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애화 칼럼] 10대들이 생각하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60~70년대 식모

“식모?”

인터뷰를 하던 고등학생들이 이 단어에 서로 눈을 보며, 그 뜻을 추측해보는 듯했다. 이들은 내가 지도하는 구술생애사 참가 학생들이다. 그 날은 70대 후반의 마을 할머니의 생애를 듣는 인터뷰 시간이었다. 어른의 이야기는 학생들에게는 종종 낯선 세계와 맞닥뜨리게 한다. 그 세계를 전하는 어휘도 낯설다. 어른이 구술한 맥락으로 대담자 학생들은 ‘식모’가 그들의 언어, 가정부, 가사도우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익숙한 단어이다. 익숙하기에 자동적으로 그 단어가 전하는 내용이 머리에 무겁게 그려졌고, 구술자의 10대가 어둡게 다가왔다.

할머니는 전형적인 60년대 식모의 생을 사셨다. 집에서는 ‘계집애’라 학교도 못 가고, ‘입을 하나라도 덜기 위해서’ 10대 초부터 아기 돌보는 일을 했다. 십리 길을 걸어서, 가족이 있는 집과 아기 집을 오고가며 아기를 돌보았다. 받는 돈은 없었지만,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생각했다. 나이가 조금 더 드니 가족을 떠나서 식모로 일하게 되었다. 이촌향도의 바람이 불던 60년대에 소녀는 큰 도시가 아닌, 고향에서 떨어진 작은 도시에서 식모 생활을 했다. 거기는 폭언과 폭력이 난무했다. 애가 운다고, 밥을 태웠다고 맞았다. 끼니가 해결되니 다행이었지만, 매만 맞지 않았으면 했다. 아버지가 월급을 선불로 가지고 가시어, 일을 그만둘 수도 없었다. 그 월급은 소녀의 손도 거치지 않고 가족의 생활비로 쓰였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와 학생들에게 물었다. 가사나 육아를 돌보는 아줌마, 이모, 누나가 있었던 경험이 있었는가와 함께 도움을 받는 가족 입장에서의 생각을 듣고 싶어서였다. 부유한 집에서나 가능한 것이 아니냐며, 자신들의 집은 형편이 그렇지 않았다 한다. 그렇다, 80년대 이후에 한국에서 재가 가사노동자를 찾기는 힘들어졌다. 학생들의 부모 세대가 바로 80년대생이니, 부모들도 그런 경험은 적었으리라. 만약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물었다. “일을 도와주는 것은 좋지만, 같이 사는 것은 귀찮을 것 같다”고 답이 돌아왔다. 그들도 자신들이 도련님, 아가씨 행세를 할지 모른다고 경계하고 있었다.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 관련 공청회가 열리는 31일 서울 중구 로얄호텔 앞에서 열린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 관련 기습 공청회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이주여성 노동자에 대한 극한 착취를 합법화하며 가사노예제라며 규탄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23.07.31 ⓒ민중의소리

구조적 변화가 없는 도우미 정책

식모, 그 단어가 사라졌다. 집안일을 관리하는 여성 노동자들에 대해서 다양한 호칭들이 생겨났다. 가정부, 가사도우미, 파출부, 가정관리사 등으로. 단순히 호칭만이 바뀐 것은 아닐 것이다. 노동 환경도 달라지고, 사회적 의식도 달라졌다. 그런데 여기에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이다.

“서른아홉의 늦은 나이에 쌍둥이를 출산해 회사 업무와 육아를 병행하다 보니 편의를 도모하고자 가사도우미를 고용하게 됐다”, “한국인 도우미는 주말에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외국인을 찾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2018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아의 법정 발언이다. 그의 가족과 함께 법정에 선 이유는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 이전에도 적지 않은 소위 재벌들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조현아 가족 집에서 일하던 많은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오래 일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잦은 욕설과 폭언 때문에 시달리다 떠났다. 60년대 식모 소녀의 모습이 교차한다. 집과는 멀리 떨어져서 도움을 청할 수도 없고, 주인과 한집에서 사니 24시간 묶여있는 신세 같았을 것이다. 땅콩회항사건을 일으킨 오너 가문이니, 사적 공간에서는 어땠을지 추측된다.

