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노조법(노동관계 및 노동관계 조정법) 2·3조’ 개정을 위한 시간이 시작됐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노조법 개정안이 22대 국회 시작과 함께 더욱 강력해진 내용으로 논의에 속도를 내면서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른 상황이다. 정부·여당은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벼르고 있고, 노조법 개정안을 폄훼하는 경영계의 공세도 반복되고 있다. 이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10일 “중단 없는 노조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며 노조법 개정안 처리를 위한 투쟁에 앞장서겠다고 결의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노조법 2·3조 개정 투쟁 승리, 전국단위사업장 대표자 결의대회’를 열었다. 결의대회에서는 누구보다 노조법 2·3조 개정이 절실한 간접고용, 특고·플랫폼 노동자들이 무대에 올라, 복잡하고 다양한 노사관계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낡은 노조법의 한계를 지적했다.
간접고용 노동자인 공공운수노조 건보고객센터지부 김금영 비대위원장은 “무늬만 사장인 용역업체들은 임금 교섭하자고 요구하면, 원청에서 준 게 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원청과 직접 교섭할 수 없다”며 “업무에 필요한 불량 책상 하나 바꾸기 어렵고, 고장 난 헤드셋 하나 바꾸는 것도 수개월이 걸린다. 단순 노무 관리밖에 할 줄 모르는 하청 업체가 아닌 원청인 건보공단과 직접 소통이 필요한 이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수많은 하청·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원청이 좌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청업업체는 하청업체대로 ‘우리는 권한이 없다’며 노동자들의 교섭 요구에 제대로 응하지 않고, 원청업체는 원청업체대로 ‘우리와 직접 계약을 맺지 않았다’며 노동자들의 교섭 요구를 무시하기 일쑤다. 이러한 상황은 오히려 노동자들의 극단적인 투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2년 전 여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의 목숨을 건 투쟁이 단적인 예다. 이에 사용자 정의를 규정하는 노조법 2조를 현행보다 폭넓게 개정해, 원청에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노동계의 오래된 요구다.
나날이 늘어나는 특고노동자 역시 마찬가지다. 서비스연맹 김광창 사무처장은 원청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쿠팡CLS)의 직접적인 업무지시를 받으며 로켓배송을 하다 숨진 고 정슬기 씨 사례를 언급했다. 김 사무처장은 “고인은 업무 카톡방에서 원청 관리자에게 ‘개처럼 뛰고 있다’라는 문자처럼 일을 하다가 과로사로 돌아가셨다. 그런데 원청인 쿠팡 택배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합법”이라며 “택배노조가 하청 노동자를 대신해 원청인 쿠팡 택배에 대화와 교섭을 요구해도 쌩까면 그만이다. 현재의 노동법 체계가 그러하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처장은 “배달플랫폼노동조합이 배달의민족과 힘들게 투쟁해서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수수료 체제 일부를 개선해 봐야 배달의민족이 일방적으로 약관을 개정하면 말짱 꽝이다. 약관 변경에 동의하지 못하면 일을 못하기 때문”이라며 “대리운전노조가 작년 2월부터 거대 플랫폼 기업인 카카오모빌리티와 임금 교섭을 하고 있지만, 카카오모빌리티는 대리운전 노동자 임금은 교섭 대상이 아니라며 협상할 수 없다고 한다. 현재 노동법 체계는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에게 더욱 가혹하고 무용지물인 것”이라고 성토했다.
원청을 향한 절박한 투쟁 끝에 돌아온 답은 수억, 수백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소송’이었다. 노동조합이 파업 등 쟁의행위에 나서면 사측은 무리한 이유를 들어서라도 일단 막대한 금액을 청구하는 손배소에 나선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압박하려는 목적에서다. 그렇게 월급이 압류되고, 거주지가 압류되는 노동자들은 하나둘 노조를 떠나거나, 심할 경우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리게 된다. 사측의 무차별적인 손배·가압류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노조법 3조(손해배상 청구의 제한)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금속노조 엄상진 사무처장은 고 김주익, 배달호 열사와 쌍용자동차의 노동자와 그 가족 등 사측의 손배·가압류로 스스로 세상을 등진 이들을 떠올리며 “손배·가압류는 노동자의 삶을 파괴하고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민주노조를 말살하는 노동조합 말살 책동”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엄 사무처장은 “윤 대통령은 어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15번째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제는 노조법 2·3조 개정마저 거부하려 한다”며 “노조법 2·3조 개정에 손도 대지 못하도록 우리 노동자들이 먼저 거부권을 행사하자”고 말했다.
그간 노조법 개정 운동에 앞장서 온 금속노조는 이날도 총파업으로 동참했다. 총파업에는 한국지엠지부, 자동차 모듈 부품사, 한화오션 등의 사업장에서 총 6만여명이 참여해 생산라인을 멈춰세웠다. 엄 사무처장은 “노조법 2·3조 개정은 우리 동지들을 지켜내는 투쟁이자, 민주노조를 사수하는 투쟁”이라며 “금속노조가 한 발짝 더 앞에 서겠다”고 다짐했다.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윤석열 정권의 거부권 정치로 추운 겨울 노동자들의 단식과 농성으로 만들어진 노조법이 사라지고, 무더운 여름 이곳에서 투쟁을 이어가게 된 점 너무나 분노스럽다”며 “트랙터를 몰고 서울로 향하던 농민들의 외침은 구속으로 답하고,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절규는 외면하고, 방송장악에만 여념이 없는 윤석열 정권, 해병대원의 죽음의 실체를 밝히자는 요구마저 거부하는 윤석열 정권은 기필코 우리의 투쟁으로 끝장내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양 위원장은 “누구나 노동조합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자 보편타당한 상식”이라며 “그럼에도 이 나라의 기득권 세력은 노동조합 할 권리를 박탈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고, 그나마 조직된 노동조합의 교섭권조차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원청, 재벌, 대기업이 모든 이윤을 독식하면서도 조금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지금의 현실을 바로잡는 것이 바로 노조법 개정”이라고 강조했다.
양 위원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소상공인들을 모두 범죄자로 만들 것이라고 협박하던 자들이 이제는 노조법 개정이 나라와 경제를 망칠 것이라고 떠들어대고 있다”며 “노조법 개정으로 그들이 지키려는 기득권의 나라, 불평등의 경제를 부수어 버리자. 노동조합 할 권리를 무기로 윤석열 정권을 무너뜨리는 힘찬 투쟁을 만들어가자”고 외쳤다.
이날 결의대회에 참여한 민주노총 전국단위노조 대표자들은 ‘노조법 전면 재개정’을 결의했다. 이들은 “간접고용, 특수고용 노동자가 노동3권의 권리를 향유할 수 있도록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쟁취하고 불평등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초기업 교섭, 산별교섭 권리를 쟁취할 것”이라며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간접고용·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을 위해,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