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의 예상을 훌쩍 뛰어 넘는 6월 19일 북러 양국간 ‘포괄적 전략동반자Complehensive Strategic Partnership: 이하 CSP’조약 체결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다. 포괄하는 범위의 폭과 담겨있는 내용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이번 조약은 안보에 국한된 방위조약이 아니다. 그렇게 안보조약으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북러 양국관계와 그 미래까지를 프레이밍할 일종의 기본조약이라 부르는 것이 어울린다. 23개 조항으로 구성된 이 조약의 앞 8개항은 기본적으로 새로운 국제질서와 안보에 해당되는 반면, 제9조부터 제20조까지는 주로 양국의 경제통상, 투자, 과학기술, 정보통신, 우주, 원자력, 인공지능, 지자체 수준의 교류협력, 농업, 보건, 문화관광, 표준, 인증, 범죄인 인도, 법제, 국제테러방지, 마약, 전력, 언론, 출판, 인적 교류 등 국가간 관계에서 있을 수 있는 거의 전분야가 언급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북한 평양 금수산 영빈관에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체결한 후 협정서를 들고 기념 촬영하고 있다. 이번 협정에는 어느 한 나라가 공격을 받으면 상호 지원을 제공하는 '유사시 상호 지원' 조항도 포함됐다. 2024.06.19. ⓒ뉴시스
그리고 전반 8개조항도 주로 다음 항목으로 세분되어 있다. 주권 존중, 불가침, 내정불간섭 등 국제법 기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적 관계(제1조), “공정하고 평등한 새로운 국제질서” 수립을 위한 소통과 협동(제2조), 국제평화와 안전보장을 위한 협력 그중 어느 일방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 조성되면 ‘쌍무협상통로를 지체 없이 가동”시키는 문제(제3조), 어느 일방의 전쟁상태 돌입시 지원 제공(제4조), 자주적 발전의 권리와 제3국에 의한 자주권 침해 불허(제5조), “정의롭고 다극화된 새로운 세계질서” 수립을 위한 협력(제6조), 유엔 등 국제기구 내에서 세계와 지역의 발전문제를 협의, 협조하고 “상호성에 기초하여 매 일방이 해당한 국제 및 지역기구들에 가입하는 것을 협조하며 지지”(제7조), 전쟁방지와 지역 및 국제평화와 안전보장을 위한 제도마련에 협조(제8조).
그런데 여기서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이 제3조와 제4조라 하겠다. 먼저 제3조를 보자면 이렇다.
제3조 쌍방중 어느 일방에 대한 무력침략행위가 감행될 수 있는 직접적인 위협이 조성되는 경우 쌍방은 어느 일방의 요구에 따라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며 조성된 위협을 제거하는데 협조를 상호 제공하기 위한 가능한 실천적 조치들을 합의할 목적으로 쌍무협상통로를 지체 없이 가동시킨다.
제3조는 전쟁전단계인 침략을 위한 “직접 위협”이 조성될 경우를 상정한 것인 바 이때 양국은 “쌍무협상통로”를 “지체 없이 가동”시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음 조약 전반부의 핵심이라 할 제4조를 보자.
제4조 쌍방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러시아연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
조약의 제4조는 말하자면 “전쟁상태” 즉 군사적 침공이 개시된 개전이후를 예정한 조항이다. 그 경우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 “지체 없이” 제공해야 한다. 가용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체약국 일방에 대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의미인데, 상례로 보자면 병력과 무기 등 화력을 포함한 군사력을 원조한다는 의미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조약 제4조의 의미를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1961년 조소조약을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른바 조소동맹조약이라 불리는 1961년 조약의 정식명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맹 간의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이다. 1961년 7월 6일 모스크바에서 체결되었다. 1961년 조소조약의 제1조는 이러하다. 참고로 해당 문언의 영역본도 병기해 둔다.
