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페이퍼에서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난 것은 지난달 16일이었다. 생산시설을 점검하던 열아홉 살의 한 청년노동자가 갑자기 쓰러져 숨진 것이다. 국민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 것은 고인이 남긴 노트 때문이었다. 그가 정성스러운 글씨로 채운 것은 갓 사회에 나온 초년생으로서 행복한 인생을 위해 필요하다고 여긴 목표들과 빼곡히 써 내려간 계획들이었다.
그렇게 한창 꽃 필 나이의 청년노동자가 속절없이 생을 마감했다. 평소 지병이 없었던 만큼 죽음의 배경에 어떤 근로 환경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보는 게 당연했다. 유족과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황화수소 노출을 의심했다.
그러나 회사는 조사에 협력적이지 않았고 유족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일을 크게 키웠다는 둥 불만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많이 봐온 레퍼토리다. 산재 사망을 의심해 볼 정황이 나왔는데도 사고 현장을 은폐하고 책임을 회피하거나 유족을 회유하려는 모양새가 그렇다.
2022년에 SPC그룹 계열사에서 일어난 제빵 노동자 사망 사건의 기억이 겹친다. 공장은 사고 다음 날 바로 기계를 가동했다. 국과수 감식이 끝나지 않았고 선혈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속개된 일이다. 책임을 통감하기는커녕 상황을 뭉개려는 시도였다. 더 거슬러 올라가 역시 국민의 아픔을 자아낸 제주 생수공장 현장실습생 이민호 군 사망 사건 당시에도 공장은 이 군이 다니던 학교 측에 사고 소식을 알리지도 않았다.
중대재해처벌법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산업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죽음에는 법적 책임을 넘어 크든 작든 노동환경이 영향을 미쳤을 게 분명하다. 문제는 이런 일을 대하는 기업 경영진의 나쁜 태도다. 생명 존중의 노동문화를 위해 노력하고 피해자의 존엄을 우선하며 남겨진 가족에 대해 예우를 다하는 것은 기업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임이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이 확산되고 실천되지 않는 한 잇따라 일어나는 청년노동자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다.
다행스럽게 어제 이 기업의 대표이사가 회사의 책임을 묻기 위한 유가족의 단식 현장을 찾아와 사과했다고 한다. 늦게나마 장례를 치르게 되었지만 만시지탄이다. 비극적 사고와 전후 과정에서 반복되는 악습에 대한 통렬한 반성 없이는 문명사회로 나아가려는 어떠한 발걸음도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