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러시아를 상대로 "결국 자신에게 남북한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하고 필요한 존재인지 잘 판단하길 바란다"는 말을 던졌다.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앞서 한 로이터 통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다. 윤 대통령은 최근 북·러 사이의 밀착을 겨냥해 "한반도와 유럽의 평화와 안보에 대한 결정적 위협이자 심각한 도전"이라면서 향후의 한러 관계는 "오롯이 러시아의 태도에 달려있다"고도 말했다.
윤 대통령의 말은 사실상 적대국을 상대로 한 메시지에 가깝다. 우리의 구체적인 우크라이나 지원 내용은 러시아와 북한 간의 무기 거래, 군사기술 이전, 전략물자 지원 등 협력 수준과 내용을 지켜보며 판단하겠다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북·러의 협력이 심화하면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 지원을 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 마침 한국의 지원을 강하게 요청하고 있는 나토 정상회의를 앞둔 말이니 워싱턴에서 새로운 정책이 발표될 수도 있어 보인다.
우선 우리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깊숙이 발을 딛는 건 그 자체로 현명한 일이 아니다. 현행법상 우리는 교전국에 무기를 판매할 수 없고, 전략물자의 경우에도 '평화적 목적'에 한해 수출할 수 있다. 이를 우회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무기 지원으로 전쟁의 양상을 바꾸기도 어렵다. 도리어 우리의 행동을 빌미로 러시아가 동아시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한층 더 강화할 가능성도 대비해야 한다.
대통령이 나서서 "남북한 중 택일하라"는 메시지를 내놓는 것도 어색하다. 이를테면 중국이 우리를 상대로 '중국과 대만 중에 택일하라'고 한다면 어떨까. 우리로서는 매우 불쾌할 것이다. 이런 말이 상황을 우리 쪽에 유리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한심한 일이다. 당장 러시아의 크렘린궁 대변인은 "우리는 이 접근 방식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이번 나토 회의는 창설 75주년을 맞아 '동맹 결속'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열린다. 그러나 안팎의 사정은 녹록지 않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리더십은 흔들리고 있고, 올해 말 대선 결과에 따라 빅뱅에 직면할 수 있다.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정권교체 혹은 그에 준하는 변화 과정에 있고, 유럽 대다수의 나라에서는 극우 정치세력이 부상했다. 나토 차원의 일사불란한 행동은 이미 어려워진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전부 아니면 전무', '양자택일'과 같은 입장을 내비치는 건 국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윤 대통령에게 신중한 태도를 주문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