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하지만, 전쟁조차도 적절한 명분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지금 치러지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유례없는 난장판이다. 전당대회는 각 당의 당원들이 당의 지도부를 선택하는 일이라 당 밖의 사람들은 관여하기 어렵다. 집권여당이든 제1야당이든 그 선택은 당에 소속감을 갖고 기여해 온 이들의 몫이다. 그러나 지금 치러지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두고 보기 어렵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의 첫째 이슈는 '배신자론'이다. 비교적 지지세가 있는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출마하고 대통령과 가까운 원희룡 전 장관이 나섰다. 세력 관계에서는 애매하지만 개인 지명도가 있는 나경원 의원이나 윤상현 의원이 당 대표 경선에 나선 것까지는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선거는 처음부터 크게 뒤틀렸다. 한 전 위원장의 대세가 형성되면서 추격하는 후보들은 '선거 패배 책임', '당정 관계 불협', '경험부족' 등을 들어 한 전 위원장을 공격했다.
이게 잘 먹히지 않자 등장한 것은 '배신자론'이었다. 한 전 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을 배신했다는 것이다. 신뢰를 어기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한 전 위원장이 오랫동안 윤 대통령과 함께 걸어왔다면 윤 대통령과 '함께 비를 맞는' 게 적절한 처신일 테다. 그러나 이를 두고 다른 경쟁자들이 한 전 위원장을 비난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더 심각한 사태로 번졌다는 데 있다. 지금 전당대회의 최대 쟁점은 윤 대통령도 아닌 '김건희'다. 김 여사와 어떤 관계인가를 두고 후보들은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김 여사와 오랫동안 가장 가까웠을 한 전 위원장은 김 여사의 문자를 '읽씹' 했고, 총선 전까지만 해도 김 여사의 의혹에 대해 아무것도 아닌양했던 원희룡 전 장관은 김 여사가 사과를 했어야 했는데 한 전 위원장이 이를 막았다고 열을 올리고 있다. 황당한 일이다.
1987년 이후 각 당은 다양한 명분과 세력을 앞세워 전당대회를 치러왔다. 그러나 지금처럼 어처구니없는 싸움을 벌인 적은 없었다. 후보들 사이에 오가는 말만 놓고 보면 여야 갈등보다 더 격렬하다. 실제에서도 적대성과 배타성은 전례가 없을 정도다. 이 모든 이유는 집권당의 가장 중요한 정치인인 윤 대통령이 장악력을 놓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진 바 능력이 부족하면 물러나야 한다. 자신이 속한 당의 분란도 해결할 수 없으면서 국정을 다룬다는 건 우스운 이야기다. 지금 국민의힘 전당대회의 풍경은 윤 대통령이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