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리스크 부각에 여권과 보수진영의 당혹감이 커지고 있다. 김건희 여사가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주고받은 문자가 공개돼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흔들더니 총선 참패 직후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와의 장시간 통화 사실까지 공개됐다. 영부인을 폐지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약속과 달리 김 여사의 적극적인 정치개입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어느새 박근혜 정부를 몰락으로 이끈 ‘비선실세’라는 표현도 다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는 느닷없는 상황이라기보다 정부여당과 보수진영이 애써 덮어뒀던 예고된 사태에 가깝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전두환 옹호 발언'에 대해 늑장 사과한 뒤 윤석열 캠프가 운영 중인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사진. 사진에는 윤 전 총장 반려견인 토리에게 사과를 주는 모습이 담겨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인스타그램 '토리스타그램' 캡쳐
김 여사 관련 논란은 대선 과정에서도 끊이지 않았는데 ‘개사과’ 사건이 대표적이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중이던 2021년 10월 19일 윤 대통령은 부산에서 “전두환이 정치를 잘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이 사실이 알려져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어 21일 인스타그램에는 윤 대통령 반려견에게 녹색 사과를 주는 사진이 올라와 ‘개사과’ 논란을 빚었다. “직원 실수”라는 해명이었지만 심야에 자택에서 찍힌 것으로 추정돼 김 여사가 개입했다는 비판이 당내에도 많았다. 김 여사와 개인 업체인 코바나콘텐츠 직원들이 SNS를 비롯해 선거운동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풍문이 일부 확인된 사건이기도 하다.
대선 내내 김 여사 및 어머니 최은순씨를 둘러싼 의혹은 캠프에 부담이 됐다. 결국 윤 대통령은 2021년 12월 22일 공개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법에도 없다면서 “영부인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했고, 김 여사의 선거운동 참여도 “처음부터 계획에 없었다”고 말했다. 대통령 배우자를 담당하는 2부속실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영부인 제도를 폐지하고, 김 여사가 일반인으로 살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당시 김 여사가 그럴 의사가 없었다는 점은 이후 서울의소리 기자와의 통화로도 간접 확인된다.
김 여사의 학력·경력 위조는 윤 대통령의 공정 이미지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결국 2021년 12월 26일 김 여사는 국민의힘 당사에서 직접 대국민사과를 했다. 그는 “일과 학업을 하는 과정에서 잘못이 있었다. 잘 보이려 경력을 부풀리고 잘못 적은 것도 있었다”며 “남편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말했다. 학력·경력 위조 사안은 논문 표절·대필 등과 엮어 아직도 진행형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가 2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입장문 발표에 앞서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2021.12.26. ⓒ뉴시스
해가 바뀌어 2022년 1월 17일부터 MBC와 서울의소리는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와 김 여사의 통화 녹취를 보도했다. 김 여사는 이 기자와 2021년 7월부터 12월까지 총 50여 차례 7시간에 걸친 통화를 했다. 김 여사는 이 기자에게 “우리 캠프로 와라”, “정보업무를 맡아 달라”, “관리해야 할 유튜버를 분석해 달라” 등 선거에 적극 관여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 기자는 김 여사의 요청으로 캠프 인사를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150만원을 받기도 했다. 김 여사는 “우리가 (대통령) 되면 명수씨도 좋다”는 등 윤 대통령과 함께 대선을 뛰고 있다는 인식도 여러 차례 밝혔다. 아울러 보수를 비하하고, 진보진영을 두둔하는 취지의 발언도 다수 했다.
2022년 3월 9일 대선에서 0.73%p 차이로 윤 대통령이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이겼다. 김 여사는 대통령의 배우자지만 지위가 모호해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폐지된 것은 영부인이라는 용어와 영부인을 관리하는 제2부속실뿐이었다. 김 여사는 별도의 대통령실 인력과 함께 대외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정부 출범 전부터 대통령 집무실 및 관저 이전으로 어수선했다. 이 과정에서 관저 공사를 코바나콘텐츠 후원 업체가 맡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야당과 시민단체가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대통령실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공사 관련 정보는 보안을 이유로 밝히기 거부했다. 정부 안에서 김 여사의 위세를 느낄 수 있는 사건이었다.
김 여사의 힘이 확인된 것은 코바나콘텐츠 관련 인사들이 대통령실에 진출한 것이다. 취임 직후인 2022년 6월 13일 노무현 대통령 사저인 봉하마을을 방문한 김 여사를 수행한 인사 3명이 코바나콘텐츠 임직원으로 밝혀졌다. 초기 무속인으로 알려졌던 현직 교수는 코바나콘텐츠 전무를 겸임하고 있었다. 나머지 2명의 수행직원 중 1명은 개사과 논란 당시 ‘실수’ 당사자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들 2명은 대통령실 직원이 됐다.
