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당 대표를 하겠다고 나섰다. 그는 “지난 두 달간 복기와 성찰의 시간을 보내면서 (국민 눈높이에 맞추라는) 준엄한 요구를 생각했다”고 말한다. 출마선언문에서 한 후보는 자신의 출마가 ‘죽기 딱 좋은’ 위험한 선택이지만, ‘고심 끝의 결단’이고 ‘나라를 위한 헌신’이라고 강조했다.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운다는 ‘재건’이라는 말을 4번이나 쓰며, 현재 국민의힘과 보수정치의 처지를 비장하게 묘사하기도 했다.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 윤석열 대통령 집권 이후 황태자나 2인자로 불려 왔던 한 후보지만 이번에는 “당정관계를 수평적으로 재정립하고 실용적인 방향으로 쇄신하겠다”는 것이다. “당이 정부의 정책 방향 혹은 정무적인 결정에 대해 합리적인 비판이나 수정 제안을 해야 할 때, 그럴 엄두조차 못 내는 상황들이 반복되었”다고 언급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이나 정이 민심과 다른 길을 가면, 한쪽에서 견고하고 단호하게 민심의 길로 견인하겠다”고도 말했다.
공멸의 위기를 겪고 있는 보수정치를 재건하는 것이 윤 대통령을 지키고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는 길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총선 때 ‘여러분이 나라를 살려주십시오’라는 자신의 호소에 부산시민을 비롯한 국민들이 화답하여 100석 개헌저지선을 지켰다는 표현도 했다. 개헌저지선은 탄핵저지선과 같은 말이다. 그러니까 대통령과 당이 수평적인 관계로 거듭나야 하고 그것이 윤 대통령 본인을 살리는 길이라는 점을 인정받겠다는 뜻이다.
한 후보의 출마선언을 보면 친윤과 반윤 모두의 지지를 받기 위해 애쓴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애초에 서로 반대방향인 두 개의 길을 동시에 가겠다고 한 것은 성립될 수 없다. 이를테면 지금 국민의힘에서 친윤과 반윤을 가르는 기준은 김건희 여사의 각종 비위행위에 대한 태도와 채상병 수사외압 사건을 어떻게 다루는가이다. 그런데 한 후보는 두 사건 모두에서 특검을 반대했다. 채상병 사건에 대해서는 국민의힘이 주도한 새로운 특검법안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이건 야당안에 대한 반대의 명분에 불과하다.
대통령 임기 2년 동안 여당 대표 2명이 쫓겨나고 9번이나 최고책임자가 바뀌었다. 두 명의 당 대표가 임기를 못채우고 쫓겨난 이유는 대통령의 말을 듣지 않아서다. 결국 대통령과 관계설정을 어떻게 하느냐가 여당 대표의 운명을 갈라왔고 그것이 그대로 당의 위기 또는 보수정치의 위기로 인식되었다. 한 후보가 대표가 되면 대통령 말을 듣지 않아도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한 후보가 이런 사실을 모를리 없을 것이다. 그러니 국민들이 보기에 반윤인 척 하면서 당원들이 보기에 친윤인 척 하는 길을 선택했다. 언뜻 영리해 보이지만 그런 길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