제1조 체약 쌍방은 그들이 앞으로도 극동과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전의 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국제적 활동에 참가할 것이며 이 고귀한 과업의 수행에 기여할 것을 성명한다. 체약 일방이 어떠한 국가 또는 국가 연합으로부터 무력 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에 체약 상대방은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온갖 수단으로써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 ... the other Contracting party shall immediately extend military and other assiatance with all the means at its disposal) (*이하 강조는 인용자).
즉 1961년 조소조약의 관련 문언을 이번 조약 제4조의 해당 부분에 그대로 차용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 차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2000년 7월 19일자 ‘조러공동선언’ 제2조 관련 조항도 언급해 두는 것이 좋겠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러시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또는 러시아에 대한 침략위험이 조성되거나 평화와 안전에 위협을 주는 정황이 조성되어 협의와 상호협력을 할 필요가 있는 경우 지체 없이 서로 접촉할 용의를 표시한다.
차이는 명확하다. 여기서 잠깐 1961년 조소조약과 2024년 조러조약의 해당구절을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관련 문언과 비교해 보는 것도 꽤나 유의미할 것이다.
제2조 당사국 중 어느 일국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전이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다고 어느 당사국이든지 인정할 때에는 언제든지 당사국은 서로 협의한다. 당사국은 단독으로나 공동으로 자조(自助)와 상호 원조에 의하여 무력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지속 강화시킬 것이며 본 조약을 이행하고 그 목적을 추진할 적절한 조치를 협의와 합의하에 취할 것이다. (The Parties will consult together whenever, in the opinion of either of them, the political independence or security of either of the Parties is threatened by external armed attack. Separately and jointly, by self help and mutual aid, the Parties will maintain and develop appropriate means to deter armed attack and will take suitable measures in consultation and agreement to implement this Treaty and to further its purposes.)
2000년 공동선언상의 ‘접촉’ 조항과 1953년 한미동맹조약상의 ‘협의’와 1961년 조소조약과 2024년 조러 CSP조약상의 ‘지체 없는 원조’가 뚜렷한 대조를 보인다. 이처럼 안전보장과 유사시 지원의 결의, 강도, 규모와 관련 이번 조약, 1961년 조소조약, 2000년 조러 공동선언 그리고 1953년 한미동맹조약의 차이는 현격하다. 참고로 특히 협정문에 사용된 조동사는 관건적인 의미를 갖고 있음을 지적해 두고 싶다. 이는 우리말로 조약문을 해독할 때 도저히 파악하기 어려운 난점이다. 서구권 조약문에서 조동사 ‘shall’이 사용될 경우 이는 무조건적인 강행규범을 의미함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나머지 조동사의 규범력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보자면 1961년, 2024년 소련과 러시아의 조약문언은 조동사 ‘shall’로 작성되어 있다. 반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경우 ‘will’이다. 이는 유사시 “협의”를 전제로 체약국 다른 일방 예컨대 미국이 취할 조치와 그 수단을 상황에 맞게 선택하겠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번 CSP조약의 성격과 의미 나아가 해석상의 몇 가지 문제에 대해 언급해 보자.
첫째, 장창준의 연구에 따르면 2023년 한미군사연습은 42차례 이상, 한미일 군사연습은 10차례 이상 그리고 전략자산 20차례 이상 전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2024년 3월까지 79일 동안 한미군사연습은 29차례에 달한다. 특히 최근 들어 나토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핵심원인이 된 나토 동진이 무색하리만치 조약이 정한 범위를 일탈, 동아시아를 포함 글로벌화하고 있다. 한미일 군사동맹 그리고 글로벌 나토는 2024년 러시아와 북, 베트남간의 CSP조약이 체결된 가장 중요한 안보환경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CSP조약의 안보 관련 핵심조항의 문언이 갖는 기본 성격은 ‘방어적’이다. 즉 상대의 소위 ‘선제타격’ 등 조짐이 있을 경우 위협평가를 거쳐 비로소 발동되는 것이다. 선제공격을 위한 용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를 일종의 ‘전수방위專守防衛’ 같은 것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북의 영토완정(領土完整, territorial integrity) 의지나 헌법상 영토조항 신설 움직임에서 보듯이 공격에 대한 반격이나 응전이 기존 영역에만 한정될 거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손자병법을 빌어 풀이하자면 일종의 불가승(不可勝)전략으로 이해할 만하다. ‘불가승재기 가승재적(不可勝在己 可勝在敵)’이란 말은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가 승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불가승’과 ‘가승’은 연결해서 봐야 한다. 우선 방어를 공고히 한다는 말은 방어에 이은 공격에서 승리하겠다는 말이다.
