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고국에서 걸려 온 청천벽력 같은 며느리의 전화에 아버지는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일단 서둘러 한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10여년 전 방글라데시에 정착한 아버지에게 그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느 때보다도 아득했다. 직항편이 없어 방글라데시 수도인 다카로 이동해, 태국 방콕을 경유하고, 한국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만 꼬박 이틀. 그 긴 시간,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들만 이어졌다.
정신없이 장례를 치른 뒤, 아들이 일했다던 대리점의 점주를 만났다. “집에서 사고가 났기 때문에 산재가 어렵습니다. 보험이 있어서 1억 5천만원이 나오는데, 그걸로 합의합시다.” 흔한 위로의 말조차 없이 합의금이 얼마느니, 종합소득세가 어떠니 따위의 말을 듣고 있던 아버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을 하던 직원이 죽었는데 산업재해가 아니라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던 아버지는 대화를 중단하고 아들의 죽음을 규명하기 위한 싸움에 나섰다. 싸움의 대상은 쿠팡이다.
고 정슬기(41) 씨는 지난 5월 28일 심야 ‘로켓배송’을 한 후 자택에서 쓰러져 끝내 숨졌다. 슬기 씨의 아버지 정금석(69) 씨는 아들이 숨진 이후 한국에 머물며 쿠팡의 책임을 묻고 있다.
“무릎이 닳아서 없어질 것 같다고, 개처럼 뛰고 있다고 할 정도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사람을 사람으로 본 게 아니잖아요. 쿠팡의 로켓배송이 혁신인 것처럼 포장하지만, 사실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담보로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 바람은, 쿠팡이 정말 노동자를 존중하는 회사가 되는 겁니다.”
무릎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개처럼 뛸 정도로 일했던 아들 “노동자의 피와 땀 담보로 로켓배송하는 쿠팡, 사람 존중 안 해”
전국택배노조와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인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슬기 씨는 저녁 8시 30분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주당 63시간 심야 노동을 하며 주 6일 로켓배송을 해왔다. 현재 과로사 산업재해 인정 기준은 4주간 주당 64시간인데, 업무상 질병 판정기준에 따른 야간 할증 30%를 감안하면 슬기 씨의 주당 노동시간은 77시간까지 늘어난다.
시간도 문제지만, 노동강도 또한 심각한 수준이었다. 슬기 씨는 20km 거리인 경기 남양주 캠프와 서울 중랑구 배송지를 하루 3회 왕복해야 했는데 그 거리만 해도 120km에 달했다. 쿠팡CLS 담당자와 주고받은 메시지를 보면, 슬기 씨는 본인의 일을 서둘러 끝내고도 다른 구역의 배송까지 지원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원청 직원의 독촉에 슬기 씨는 “얼른 할게요” “최대한 하고 있어요, 아파트라 빨리가 안 되네요, 하고 갈게요” “개처럼 뛰고 있긴 합니다”는 답장을 수차례 보내야 했다. 슬기 씨는 생전 아내에게 ‘무릎이 닳아 없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 금석 씨는 숨이 턱 막혔다. 아들을 잃고 나서야 알게 된 아들의 고된 하루들이 그려졌다. “부모가 한국에 없으니 힘들게 살겠구나라는 미안한 마음은 늘 있었죠. 그런데 어쩌다 간혹 통화를 하더라도 절대 힘들다는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늘 잘 지낸다고만 하지. 이번 어버이날에도 ‘건강 잘 챙겨라’라고 하니, ‘애들이 넷이에요’하고 했던 아이에요. 가장으로서 몸이 힘들어도 아이들을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컸던 거죠. 제가 늘 ‘철없는 녀석’이라고 했는데, 힘든 삶을 살면서도 부모한테 걱정 끼치지 않으려고 내색도 안 하고, 그런 거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처음 아들이 ‘쿠팡 로켓배송을 한다’고 얘기했을 땐, 이런 일이라고는 짐작도 못 했다. 그저 일반적인 택배일과 비슷하겠거니 생각했다. 대학 시절 작곡을 전공했던 아들은 네 남매를 키우기 위해 대형마트 온라인 배송을 하며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다. 한없이 여리고 선했던 슬기 씨는 동업자에게 배신을 당한 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지난해 3월 쿠팡 로켓배송 기사가 됐다. ‘그때 왜 더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했을까…’ 슬기 씨의 어머니는 오늘도 후회하고 있다.
금석 씨의 눈에 슬기 씨가 일한 환경은 “엉터리 시스템”이었다. 슬기 씨가 지난해 3월 대리점과 체결한 계약서는 정부가 고시한 표준계약서와는 차이가 있었다. 표준계약서에는 슬기 씨를 보호할 여러 규정들이 있었다. 슬기 씨가 생전 힘들어했던 분류작업에 대한 규정이 있었고, 배송구역이나 수수료 등의 조건을 택배기사에게 불리하게 일방적으로 변경하지 못하도록 했고, 계약 내용에 벗어난 업무를 수행하도록 강요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최대 작업시간은 하루 12시간, 주 60시간으로 규정했으며 엄격한 계약 해지 요건도 명시했다. 이는 지난 2021년 택배기사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 내용을 반영한 계약서다. 쿠팡은 그 때도, 지금도 사회적 합의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반면, 슬기 씨가 체결한 계약서엔 이러한 안전 조항 없이 “쿠팡CLS가 정해둔 관리 규약을 따르고 이에 반하거나 규약을 따르지 않을 경우, 계약을 해지 통보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쿠팡이 정해둔 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사실상 해고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쿠팡은 배송 마감 시간을 어길 경우, 구역회수(클렌징)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의 부속합의서를 대리점과 체결하는데 이는 배송 기사들의 배송 마감 압박으로 이어진다.
