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핵심 공범인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이른바 VIP를 통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 관련 통화 녹음 공개로 짙어지고 있는 가운데, 주요 당사자들이 해당 의혹의 핵심 본질과 동떨어진 해명을 연일 내놓고 있다.
공개된 통화 녹음에서 이 전 대표는 같은 해병대 출신 A변호사에게 “이 XX(임성근) 사표 낸다고 그래가지고 내가 못하게 했거든. 그래갖고 B(청와대 경호처 출신)가 이제 문자를 보낸 걸 나한테 포워딩을 했더라고. 그래서 내가 VIP한테 얘기할 테니까 사표 내지 마라(고 했다)”고 말했다. VIP를 통한 로비설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통상 ‘VIP’의 앞글자를 딴 V1은 대통령, V2는 대통령 부인을 일컫는다. 중요한 건 이 전 대표의 직접적인 인맥은 김건희 여사라는 점이다.
이 전 대표가 반박 차원에서 낸 입장은 당혹스러울 정도다. 자신이 언급한 VIP가 윤 대통령이나 김 여사가 아닌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중장)이었으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관련 자료를 제공한 공익신고자 A변호사가 자신을 모함했다는 취지다.
이 전 대표는 동아일보 등에 “내가 도이치 사건과 얽혀 있지만 않았어도 A씨가 이런 식으로 나를 모함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언급한 ‘VIP’는 경호처 출신 B씨가 언급한 말을 옮긴 것 뿐이라며, VIP는 김계환 사령관을 뜻하는 말이었다고 주장했다. B씨가 평소에도 김 사령관을 VIP로 언급했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이 전 대표의 주장은 통화 녹음 내용에 이어서 나오는 자신의 다른 말에 의해 곧바로 반박된다. 이 전 대표는 임 전 사단장 쪽에 사표를 만류했다고 하면서 “왜 그러냐면 이번에 아마 내년쯤에 발표할 거거든. 해병대 별 4개 만들 거거든”이라고 했다. 자신이 VIP 쪽에 해병대 최고 계급을 ‘4성 장군(대장)’으로 격상시키는 데 대한 이야기를 했고, 실제 그와 관련한 발표가 이뤄질 것이라는 말이다. 다른 군 단위와 협의도 필요하고 정부 차원의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군 계급 체계를 바꾸는 일을 중장인 해병대 사령관이 한다? 전혀 성립하지 않는 말이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해병대 사령관을 4성 장군으로 격상시키겠다는 공약을 낸 바 있다.
임성근 전 사단장의 해명도 사안의 본질과 동떨어져 있다.
임 전 사단장은 전날 낸 입장문에서 이종섭 전 장관의 결재 및 번복 시점(7월 30일, 31일)과 사의 표명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시점(8월 2일)을 강조하면서, 구명 로비의 목적을 ‘사단장직’을 보전하는 것에 국한해서 언급하고 있다. 자신이 사의 표명을 한 사실, 혹은 이 전 장관의 결재 번복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기 전에 이 전 대표와 B씨가 해당 사실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을 위한 구명 로비를 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임 전 사단장 구명 의혹의 핵심은 사법처리와 관련된 것이지, 사단장직 보전 여부가 아니다. 윤 대통령이 격노를 하면서 했다는 말도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더구나 채상병이 사망한 다음 날 곧바로 해병대 수사단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사실은 당일 언론에 보도가 됐고, 향후 발표될 수사 결과에서 현장 간부들은 물론 해병대 1사단 최고 지휘관인 임 전 사단장 책임 소재가 지적될 가능성이 있다는 건 이미 해병대 수사단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일반 대중들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따라서 “7월 31일 이 전 장관이 기존 결재를 번복한 시점까지 결재 내용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B씨든 이종호 씨든 임성근을 위해 누군가를 상대로 로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임 전 사단장의 말은 그렇게 설득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임 전 사단장은 녹취파일에 등장하는 인물들로만 국한해서 그들과 자신과의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다. 녹취 내용의 핵심은 ‘임성근’을 매개로 한 이 전 대표와 VIP 쪽(윤 대통령 혹은 김 여사) 커넥션 의혹이지, 이 전 대표가 임 전 사단장과 아는 관계인지, B씨가 임 전 사단장으로부터 직접적인 구명 요청을 받았는지 하는 내용이 아니다. 그래서 임 전 사단장이 자신은 이종호를 알지 못하고, B씨와도 관련 내용으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의혹을 불식시키긴 어렵다.
임 전 사단장은 다음 날에도 추가 입장을 냈는데, 여기에도 중요한 내용은 빠져 있다. 그는 “청와대 경호처 출신 B씨는 2023년 7월 19일부터 2023년 8월 31일까지 임성근 사단장에게 전화하지 않은 사실을 오늘 저녁(2024년 7월 10일) 확인했다”고 밝혔다. 전날에는 “임성근은 2023. 7. 19.부터 2023. 8. 31.까지 청와대 경호처 출신인 A씨께 전화를 건 사실이 없음”이라고 했다. 자신이 B씨와 통화한 사실이 없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통화 녹음에서 언급된 건 임 전 사단장과 B씨 통화의 결과물이 아니다. 이 전 대표가 “이 XX(임성근) 사표 낸다고 그래가지고 내가 못하게 했거든. 그래갖고 B가 이제 문자를 보낸 걸 나한테 포워딩을 했더라고”라고 말을 한 데서 알 수 있다. B씨와 임 전 사단장 사이에 오간 메시지를 B씨로부터 전달받았다는 것이 이 전 대표의 말이다.
그렇다면 임 전 사단장이 제대로 해명하려면 B씨와 주고받은 문자 내역을 공개해서 당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시켜줘야 한다. 임 전 사단장은 B씨와의 메시지 수발신 여부에 대해서는 전날 “2023년 8월 2일 이후 미상일에 B씨로부터 ‘언론을 통해 저의 사의 표명을 들었다. 제 건강 잘 챙겨라’는 취지의 문자 메시지를 받은 듯한데 수령 일시와 정확한 내용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얼버무렸다. 통화 여부는 직접 확인해서 한 적이 없다고 단언한 것과 달리, 같은 방식으로 확인해볼 수 있는 문자 메시지 내용에 관해서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 것은 매우 의아한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