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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마술 같은 음악

노마 윈스턴Norma Winstone과 킷 다운스Kit Downes의 [Outpost of Dreams]

킷 다운스와 노마 윈스턴. ⓒElmar Petzold

1941년에 태어난 재즈 보컬리스트 노마 윈스턴과 1986년에 태어난 피아니스트 킷 다운스가 새 음반을 발표했다. 노마 윈스턴이 6년 만에 ECM에서 내놓은 새 음반이다. 한국에서 여든 세 살에 새 음반을 발표하는 보컬리스트가 있었던가. 동갑내기 음악인 이미자가 계속 활동하고 있지만, 새 음반을 내놓은 지는 한참 전이다. 한국과 영국의 사회가 다르고, 음악 생태계 또한 다르니 동일한 방식의 활동을 기대하는 건 무리이겠지만, 그 나이에도 새 음반을 발표하는 노마 윈스턴을 보면 마음에 느낌표가 많아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단지 음반을 발표했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 그 음반이 노마 윈스턴답고, 여전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사실 노년의 예술가들은 절정기를 지나버린 경우가 많다. 예전만큼의 기백을 느낄 수 없고 느슨해진 작품을 내놓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놓고는 대단한 인생의 통찰을 얻은 것처럼 포장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았다. 그러다보니 아쉬운 마음에 옛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경우가 흔하다. 창작은 기세와 에너지, 집중력과 고민을 쏟지 않으면 금세 드러난다. 그렇다고 노년의 예술가가 항상 뜨겁고 새롭기를 바라는 건 무리이고 욕심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고, 사람의 능력 또한 노력과 열망만으로 채워지지는 못한다. 노년의 예술가가 흠잡을 데 없는 작품을 내놓으면 더욱 놀라운 이유다. 이만한 작품을 내놓기 위해 얼마나 애썼을까. 앞으로도 이런 작품을 만나고 싶은데 가능할까. 어쩌면 이번 음반이 노마 윈스턴의 유작이 될지 모른다. 노마 윈스턴은 한국에 두 번 와서 공연했고, 그 중 한 번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 공연은 인생 공연 가운데 하나가 되었는데, 영국에 가지 않는 이상 한국에서 노마 윈스턴의 공연을 보는 일 역시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 음반은 더욱 소중하다.

-노마 윈스턴Norma Winstone과 킷 다운스Kit Downes의 '(Outpost of Dreams' ⓒECM Records

[꿈의 전초기지]라고 해석할 수 있는 새 음반에는 노마 윈스턴과 킷 다운스, 두 사람만 참여했다. 음반에 담은 10곡에는 오래된 노래 ‘Black Is The Color’와 ‘Rowing Home’이 있고, 칼라 블레이Carla Bley의 곡 ‘Jesus Maria’와 랄프 타우너Ralph Towner의 곡 ‘Beneath an Evening Sky’, 존 테일러John Taylor의 곡 ‘Fly the Wind’가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킷 다운스가 쓴 곡 ‘El’과 ‘In Search of Sleep’, 노마 윈스턴이 함께 쓴 곡 ‘Out of the Dancing Sea’, 두 사람이 협업한 곡 ‘The Steppe’ 등으로 구성한 음반이다. ‘Rowing Home’의 가사 또한 노마 윈스턴이 썼다. 두 음악인은 지난 해 말부터 함께 공연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함께 음반까지 완성했다.

노마 윈스턴의 음반을 들어보았거나 공연을 본 사람이라면 노마 윈스턴의 남다른 매력이 어디에서 오는지 안다. 노마 윈스턴은 고음을 내지르지 않고, 가창력을 뽐내지 않는다. 노마 윈스턴은 노래하면서 고요함을 빚어내고, 그 고요로 초대한다. 호흡과 호흡 사이가 노래가 되는 음악인은 결코 흔하지 않다. 아니 호흡과 호흡 사이가 영원이 된다고 말해도 좋은 노래들이다. 듣는 동안 지금을 잊게 하는 노래. 무수한 시공간으로 확장되는 노래를 펼쳐 보일 때 노마 윈스턴은 알토 보컬리스트가 아니라 마법사 같다. 노마 윈스턴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우리는 다른 세계와 조우한다.

Norma Winstone and Kit Downes - Black Is The Colour (from the new album 'Outpost Of Dreams')

이번 음반도 마찬가지다. 노마 윈스턴의 노래와 킷 다운스의 연주가 이어질 때 우리는 신비로운 여운에 젖어든다. 노랫말과 제목이 어떤 이야기를 담지하고 있든 두 음악인은 노랫말이 보여주는 이야기 이상의 세계, 이야기 너머의 세계로 나아간다. 침잠과 평화라는 음악의 효능만으로도 이 음반을 들을 가치는 충분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노마 윈스턴이 바람처럼 노래한다면, 킷 다운스는 햇살처럼 노래를 비춘다. 무채색에 가까운 목소리에 스미는 산뜻한 피아노 연주 덕분에 노래에는 빛이 감돌고, 색이 피어난다. 두 음악인 모두 섬세하지만, 섬세함의 방향이 조금 다르다. 노마 윈스턴이 달관한 이의 목소리라면, 킷 다운스의 연주는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다정함을 전해준다. 그 차이와 조화로움이 음반을 특별하게 한다. 오래 곁에 두고 들을 음반이다. 기후 위기와 전쟁의 시대에도 소멸하지 않는 아름다움의 일부.

Norma Winstone & Kit Downes - The Steppe (from the new album 'Outpost Of 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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