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이런 선언이었다. 지난주 채 상병 특검법 관련한 청문회에서 임성근 전 해병대1사단장,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등이 증인선서를 거부한 것이다. 그들 모두 “법률상 증인 선서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씨불였지만, 결국 그 말은 “진실을 이야기하면 나는 엿 된다” 이런 고백 아닌가?
내가 이 장면을 유심히 관찰한 이유는 하나였다. 나는 그들이 그냥 평범한(?) 정치인이었다면 이 문제를 칼럼으로 다루지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청문회 때 조윤선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증인선서를 거부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나는 매우 짜증이 났지만 그의 행태를 칼럼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정치인의 말이라는 것은 원래 과장과 축소, 진실과 거짓이 섞여있기 마련이고 그 행간을 읽는 것이 정치의 또 다른 묘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청문회 대상자들은 절대 그래서는 안 되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이들 중 둘은 군인 장성 출신이고 이들 모두 국방에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는 최고 지휘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명령은 더더욱 간략하고 분명해야 한다.
생각해보라. 군인의 명령에 과장과 축소, 진실과 거짓이 섞여있으면 부하들이 그걸 어떻게 해석하나? 게다가 그 명령은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수천 만 민중의 목숨을 좌우하는 중대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자들이 국방의 책임자였다는 것에 새삼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 동안 전쟁이 안 난 게 천운 아닌가?
왜 이런 거짓말이 위험한가?
내가 이들의 ‘대놓고 거짓말 쇼’를 정말 위험하게 보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국방 책임자가 저 정도로 거짓말을 선서할 배짱을 갖추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저걸 저렇게 태연히 한다는 것은 저런 습관이 매우 오랫동안 다져지고(!) 훈련됐다(!!)는 뜻이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 안에서 확대 재생산된다. 이건 내 추측이 아니라 뇌 과학의 연구 결과다. 2016년 영국 런던대학교(UCL) 심리학과 탈리 샤롯 교수팀이 자원자 80명을 대상으로 기능성 자기공명 영상 촬영장치(fMRI)를 통해 거짓말과 뇌의 상관관계를 밝힌 일이 있었다.
원래 사람의 뇌에는 부정직한 행동을 했을 때 이를 꺼림칙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일종의 브레이크가 존재한다. 이 브레이크의 역할을 하는 것이 편도체다. 편도체 활동이 늘어나면 인간은 정서적으로 뭔가 찔리고 찝찝해진다.
실제 실험 대상자들의 편도체 활동은 작은 거짓말이나 사소한 부정직한 행동에도 급증했다. 이러면 찔리는 감정이 생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편도체 활동이 불편해서라도 가급적 거짓말을 피하려 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편도체가 실제 자동차 브레이크처럼 사용할수록 닳는다는 점이다. 찔리는 감정을 이겨내고(응? 왜?) 줄기차게 거짓말을 반복하면 편도체의 활동이 줄어든다. 이러면 당연히 거짓말로 인한 찝찝한 감정도 감소한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관련 입법청문회에서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2024.06.21. ⓒ뉴시스
샤롯 교수는 이를 ‘거짓말의 급경사를 미끄럼 타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미끄럼을 타면 중력에 의해 가속도가 붙는다. 편도체라는 브레이크가 고장이 난 뇌는 더 큰 거짓말, 더 중요한 부정직한 행동을 아무 죄책감 없이 저지른다는 이야기다.
이번 청문회에서 증인선서를 거부한 3인의 표정을 보라. 죄책감이란 1도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이들이 어찌나 당당하던지 하마터면 “그 동안 나라 지키느라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도 할 뻔 했다.
국민 앞에서 국방 책임자가 대놓고 이 정도로 거짓말을 예고하려면 편도체 기능은 이미 마비가 됐다고 봐야 한다. 그 동안 국방을 책임지며 얼마나 꾸준하게 거짓을 말했기에 마비가 됐단 말인가? 전쟁이 났다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이었다는 이야기다.
전염되는 거짓말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내가 이 칼럼에서 몇 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행동경제학의 관점에서 볼 때 거짓말은 전염된다. 듀크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인 댄 애리얼리(Dan Ariely)가 반복된 실험 끝에 밝혀낸 사실이다.
횡단보도에서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을 보라. 사람들이 다 신호를 지킬 때에는 나도 자연스럽게 신호를 지킨다. 하지만 사람들이 우르르 무단횡단을 할 때, 나도 모르게 이 무단횡단에 가담을 한다.
즉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 주변을 보면 반드시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이 모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게 자기보다 권위가 있는 상관인 경우 거짓말의 전염성은 더 강하다. ‘높은 분도 하는데 내가 거짓말 좀 하는 게 뭐 문제인가?’라는 안이한 생각이 편도체의 활동을 막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권이 어떤 정권인가? 온 국민이 바이든이라고 들은 음성을 “날리면”이라고 우기는 자들 아닌가? 대통령이 이런 거짓말을 주도하니 국방부장관, 국방부차관, 해병대1사단장이 청문회에서 “거짓말 할 거여요”라고 선언을 한다. 편도체 고장이 전염된 건데, 몸이 아프려면 간이나 심장, 혹은 폐에 준하는 장기가 아플 일이지 하필이면 뇌가 고장이 나냐?
보수가 집권하면 국방은 나아질 거라고 떠들던 이들, 지금부터 머리 처박고 반성하기 바란다. 지금 저들이 청문회에서 저 짓을 하고 나면, 그 후임도, 그 후임의 후임도 저 짓을 할 거다.
저런 자들이 국방을 책임졌고, 저자들을 임명한 대통령이 아직도 대통령이라는 사실에 소름 끼치지 않는가? 더 무서운 사실이 있다. 이런 한여름 밤의 호러물이 앞으로 3년이나 남았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