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27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발생 쿠팡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전국택배노동조합
쿠팡의 새벽 로켓배송을 하던 택배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했다. 숨진 택배노동자는 주 6일, 주간 평균 77시간 24분, 하루 3회전 심야배송 등 장시간·고강도 노동을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쿠팡은 숨진 택배노동자에게 배송 시간을 채근하면서, 추가 근무까지 요구했다.
이에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들은 쿠팡을 향해 유족에 대한 사과와 '택배기사 과로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 정부를 향해서도 재발방지를 위해 적극 나설 것을 요구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27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남들은 심야에 1번 배송하기도 어려운 것을 하루 3번을 해왔던 택배노동자는 결국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쓰러지고 말았다"면서 "단지 장시간의 노동시간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크나큰 업무강도, 정신적 압박이 결국 고인을 삼켜버리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쿠팡CLS(쿠팡로지틱스서비스) 남양주2캠프에서 새벽 로켓배송을 하던 택배노동자 정 모 씨(41)가 지난 5월 28일 자택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지만 사망했다. 병원에서 밝힌 사망원인은 '심실세동'과 '심근경색의증' 등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과로사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숨진 정 씨는 평소 오후 8시 30분에 남양주2캠프에 출근해 최대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주 6일을 근무했다고 대책위는 설명했다. 주 평균 노동시간은 63시간으로, 산업재해 판정기준에 따라 야간노동시간(오후 10시~오전 6시) 30% 할증을 적용하면, 주 평균 노동시간은 77시간 24분으로 늘어난다. 산재 인정 기준인 주 60시간을 한참 벗어난 장시간 노동이다.
정 씨가 겪은 노동강도 또한 높았다. 평소 하루 배송 물품량은 250개였으며, 숨지기 50일 전 배송구역이 바뀌면서 물량이 340여개로 급증했다. 또한 정 씨는 물품을 한번에 배송한 것이 아니라 하루에 남양주 캠프와 배송지인 중랑구를 무려 3번이나 오가는 등 '3회전' 배송을 해 왔다고 대책위는 밝혔다. 캠프와 배송지까지의 편도 거리만 약 20km로, 출퇴근 거리를 제외하고 하루 100km를 오간 것이다.
대책위는 "고인은 저녁 8시30분, 다음날 새벽 1시 30분, 새벽 3시 40분 정도에 캠프에 입차해 물품을 싣고 배송에 나섰습니다. 일반적으로 택배노동자들과 달리 3번이나 오가며 배송을 한 것"이라며 "그것도 몸에 무리가 훨씬 심한 시간대인 심야시간에 그렇게 일을 했다"고 설명했다.
새벽 3회전 배송하는데...쿠팡CLS "달려 달라" 추가노동 재촉하기도
대책위는 원청인 쿠팡CLS가 직접 정 씨에게 추가 근무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정 씨가 맡은 물량을 다 배송하고도 다른 기사들의 업무를 도우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대책위가 공개한 정 씨와 쿠팡CLS 관리자의 메신저 대화 내용을 보면 쿠팡CLS 관리자는 정 씨에게 '언제쯤 마무리되겠느냐. 동료기사가 (배송물량이) 많이 남았다', '빨리 마무리하고 (동료 배송기사에게) 넘어가달라' 등 요청을 직접했다. 대화가 오간 시간은 오전 5시30분에서 오전 6시 10분 사이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공개한 정 씨의 메신저 대화 내용 ⓒ전국택배노동조합
특히 정 씨가 추가 노동 요구에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쿠팡CLS는 '빨리 가달라'며 재촉한 상황도 있었다. 지난 2월 8일 오전 5시 22분, 쿠팡CLS가 정 씨에게 동료기사에 대한 지원을 요구하자, 고인은 "최대한 하고 있어요 아파트라 빨리가 안 되네요"라고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쿠팡CLS 측은 '달려 달라'고 압박했다. 이에 고인은 "개처럼 뛰고 있긴 하다"고 어려운 상황을 한 번 더 전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공개한 정 씨와 쿠팡CLS 관리자의 메신저 대화 내용 ⓒ전국택배노동조합
대책위는 정 씨가 장시간·고강도 노동에 시달린 배경에 오전 7시까지 무조건 배송을 마쳐야 하는 이유는 쿠팡의 불공정한 계약서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책위가 공개한 쿠팡CLS와 택배영업점이 맺은 계약서를 보면 새벽 배송을 당일 오전 7시까지 완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 이 같은 조건을 지키지 못할 경우, 계약해지나 위탁물량을 축소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오전 7시까지 배송을 완료하지 못하면 계약해지 혹은 배송구역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른바 '클렌징'이다.
대책위는 "쿠팡은 로켓배송을 위해 영업점과 택배노동자를 상대로 무리한 계약조건을 내세우고 있고, 이는 고스란히 택배노동자들의 과로노동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책위는 "쿠팡은 일상적으로 영업점과 택배노동자들을 상대로 일자리(배송구역)를 빼앗는 수준의 과도한 페널티를 부과해 사실상의 '상시 해고제도'를 운용하고 있다"면서 "이는 쿠팡CLS가 영업점과의 위수탁계약에서 위탁업무 범위를 특정하지 않고 언제든지 위탁업무의 변경 및 회수가 가능하도록 위탁계약을 체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과 국토부 표준계약서에 위반되는 사항"이라며 "국토부의 쿠팡CLS에 대한 실효적인 관리감독이 즉시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또한 정 씨는 택배노동자와 택배사들이 맺은 사회적 합의에서 금지한 분류작업도 해왔다고 대책위는 지적했다. 택배기사 과로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에 따르면 택배노동자가 분류작업을 하지 않도록 하거나, 분류작업을 할 경우 별도의 대가를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합의에 참여하지 않는 쿠팡CLS는 여러 기사의 물품과 섞어 캠프에 전달하고 있어, 이를 택배노동자들이 모두 분류(소분)하고 있다는 것이 대책위의 설명이다.
대책위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일하시다가 생을 달리하신 고인의 사망에 대해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면서 "쿠팡이 만든 로켓배송 시스템이 만든 죽음"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정 씨의 아버지는 "부당한 계약서, 불공정한 근로시스템, 인간을 인간답게 여기지 않는 기업의 횡포가 제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면서 "이러한 불법을 막지 못하고 용인하는 사회와 국가의 시스템도 마찬가지"라고 울분을 토했다.
대책위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쿠팡이 만든 로켓배송이 고인의 죽음의 원인"이라며 "쿠팡은 유족에게 공식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로켓배송 시스템을 즉시 개선해야 한다. 고객에게 빨리 배송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이라며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지금 즉시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 사회적 합의'에 동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를 향해서도 "쿠팡은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과 표준계약서를 어기고, 이를 활용해 상시적으로 구역을 회수하는 패널티시스템을 만들었다"면서 "택배사업자인 쿠팡CLS의 꼼수와 불법성에 대해 국토부가 즉각 결단해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