둘째, 그렇다면 과연 이번 CSP조약을 흔히 한국 언론에서 말하듯 ‘유사시 자동개입 조항’이라고 봐야 할 것인가. 비록 푸틴이 하노이 기자간담회에서 2024년 조약이 과거 조약과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긴 했지만, 위에서 보았듯이 1961년 조약과 2024년 조약간의 가장 큰 차이중 하나는 제3조를 설치한 점이다. 조약문의 제3조와 제4조는 일종의 시간적 시퀀스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논리적일 것이다. 다시 말해 제3조에서 예정한 ‘직접 위협’ 단계 즉 전쟁위기가 임박했을 때 체약당사국이 지체 없이 양자채널을 가동해 위험평가를 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회동한 양자채널에서 양국은 외부로부터 조성된 위협의 제거를 위한 각종 조치를 강구할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이 단계가 실패로 돌아갔을 경우, 어느 일방은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 “전쟁상태”에 돌입한 타 체약국을 무조건적으로 지원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 그러므로 2024년 조약을 이런 관점 즉 제3조와 제4조를 연속선상에 놓고 해석할 때, 그것은 적어도 논리적으로 무조건적인 ‘자동개입’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셋째, 푸틴은 방북 전 노동신문 기고문을 통해 방북의 의미와 목적 등에 대해 밝히고 있다. 푸틴은 글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된 언급에 이어 이런 생각을 말했다. 그 대강을 보자면 1)러시아는 북의 “자주와 독창성, 발전의 길을 자체적으로 선택하려는 권리를 지키는 투쟁”을 지지한다. 2)“국제관계를 민주주의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로 만들기 위하여” 밀접하게 협조한다. 3)이를 위하여 “서방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역 및 상호결제체계를 발전시키고 일방적인 비합법적 제한조치들”을 공동으로 반대한다. 4)“유라시아에서 평등하고 불가분리적인 안전구조를 건설”해 나갈 것이다. 5)양국간 “인도주의적인 협조”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6)양국은 “고등교육기관들 사이 과학적인 활동을 활성화”해 나가자. 7)“상호 관광여행, 문화 및 교육, 청년, 체육교류”들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자.
푸틴 기고문에는 브릭스가 직접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북한식 번역용어로 유라시아 “불가분리적인 안전구조”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북에서 ‘불가분리적인’으로 번역한 말은 영어로는 ‘indivisible’이다. 우리학계에서는 그냥 안보불가분의 원칙 등으로 옮겨 쓴다. 중러 등의 공동선언에서 반드시 나오는 개념어가 바로 이 말이다. 좀 새롭게 바꿔 ‘안보불가분의 원칙에 기반한 유라시아 공동안보시스템’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푸틴의 말로 이른바 ‘리버럴-글로벌리스트’가 주도하는 ‘유로-아틀란티스트 안보체계’의 붕괴와 새로운 ‘유라시아 안보체계’의 구축은 스위스에서 개최된 소위 ‘평화정상회의’ 전날인 6월 14일 러 외무부 간부급 내부 세미나에서의 푸틴 연설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이 안보시스템의 경제적 토대가 되는 것이 브릭스, 상하이협력기구SCO,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등의 국제기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외 푸틴은 러-벨라루스 연합국가Union State, 독립국가연합CIS, 집단안보조약기구 CSTO(러,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키르키스탄, 타지키스탄 등)도 유라시아 안보체계와 관련 언급한다. 그리고 일각에서 오독하듯 각국의 안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안보불가분원칙은 중러만이 대표하는 그런 개념이 전혀 아니다. 이미 1970년대 이후부터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와 소련 해체 이후 1990년대 제정된 파리헌장의 기본원칙이다. 즉 서방의 ‘자유주의’ 국제관계의 핵심개념이란 말이다.
