학자들의 몫이다. 그런데 여기서 경북도지사라는 사람이 “민생회복지원금의 10분의 1이면 시추를 시작할 수 있다” 뭐 이런 빡대가리 같은 논리를 펼치니 어이가 없는 거다.
깨진 유리창의 오류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 경제학에는 깨진 유리창의 오류(Parable of the broken window)라는 이론이 있다. 프랑스 출신 경제학자 프레데릭 바스티아(Frederic Bastiat, 1801~1850)의 이론이다. 바스티아의 이야기는 이렇다.
빵집 자식이 자기 집 유리창을 깼다. 빵집 주인이 자식을 심하게 야단을 치자 이웃이 말리며 이렇게 말한다. “자식이 유리창을 깼으니 손해인 것 같지만, 네가 새 유리창을 사면 유리창집 사장님이 돈을 벌 거야. 유리창집 사장님도 번 돈을 쓸 것이기 때문에 또 다른 소비를 유발하겠지. 네 아들이 유리창을 깨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우리 마을의 소득과 고용이 늘었어. 얼마나 다행한 일이야? 그러니 오히려 아들을 칭찬해 줘”라고 말이다.
승수효과를 쉽게 설명한 이야기 같은데, 그렇다면 이 말이 맞는 이야기일까? 웃기는 소리다. 자녀가 유리창을 깨지 않았다면 빵집 주인은 그 돈으로 다른 것을 살 수 있다. 신상 운동화를 한 켤레 샀다면 운동화 가게 사장님이 돈을 벌고, 그 돈이 마을에 돌아 아까와 마찬가지로 고용과 소비를 유발한다.
자녀가 유리창을 깨서 마을 경제가 활성화된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어차피 그 돈은 쓸 돈이었기에 신발을 사도 마을 경제가 활성화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유리창을 깨는 바람에 빵집 주인이 사고 싶었던 신발을 못 사는 손해를 입었을 뿐이다.
이 말은 승수효과도 중요하지만 정부가 쓰는 돈이 유리창 수리에 쓰이느냐, 아니면 꼭 필요한 신발 구입에 쓰이느냐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똑같이 정부가 돈을 써도 김대중 정부처럼 인터넷 인프라를 까는 데 47조 원을 쓰느냐, 이명박처럼 4대강을 녹조라떼로 만드는 데 22조 원을 쓰느냐는 천지 차이다.
그래서 “민생회복지원금은 13조 원이지만 동해안 시추는 그의 10분의 1이면 된다”는 소리가 헛소리인 거다. 다시 강조하지만 나는 민생회복지원금이 깨진 유리창을 수리하는 데 드는 돈이냐, 아니면 꼭 필요한 신발을 구입하는 데 쓰는 돈이냐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논쟁이 가능하다고 본다. 동해안 시추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둘에 드는 돈을 단순히 붙여서 “10분의 1이면 시추를 시작할 수 있어요” 이러고 자빠져 있으면 코미디가 된다. 내가 그 인터뷰를 보고 진짜 놀란 대목은 이철우 지사가 인터뷰 도중에 “더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점이다.
“민생회복지원금의 10분의 1이면 시추를 시작할 수 있어요”가 과학이냐? 도대체 어느 나라 과학이냐?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나 네안데르탈인도 그렇게는 계산 안 하겠다. 이런 황당한 논리구조를 가진 자가 경북도지사씩이나 하고 있으니 나라가 이렇게 어이없이 굴러가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