2022년 7월 윤 대통령 부부의 나토 순방에는 민간인 신분인 이원모 당시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의 부인이 전용기에 동행해 문제가 불거졌다. 순방 과정에서 김 여사를 수행한 것으로 드러나 보안 등 규정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유명 병원장 딸인 이 비서관 부인은 김 여사와도 막역한 사이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에 ‘김건희 라인’이 구축됐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코바나콘텐츠 출신이 김 여사를 지근에서 수행하는 것은 물론 펀드매니저이자 애널리스트 출신인 김동조 국정메시지비서관은 과거 코바나컨텐츠 주최 행사에서 도슨트로 활동한 바 있다. YTN 출신 이기정 의전비서관도 김건희 라인으로 지목된다. 조국 의원은 보수언론에서 이들을 ‘중전육상시’(中殿六常侍)라 부른다고 최근 페이스북에 썼다.
2023년 12월 공개된 최재영 목사와의 대화 영상은 김 여사 리스크를 폭발시켰다. 명품백 등을 수수한 것은 청탁금지법 위반과 뇌물 수수 등 위법 논란을 불렀다. 영상과 최재영 목사와주고받은 카톡에서 김 여사는 국정에 거침없이 발언했다. 최 목사는 김 여사가 정부 인사 청탁을 받았다고 고발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김창준 전 미 연방하원의원의 사후 국립묘지 안장 등의 청탁에 김 여사 주변 인물이 적극 대응한 정황도 드러났다. 대통령실은 명품백이 대통령 기록물로 “창고에 보관중”이라면서도 공개나 확인을 거부했다. 국민권익위는 내부 반발을 꺾고 법 위반 사항이 없다는 결론을 냈다. 검찰은 명품백 사건을 아직도 본격 수사하지 않고 있다. 김건희 리스크 방어에 정부가 전방위로 동원된 셈이다.
김건희 여사가 명품백 받는 장면 ⓒ서울의소리 유튜브 화면 캡쳐
대선 전 “남편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라며 대국민 사과를 한 김 여사가 불과 몇 달 뒤 상반된 언행을 보인 것이 고스란히 영상으로 공개된 것도 충격과 반감을 불렀다.
김건희-한동훈 ‘문자 읽씹’ 논란은 국정개입 의혹의 정점을 찍는 사태로 커졌다. 김 여사 측에서 유출된 것으로 보이는 5건의 문자 메시지 전문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총선을 앞둔 지난 1월 권력 1, 2인자인 대통령과 여당 비대위원장의 갈등을 봉합하려 하고, 자신의 명품백 수수 사과가 총선에 끼칠 영향을 따져보는 김 여사의 모습이 확인됐다. 두 사람 간의 오간 내용이 이것만이 아니라는 것도 문제가 됐다. 당시 김 여사의 뜻은 ‘사과 불가’였다는 한동훈 전 위원장의 해명에 친윤 진영에서는 ‘거짓말’이라며 원문을 공개하라고 압박했다. 한 전 위원장은 10일 TV토론에서 “이걸 다 공개하면 정부가 위험해지고 대통령실이 위험해진다”고 응수했다. 언론에는 다수의 여권 인사와 고위 관료도 김 여사의 문자나 전화연락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즉 김 여사가 총선을 앞두고 정부여당 상층부에 적극적으로 의사 표출을 했다는 것이다.
문자 논란 ‘종결자’는 의외로 진중권 특임교수였다. 앞서 문제의 문자를 확인했다고 말한 진 특임교수는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4·10 총선 직후, 거의 2년 만에 김 여사한테서 전화가 왔다”며 “기록을 보니 57분 통화한 것으로 되어 있다”고 밝혔다. 진 특임교수에 따르면, 김 여사는 “그때 교수님께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할까 하다 말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때 전화를 했어야 했다. 후회하고 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바로 전화 드리겠다. 꼭 내가 전화하지 않아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시면 언제라도 전화로 알려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보수진영에서는 김경율 회계사 등과 좌파그룹으로 묶이는 진 특임교수지만, 김 여사는 개의치 않고 조언을 요청했다. 그는 이명수 기자나 최재영 목사 등에게도 비슷한 취지의 요청이나 제안을 한 바 있다. 왜 김 여사는 진보진영 인사에게까지 국정에 대한 조언을 청했을까.
문제는 김 여사가 일반인은커녕 영부인을 넘어 핵심 정치행위자로서의 태도를 보였다는 점이다. 대선 전이나 이후나 총선 전후나 김 여사는 국정에 대한 깊은 관심과 적극적인 발언을 멈춘 적이 없다. 이제 와서 보수언론 등에서 문자 논란을 ‘자해극’이라고 비판하거나 김 여사의 국정개입을 경고하는 것은 너무 늦은 셈이다.
특히 채상병 순직 수사 외압의 구명로비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공범과 김 여사의 이름이 나온 점은 비극의 전조가 될 수 있다. 이종호 블랙펄인베스트 전 대표 통화녹취를 들으면, 어떻게 그가 임 전 사단장 사직에 관여하고, 군과 경찰 고위직 인사에 대해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는지도 의아하다. 국회 법사위는 130만명이상 서명한 탄핵청원 안건에 대한 청문회를 19일과 26일 연다. 이종호 대표는 두 번 모두, 김 여사와 최은순씨는 26일에 각각 증인으로 채택됐다. 청문회든, 특검이든 국정조사든 진실 규명을 피하기는 너무 늦었다. 드러나는 진실에 따라 또 한 번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폭탄이 터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