아무튼 조약의 제7조 “상호성에 기초하여 매 일방이 해당한 국제 및 지역기구들에 가입하는 것을 협조하며 지지”한다고 했을 때 그리고 제8조 “전쟁을 방지하고 지역적 및 국제적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방위능력을 강화할 목적 밑에 공동조치들을 취하기 위한 제도”들에 위의 기구들이 해당되는지 지켜볼 대목이다. 그리고 이 조약과는 별도로 북한의 브릭스 가입 신청은 상당히 유력해 보인다. 특히 러시아가 올해 브릭스 의장국이기 때문이다. 이번 조러정상회담을 변곡점으로 북한 역시 유라시아 집단안보시스템에 어떤 형태로든 ‘관여’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푸틴은 중국이 주창한 ‘글로벌 안보이니셔티브’에 대해 러의 유라시아 안보시스템은 그에 ‘보완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푸틴의 북한, 베트남 방문은 무엇보다 새로운 ‘유라시아 안보시스템’구축과 불가분이라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아울러 양자 정상회담과 CSP조약은 북의 안보는 물론이고 외교와 경제에도 하나의 대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서 과거조약과 이번 조약은 질적으로 전혀 다른 것이다.
넷째, 특히 한미일 삼각군사동맹 구축과 관련 극도로 예민한 사안이 조약 제3조와 제4조 뿐만 아니라 북러 간의 군사기술협력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푸틴은 이 문제가 미국 등 집단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무기의 러시아 본토 공격 허용에 대한 ‘미러링’임을 조금도 숨김없이 말하고 있다. 서방무기를 통한 러 본토 공격시 전통적 우방국은 물론이고 신우방국에도 전략무기급 무기제공 혹은 기술협력은 이전부터 공언하던 내용이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황이 집단서방측에 가망성이 없는 쪽으로 기울면서 서방이 제공한 무기를 러 본토 공격에 사용하기 위해 나토 병력이 직접 개입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아르마빌이나 오르스크 등 러시아의 ICBM 조기경보 레이더기지 등 핵심 핵방어에 대한 우크라이나·나토의 공격은 유럽에서의 핵전쟁의 가능성을 급격히 끌어올렸다. 러시아의 쿠바 하바나 핵잠 등 파견은 바로 여기에 대한 미러링식 대응의 일환이다. 나토-러간의 3차 세계대전 가능성이야말로 조러정상회담과 군사동맹에 준하는 CSP조약 체결의 가장 중요한 배경중 하나이다. 향후 서방무기의 러 본토 공격에 정비례해서 러 우방에 대한 군사협력 수준 역시 고도화될 것이 분명하다. 즉 이란, 시리아, 쿠바, 베네수엘라는 물론이고 특히 북한도 이제 그 리스트의 상단에 자리잡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다섯째, 21세기 들어와 빈번하게 사용되는 동반자외교는 엄밀히 정의될 수 없는 개념이다. 양국관계를 미국은 기본적으로 동맹주의에 기반 쉐이핑한다. 즉 동맹이 핵심이 되고 그 주변에 2급 동맹이나 우호국 등을 배열한다. 예컨대 그 핵심인 1급 동맹국으로는 대표적으로 앵글로색슨 첩보동맹인 ‘파이브아이즈Five Eyes’(미, 영,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를 들 수 있고, 그 주변에 일본이나 이스라엘, 한국 등 1.5급~2급 동맹이 있다. 반면 중러와 EU의 경우 동반자partnership주의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중은 아예 양자관계에서 ‘동맹’이란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긴 어렵지만 대개 동반자주의가 상대적으로 덜 군사주의적이고 상호호혜, 이익균형을 강조한다고 할 수 있다.