어쨌든 재벌의 가족이 더 이상 이런 일로 법정에 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저출생 대책 중의 하나로, 일과 육아의 양립을 위한 지원책의 하나로 정부가 적극 장려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부가 싼 인건비로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도록 해줄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월 민생토론회에서 “현재 내국인 가사도우미와 간병인들의 임금 수준은 부부들이 감당하기 부담이 큰 것이 현실”이라며, “국내 거주 중인 16만3000명의 외국인 유학생들과 3만9000명의 결혼이민자 가족분들이 가사와 육아 분야에 취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한 바 있다. “가정 내 고용으로 최저임금 제한도 받지 않고 수요 공급에 따라 유연한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6월 24일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저임금은 적용되는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출생이 사회 의제의 으뜸이 되고 있다. 저출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육아도우미 도입이 적극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에 정부와 육아를 담당하는 부모들은 동의하는 듯하다. 그런데 외국인 육아도우미 도입과 관련해서는 그들의 노동환경, 안전, 인권보다는 최저임금을 적용하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근로기준법상 적용 제외 대상이었던 가사노동자들은 ‘가사근로자법’으로 노동자로서 보호받게 되었다. 이러한 법 제정에는 오랜 기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다시 후퇴하는 예외를 만들려 한다. 정부가 앞장서서 외국인 가사노동자에 대해서 공공연하게 최저임금 적용 예외를 운운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싼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으로, 우리의 저출생 문제는 극복될 수 있을까?

OECD 보고서1)는 한국 정부의 출생 지원 정책에 우려를 표했다. 유아 교육·양육비용 등 전반적인 가족 지원 규모를 늘렸음에도 한국은 합계출산율의 하락 추세를 막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합계출산율이 OECD 국가의 평균(2022년 기준, 1.5)에 한참 못 미칠 뿐만 아니라, 최하위(2023년 기준, 0.72)를 기록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육아기 단축근무 기간을 늘리고, 아빠의 출산휴가를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러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여성과 남성들은 얼마나 될까? 한국처럼 다중적 노동구조 하에서 육아휴직을 눈치 보지 않고 누릴 수 있는 안정된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인구는 극히 적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이미 OECD 국가에서 소득별로 출생률이 달리 나타나고 있다. 가난한 커플이 소득이 높은 커플에 비해서 출생률이 낮다. 따라서 고용시장의 복잡한 구조를 해소하고, 젠더 평등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서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구조의 문제를 그대로 두고,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유입하여 불평등한 구조를 더욱 악화시키려 하다.

환경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60년대 10대 식모가 경험한 반인권 상황을 시골의 작은 학교 고등학생들은 들었다. 이들이 이런 상황에 놓였던 것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탓이요, 개인의 능력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해 왔다. 사회에 대한 피해자로 보지 않았다. 인터뷰 후, 학생들과 60~70년대 식모들의 생활을 담은 신문 기사를 같이 읽었다. 그들이 인터뷰한 할머니의 이야기가 한 개인사를 넘어, 그 당시 많은 10대 소녀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가난한 나라에서 온 여성들이 맞닥뜨릴 공적·사적 환경이 60~70년대와 비교하여 얼마나 달라졌는지, 어떤 수준이어야 하는지 생각해보았다.

가사, 육아 돌봄은 사적 공간에서 일어난다. 이 공간에서 일어나는 인권, 문화에 대해서 우리 사회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 차별로 시작한 외국인 돌봄노동자 도입은 돌봄의 현장에 대한 안정을 보장할 수 있을까. 한국보다 앞서 비슷한 제도를 도입한 홍콩과 싱가포르 등의 사례를 살펴보면, 이 우려가 현실이 될 것이라는 불안감은 증폭된다. 돌봄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긴밀한 접촉 속에서 일어난다. 가장 인간적인 예우가 필요한 부문이다. 그러나 비용만을 이야기하는 사회가 돌봄을 안전과 인권의 기반 위에서 실현할 수 있을까. 이러한 구조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떤 의식과 문화를 가질 것인가.

필자주

1)Society at a Glance 2024, OE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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