“택배기사 개개인은 사실 약하디약한 약자 아닙니까. 언제든 그만두라고 하면 그만둬야 하니까 불합리한 계약서라도 사인을 할 수밖에 없던 거죠. 지금은 쿠팡만 좋아하는 시스템이에요. 자신들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특고노동자를 이용하고, 다른 택배사들은 (과로사를 막기 위해) 사회적 합의라도 했지만, 쿠팡은 하지 않고 있잖아요.”
아들 잃은 아버지의 굳은 결심 “여기서 물러설 수 없어, 무엇이라도 하겠다”
처음부터 아들의 죽음이 과로사일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슬기 씨처럼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던 슬기 씨의 아내는 혹시라도 대리점주와 그 가족이 겪게 될 또 다른 어려운 상황을 우려해 대리점주의 요구대로 합의를 하려 했다고 한다. 슬기 씨 가족들은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대리점주를 찾아갔지만, 대리점주는 사과는커녕 산재 신청을 하지 말라는 회유만 반복할 뿐이었다.
지난달 28일 진보당 정혜경 의원이 공개한 녹취록에는 이러한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대리점 측은 슬기 씨가 숨지기 50일 전 배송 구역이 바뀌면서 하루 배송 물량이 250개에서 340개로 급증한 상황을 언급하며 “물량이 증가된 게 (이미) 6~7주 됐다”며 산재 승인이 어렵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또한, “산재를 하게 되면 각 언론에서 유가족을 엄청 괴롭힌다”, “저는 산재 안 한다. 산재를 하면 기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확실히 된다는 보장이 있으면 상관없는데 조금 안 좋다는 내용들을, 제가 노무사 세 군데에 물어봤다. 제가 쓰고 있는 노무사랑 다른 노무사랑 대외협력팀에 있는 사람까지 물어봤다”고 했다. 정 의원은 대리점 측이 언급한 ‘대외협력팀’이 쿠팡 본사 측의 대외협력팀을 일컫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위로의 말이라고는 하나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더라고요. 가족들이 갔으면, 빈말이라도 얼마나 힘드시냐고 할 법 한데 그런 말 한마디 없이 다짜고짜 산재가 어떻고…” 금석 씨는 어이가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슬기 씨의 과로사를 입증할 방법을 찾던 중 택배노조와 연이 닿았다. 쿠팡의 로켓배송 뒤 쓰러져 간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금석 씨는 “다시는 아들과 같은 불행한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안고 아들의 죽음을 세상에 알렸다. 한 가정이 파괴되고, 세상이 무너지는 아픔을 누구도 겪지 않길, 금석 씨는 바라고 또 바랐다.
그 과정에서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슬기 씨의 죽음이 알려지자 이웃들의 차가운 시선과 온라인상의 모진 비난이 이어졌다. 이제 고작 14살, 10살, 8살, 3살의 손주들은 돌아가면서 아빠 꿈을 꾸고 있다. 큰손주는 누구로부터 전해 들은 듯 “우리 아빠가 로켓배송의 원료가 됐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함께 한국에 온 아내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고, 슬기 씨의 아내는 한 달여 만에 체중이 6kg이나 빠졌다. 그래도 금석 씨는 어린 손주들을 위해 굳게 마음을 먹었다.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이라는 목표를 세웠고, 한번 시작했으니 죽기 살기로 해야 될 일이잖아요. 이제는 여기서 그냥 물러설 수가 없어요. 아들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제가 옛날하고 똑같이 살 수는 없으니까요. 이보다 더한 일도 하겠다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금석 씨에게 ‘해야 할 일’이란,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 쿠팡에서 다신 이런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었다. 수원에 임시거처를 구한 금석 씨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서울을 오가며 쿠팡의 ‘무도함’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쿠팡CLS는 슬기 씨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쿠팡CLS 직원이 슬기 씨에게 직접적인 업무 지시를 했다는 카카오톡 대화 증거에도 “배송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택배기사의 문의에 응대하기 위해 대화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사람이 죽었는데, 한 가정이 무너지고, 그 가족들이 얼마나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참 악랄하다는 생각이 들죠.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걸 그들이 키우고 있는 거에요. 이제라도 왜 이런 사고가 났는지 규명하고, 사과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재발방지를 약속하고, 그렇게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렇게 사업을 개선해서, 오히려 쿠팡이 좋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이에요.”
어떤 물건이든 터치 몇 번으로 하루만에 배송해 주는 쿠팡의 로켓배송. 금석 씨는 쿠팡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마음 역시 당연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다만, 그 이면에 있는 노동자들을 꼭 생각해달라고 호소했다.
“우리가 편리함을 이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대신 그 편리함으로 인해 누군가의 아들이, 누군가의 아버지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모를 거란 말이에요. 저는 시민들이 쿠팡의 이러한 만행을 용납하지 않는 수준이 됐다고 봐요. 소비자들이 그런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금석 씨는 인터뷰 전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숨진 고 장덕준 씨 어머니인 박미숙 씨와 만났다. 이날은 장 씨의 유족이 쿠팡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공판이 진행된 날이었다. 쿠팡에서 아들을 잃은 두 부모는 이날 처음으로 만나 서로를 위로했다. 금석 씨는 “꼭 이기셔야 한다”고 말했고, 미숙 씨는 “선 경험자니, 혹시라도 필요한 게 있다면 알려주겠다”고 했다. 인터뷰가 진행된 1시간 남짓한 시간, 거리에는 쿠팡의 물품을 실은 배송 차량들이 분주히 움직였다.