CSP도 나라마다 정의하는 게 다르고 폭과 수준도 제 각각이다. 지난 5월 중러정상회담 이후 발표된 성명서가 CSP의 “심화”라고 되어 있다. 즉 중러 관계도 일종의 CSP관계인 것이다. 한국도 다양한 단계의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체결하고 있다. 예컨대 중국과는 ‘전면적 협력 동반자관계’, 러시아와는 ‘상호신뢰하는 포괄적 동반자관계’이다. 이번 체결된 조러 CSP는 군사동맹에 준하는 사실상 상호방위조약 조항을 포괄하는 즉 최소 중러 수준의 나아가 경제, 외교로 보자면 그보다 더 심층적이라 부를 만한 ‘하이스탠다드 CSP’라 부를 만 하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마 조러 CSP조약은 한미동맹을 포함한 한미관계 70년을 반식민주의적으로 압축·미러링하고, 2000년 이후 조러관계 20년을 다극화질서에 맞게 단박에 월반·재구성한 것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19일 새벽 북한 평양의 순안국제공항에 도착해 영접 나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공항 밖으로 나오고 있다. 2024.06.19. ⓒ뉴시스
이번 회담의 결과는 전면전 일보직전에서 일단 ‘보류’된 이란-이스라엘 분쟁의 결과 거의 70년 만에 ‘서아시아 신질서’ 혹은 이른바 지정학적 ‘신방정식New Equation’이 생성된 것에 비견될 만하다고 나는 본다. 그래서 이는 냉전 이후 동아시아의 새로운 안보패러다임 혹은 신안보 방정식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사실 ‘다극화의 효과’로 인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시한 나토와 러시아간의 전쟁위기는 개전 때부터 한반도 상황과 불가분리적이었다. 마찬가지 대만 문제도 그렇다. 하지만 한반도 상황이 글로벌 차원에서의 지정학적 3대 단층선 즉 러-우크라이나, 이스라엘-이란, 중국-대만과 동등한 지위를 갖는지는 다른 문제다. 즉 미국의 패권위기를 극복함에 있어 오직 북한과의 단독전쟁이 무슨 의미가 있는 가하는 질문 말이다.
그런데 이제 북러가 사실상의 군사동맹 가능성을 내포하는 CSP조약을 체결했다. 더군다나 러시아 핵이 없이도 북은 사실상 핵보유국이다. 유사시 핵사용 가능성은 비약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한반도 분쟁은 즉시 핵전쟁으로 비화되는 핵보유국간의 전쟁이고, 특히 이번 회담 이후 한반도는 핵보유국 미, 중 , 러, 북 모두가 관여되는 글로벌 초강대국 핵전의 전장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는 이제 일어나기에는 너무 커져 버린 역설이 발생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지정학적 단층대에서 볼 수 없는 한반도 위기가 갖는 하나의 특수성이다. 전쟁 자체가 더 이상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이 아니라 그 자체가 절멸이라면 이는 전쟁이라는 행위가 전쟁의 존재이유 자체를 터무니없이 초월해버려 ‘무’라는 일종의 블랙홀이 발생한다는 말이 된다. 이 절대적 부조리로부터 어떤 새로운 억제력이 생성될지 아직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상황의 냉각을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2022년 북한 김여정의 “권언” 즉 “우리와 일체 상대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렇다, 이어서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자”고도 했다. 2024년 조약과 함께 한국의 대북 레버리지는 거의 소멸 직전이라서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